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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Jul 19. 2022

네 번째 모임_!결석! 혼자 읽은 베트남 단편선

베트남 작가 6인 소설선, 「그럴 수도, 아닐 수도」

가벼움


가끔 읽는 종이 책 독서의 기쁨은 이런 것이다. 책의 두께를 전해주는 무게. 나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손맛. 책의 두께로 책을 고르는 타입은 아니지만, 읽고 싶은 책을 마주해보니 생각 외로 얇다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마음마저 가벼워진달까. 이번 회차에서 읽은 책은 부담 없는 두께의 책이었다. 게다가 이 책은 단편선이었다. 잠시 몇 장 읽으면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마는, 그 간결함과 산뜻함은 단편선만이 줄 수 있다.


베트남


나는 베트남 가본 적이 없다. 물론 가보았다 하더라도 베트남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고 돌아왔을 리는 만무하다. 거주자들은 외면하는 휘황한 식당에서 화려하게 플레이팅 된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다 돌아왔겠지.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베트남에 다녀온다 해도 나의 정신 속 진정한 베트남의 함량은 영(0)일 테니까. 내가 겪었을 세계는 베트남 사람들이 겪는 세계와는 분리된 층의 삶이었을 테니까.


다가가기


이 책의 머리말에서는 작가 반레의 말을 빌어,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으로써 책을 들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 한다고 말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양해를 구하고, 도움을 주고받고, 나아가서 서로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 말이다. 여행에 앞서 책을 읽기 참 좋은 이유다. 때로는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다 더 넓고 깊은 경험과 사랑을 책이 줄 수 있다. 그 책이 비록 얇고 가벼운, 짧은 이야기들의 책일지라도 말이다.


이 책은 베트남 작가 6인의 단편 9편을 모았다. 먼저 읽었던 아시아 단편선 「물결의 비밀」 (리뷰)의 동명의 단편 <물결의 비밀>로 소개되었던 바오 닌의 작품이 세 편 실려있다. 처음에 목차를 보고서는 너무 한 작가에 치우친 소개가 아닌가 싶었지만, 이번에 새로운 단편 세 편을 읽으며 바오 닌의 작품 세계에 감탄했다. 세 편이나 선별해 실은 이유가 다 있었다.


바오 닌


보통의 소설은 작가 본인에게 가장 익숙하고 깊은 감정에 치우쳐 있기 마련인데, 바오 닌의 작품들의 감정은 이례적으로 다채롭다. 이번 책에 실린 <딱밤> 과 <쟝>에서도 공통적으로 첫사랑의 감정을 말하는데, 확연하게 다른 색을 띠는 점이 흥미롭다. 작가는 첫사랑에 여러 번 빠져 보기라도 한 것일까. 아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첫사랑이 여럿일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바오 닌은 어떻게 여러 첫사랑을 알고 쓸 수 있는지 궁금하다. 어쩌면 늘 새로운 마음으로 사랑을 해왔던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정돈할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난 안 되던데. 바오 닌은 글쓰기로 잘 비워냈기에 가능했는지도.


책에 실린 세 편의 글 모두 바오 닌의 정갈한 마음과 담백한 글솜씨를 느낄 수 있는 단편들이다. 전쟁과 순수, 파괴와 순정, 슬픔과 아름다움. 그런 이율배반적인 울림을 어떻게 그렇게 잘 엮어내는지, 바오 닌의 대표작 「전쟁의 슬픔」도 몹시 궁금해진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장편 소설이라고 하는데, 함께 책을 읽어온 N님이 매우 칭찬하시기도 했다.


