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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Oct 11. 2022

직장불만족4_이것은 면접인가 사주풀이인가

사장님 실례지만 혹시 엠네글자가 저와 같으신가요

10시, 대표의 집무실


직원분이 이제 면접에 들어가면 된다며 안내해주셨다. 면접실은 역시나 대표님의 집무실이자 회의실이었다. 대표님이 앉아 있는 집무 책상 앞으로 10명 정도가 둘러앉을 수 있는 회의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대표님과 사선으로 눈을 맞출 수 있는 자리 중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았다.


그는 내가 제출했던 지원서의 인쇄본을 훌럭훌럭 넘겨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2010년에 학교에 들어가서 2016년에 졸업을 했는데, 그럼 인턴은 재학 중에 1년을 다녀온 건가? 나는 그 질문에 성의껏 답하면서도 아차 싶었다. 내 지원서를 지금 처음 읽으시는 걸까. 내가 그리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원자가 아니었단 게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가 혼나러 왔던가,

www.pexels.com @Sora Shimazaki

직장을 다니면서 무슨 시간이 있다고.. 공부를 했네. 부지런함은 참 보기 좋아. 그런데 우리 회사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부지런하거든. 그는 마치 나에 대해 더 궁금할 것은 없다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첫 이야기는 교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의 도입부에서부터 내 한계를 지적하기 위한 이야기임을 알아차렸다.


학습은 말이야, 말 그대로 학學과 습習이야. 공부도 하고 연습도 해야 하거든. 직접 해보면서 익혀야만 습득되는 것들이 있어. DAP 자격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아무나 딸 수 없는 시험으로 만들겠다는 뜻이 있었어. 학과 습이 된 사람이 아니면 딸 수 없도록. 그래서 초기에는 합격자가 몇 명 나오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말이야, 아무나 딸 수 있게 시험이 조금 바뀌었지.


아닙니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합격자 수와 합격률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습이 제로인 사람이 맞고, 그런 제로가 이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자격시험에 대한 모욕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제가 이 시험을 준비했던 건 이 시험에 합격하면 데이터 모델러가 될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데이터에 대한  관심을 진지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전공 경력 모두 무관한 제가 따낸다면 결국 제 습득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합격이 제게 이곳의 문을 두드려볼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주풀이를 하러 왔던가,


돌파력은 인정을 해. 그런데 국제협력에서 일하다가, IT컨설팅 회사 다니다가, 이제는 데이터. 그때그때 좋아 보이는 것에 꽂혀서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막대기에 고무줄을 걸면 말이야. 고무줄을 어디로 당기더라도 다시 막대기 쪽으로 돌아오거든. 그렇다고 그걸 한 없이 늘이면 어느 순간 끊어지고 만다고. 파랑새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녀서는 뭘 이룰 수가 있을까?


나는 그 말엔 약간 억울했다. 그때그때 좋아 보이는 것을 즉흥적, 마구잡이로 좇아왔다기보다는, 내 나름대로  하나의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책자의 일보다는 좀 더 실행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형태 없는 일에 실증을 느꼈고, 더 좁고 구체성이 있는 쪽으로 갈 수있는 길을 택해왔다.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하면서는 프로젝트들을 관리만 해야 하는 관리 기관의 역할에 불만족스러웠다. 행정보다는 수행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IT컨설팅 업체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을 때엔 넙죽 받아들였다. IT컨설팅 업체에서는 개발도상국 사업을 주로 하다 보니 시간 격차와 얕은 깊이가 불만족스러웠다. 한국과 개발도상국 간 개발 시간의 격차로 인해 늘 한국 선진사례를 그대로 답습해 카피캣처럼 일 해야 하는 처지가 싫었다. 그리고 넓은 분야를 다루다 보니 닥치면 적응해 임기응변하듯 일해야 하는 점이 불만족스러웠다. 관심 생기는대로 아무 데로나 튕기듯 살아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계속해서 좀 더 깊은 쪽의 전문성을 찾아 좁혀 가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던 것 같다고 답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그림을 그린다고 예를 들면 어디에 어떤 색을 칠할지 남을 시켜서 일을 해야 편안한 사람이 있고, 본인이 직접 그 색칠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거든. 나는 후자의 사람이었어. 내가 보니까 거기(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내 성미대로 살다 보니까 말이야,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이 있지? 말하자면 나는 곰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거든. 그렇게 내가 조직에서 곰으로 살아보니까,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이 또 있더란 말이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아나? 나는 곰으로도 살고 왕서방으로도 살았어. 이제는 회사 대표로 관리자의 일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도 내 공부하고 내 일을 계속해.


그는 나에게 1분 자기소개도 시키지 않았다. 나는 말 몇 마디 할 틈도 없었다. 그런데 나의 그 짧고 작은 몇 마디 말을 가지고 내가 해왔던 선택들, 그 선택을 하는 데 작용했던 기질들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그의 말들을 들으면서 이해되지 않던 사건들이 이해되면서 마음이 가뿐해졌다. 역시, 나를 벼는 눈은 남이 더 정확하구나. 한편으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정작 나는 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적도 없고 스스로를 느껴본 적도 없었구나.


내가 지닌 태도와 자질이 좋다고 해주셨다.


면접은 1시간 50분 간 계속되었다. 대부분 그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말했고, 나는 들었다. 이상한 면접이었다. 말할 기회가 그리도 작았는데, 그 시간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주제 넘는 감정이입이겠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가 가진 기질을 최적화해 내재된 가치를 최대로 발현해낸 인생의 결과물이라고. 인생을 살 거면 나도 런 방식으로 살고 싶다고.


인생 상담을 받으러 왔던가,


면접이 마무리될 때쯤 그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나는 솔직한 내 마음을 말씀드렸다. 면접에 오면서 계속 궁금했다고. 과연 나의 어떤 점이 궁금해서 귀중한 한 시간을 들여 나를 보고 싶어 하신 걸까. 그런데 나를 보여드리려고 온 자리에서, 오히려 내가 나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우고 가는 것 같다고. 그리고 그게 참 많은 응원이 된다고. 오늘 면접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대로 하던 노력을 계속 쭉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아무래도 이제내 막대기를 뽑아 새로운 땅에 꽂고 싶고, 그래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니 나를 보았을 때 가장 준비가 부족해 보였던 게 어디였는지를 여쭈었다.


그의 답변은 역시나 어나더 레벨이었다.


나는 RDMBS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이것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 그래서 그것에 내 인생을 걸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 너는 지금 너에게 뭐가 부족한지를 질문할 게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좇을 게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해.


그런 면접이었다. 나를 보여주겠다고 왔는데, 나를 보여주기에 나는 나를 너무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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