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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Oct 11. 2022

직장불만족3_면접장까지 너무도 멀구나

재직 중에 구직하는 거 불법인가요? 아닌 거 아는데 왜 이렇게 죄스럽죠

연차 내기?


눈치가 보였다. 나는 몰래 면접을 보러 가야 하는 처지였다. 금요일 오전 10시의 면접. 평소와 같았다면 쉬고 싶다며 연차를 내고 말았을, 간단한 일이었다. 이번은 시기상으로 그럴 수 없었다. 그날은 그냥 금요일이 아니라 해외 출장 직전의 금요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때보다 일이 많을 날이었다.


반차 내기.


나는 미루고 미루고 눈치를 보다가 면접날 하루 전이 되어서야 겨우 반차 이야기를 꺼냈다. '급한 일이 없다면 금요일 오전엔 반차를 쓰고 싶다'는 내 말에 선임의 답변은 명료했다. 바쁜 일이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알 수 없지... 대충 알아서 하라는 말로 알아듣고 반차를 쓰기로 한다.


팀장님께 가서 이야기했다. 내일 오전 반차를 좀 내고 싶다고. 팀장님은 내가 또 처방 때문에 병원을 가는 것이라고 넘겨짚으셨다. 아니라고 정정하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들었지만 참았다. 진실은 말씀드려야 할 필요가 생겼을 때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싫다. 그렇지만 거짓말 말고 어떤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면접 전야

내가 냈던 지원서를 다시 읽었다. 2주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때 무슨 말을 써놓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며 1분 자기소개나 내 성격의 장단점을 어떻게 말할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자기소개서랑 아주 똑같아서도, 아주 달라서도 안 될 일이었다. (MECE)


기술 질문을 하시지는 않을까 싶어서 내가 지원했던 분이야인 데이터 모델링 분야의 지식을 조금 찾아 읽었다. 내가 지원한 회사의 요새 관심사인 그래프 DB도 뒤적여 보다가, 생각했다. 내가 가진 자격증이면  이미 이론 시험은 프리패스였다. 게다가 면접관이 대표님이라면 시시한 기술 문제들을 묻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어, 근데 내일 입을 셔츠는 다려 두어야지...


면접 두 시간 전의 스타벅스

나는 출근 2시간 전 카페에 들러 마음을 차분히 할 수 있는 개인적 시간을 가진 다음 일을 하러 간다. 첫 출근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루틴이라, 면접날에도 예외가 있을 수는 없었다. 부지런을 떨어 면접 2시간 전에 지원사 인근의 스타벅스에 갔다. 차분히 진정할 시간을 가지자.


따뜻한 오트밀 라떼를 한잔 시켜놓고는 어제 머릿속으로 흐름만 짜둔 1분 자기소개를 말하는 연습을 했다. 출근 직전에 카페인 충전을 위해 스타벅스에 들린 직장인들 사이에 앉아서 스톱워치를 맞추어 놓고 주절주절 말하는 게 조금 수치스럽기도 했지만 직접 말로 뱉어보니 연습이 꽤 필요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면접 한 시간 전쯤에는 향수를 꺼내 뿌렸다. 일상생활에서는 향수를 거의 뿌리지 않지만, 오늘은 나의 입장과 동시에 공기의 흐름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1:1 면접이니까. 새벽 공기를 품은 풀나무 향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아침과 푸른 새순이 시작을 알리기에 가장 좋은 냄새일 것 같았다. 오늘 나는 산뜻하면서도 진중한 사람이고 싶었다.


주어진 진정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갑자기 스페인어나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키면 어쩌나, 불안감이 급습했다. 급히 스크립트를 써보았다. 맨날 하던 말이라 그런가 술술 쓰이는구먼. 좋아. 가자.


면접 10분 전의 로비


10분 정도 일찍 도착하는 게 적당할 것이란 생각에 미리 계산해둔 시간에 카페를 나섰다. 약속 10분 전은 뭐랄까. 적당히 부지런해 보이는 시간이다. 내 바로 앞에 면접자가 한 명 더 있다면, 마주칠 수도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앞선 면접자가 면접장을 나설 때 지니는 표정과 몸짓, 그런 게 궁금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지만.


사무실이 있는 층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출입증이 있어야 열 수 있는 출입문이 나왔다. 유튜브 때문에 얼굴이 낯익은 임원 한 분이 출입문을 통과했지만, 끼어들어 같이 문을 통과하지는 않았다. 급할 게 없기도 했고, 침입하는 기분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전화로 면접 안내를 주었던 팀에 전화를 걸었고, 한 직원분이 마중을 나와 주셨다.


"지금 회의실에 인터넷이 준비되지 않아서, 잠시 대기하실게요."


라며 로비 소파로 안내해주었다. 나는 정수기에서 따듯한 물을 텀블러에 담아 앉아 주변을 관찰했다. 대표님의 저술 여러 권이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다. 언젠가 시간 내 읽겠다는 생각이 었었던 차라 다가가 책장을 들춰보며 목차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읽긴 읽어야겠다.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아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과연 1:1 면접에서 인터넷을 준비해야 할 이유는 뭘까. 직원이 남긴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형식적으로는 1:1이지만 온라인으로 생중계해서 다른 임원들이 함께 보기라도 하는 걸까. 그런 형식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어찌 되었건 큰 상관은 없었다. 한 가지 더 알게 된 건 내가 오늘 첫 면접자라는 사실이었다. 앞선 누군가가 있었다면 면접장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겠지. 열 시에 첫 면접. 면접자는 한 타임에 한 명씩. 이런 시간표라면 하루에 면접을 볼 수 있는 지원자는 넷을 넘을 수 없었다. 면접관은 이 회사의 대표였다. 몇 날 며칠 하루 온종일 면접만 보고 있을 수 있을 리 없지.


주머니에서 스타벅스 냅킨을 꺼내 적어둔 면접 답변 키워드들을 한 번 눈으로 훑으며 생각했다. 최대한의 나를 보여주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지 말자. 나로 들어가서 나로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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