관능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을 꼽으라면, 보티 쑤언 하의 <숲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납부리새들>을 꼽고 싶다. 아시아 문학이 이렇게나 몽롱하고 농염할 수 있다니. 막연하게 우리 문화와 유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베트남 문학에서 마주친 관능은 나의 편협한 시야에 강력한 한 방이었다. 내가 한국 문학을 너무 교과서적으로만 접해온 탓이 크겠지만, 내가 아는 한국 문학 속 섹슈얼리티의 최대 표현은 '슬쩍 드러난 봉긋한 젖가슴'과 같이 다분히 남성 중심적이고 관음적 시선에 취한 저열하고 불쾌한 것이라서 보티 쑤언 하의 축축하지만 녹아들고 싶은 관능의 글은 큰 충격이었다. 성적 욕망과 탐닉은 이렇게 쓰여야 한다. 얼마나 재밌냐고요.


이 단편에서는 프랑스 설화 속 '에크머린 여우'가 인용되는데, 원 설화 전체 이야기가 너무너무 궁금하다. 대체 원어로 어떤 스펠이었을까... 이렇게 찾아도 저렇게 찾아도 나오지를 않았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못하고 작가 이름으로 구글링을 하다 영역본인 <The Sparrows Fly across the Woods> 미리 보기 pdf를 찾았다. 이 영역본에서는 이 설화의 제목이 'The adventures of Emeline'으로 나오지만 이 제목으로도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가상의 이야기일 것 같지 않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다. 평생의 과제가 될 듯하다. 자다가도 생각나서 구글링 해볼 듯...


이 소설은 관능과 미스터리뿐 아니라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도 다룬다. 전투의 소란이 아니라 고요가 주는 공포심, 뼛 조각 하나 추스르지 못한 아들을 위해 제를 올리는 할망. 그 전쟁의 공포, 슬픔, 상처 위를 무심히 쓸고 흘러가는 강물과 무심한 세월. 전쟁은 그렇게 흘러간다.


상흔


전쟁이 한 사람의 인생을 꿰뚫고 지나가며 남긴 상흔에 대한 단편이 하나 더 있다. 따 쥬이 아인의 <그 옛날 마을에서 가장 예뻤던 그녀>이다. 마을에서 가장 예쁘기로 소문난 뚝, 그녀가 사는 마을 또한 전쟁이 휩쓸고 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을을 스쳐 가는 남자들 하나하나 그녀에겐 전쟁통 총알이나 다름없다. 피하지 못하면 죽는다. 전쟁 속 여성의 생존 관문은 두 겹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생명뿐만 아니라 사회적 체신까지 지켜내야 한다. (전쟁이 산 여성을 말려 죽이는 방식은, 샤힌 아크타르의 「델리」 속 마리암의 인생 속에도 잘 나타나 있다.(리뷰)) '마을에서 가장 예뻤던 뚝'이 '사생아를 밴 뚝'이 되기까지 이야기가 흐른다. 뚝을 그렇게 만든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한다. 남자의 비겁함인가, 전쟁이 몰고 온 광기인가, 그녀의 경솔함인가, 마을의 방관자들인가, 무심한 세월인가. 숙명을 믿지 않는 나는 비겁함이라고 답하고 싶다.


결석


이번 모임은 개인 여행 일정 때문에 결석하고 말았다. 사실 조금만 부지런 떨어 일찍 기상하고, 피로를 무릅쓸 수 있는 마음가짐을 준비했다면 충분히 참석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한편 한편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지 궁금하지만 놓친 시간은 다시 오지 않고, 흘러간 이야기는 돌려 들을 수가 없다. 손을 벌린 모든 것에 조금 더 성실해지기로 스스로 약속해본다.




책 정보

바오 닌, 「전쟁의 슬픔」

https://ridibooks.com/books/1963000123

베트남 작가 6인 소설선, 「그럴 수도, 아닐 수도」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0275192

아시아 단편선, 「물결의 비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5914955

쿠쉬완트 싱, 「델리」

https://ridibooks.com/books/1963000028




관련 글

「물결의 비밀」 의 리뷰

https://brunch.co.kr/@hnote/65

「델리」의 리뷰

https://brunch.co.kr/@hnote/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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