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홀연히 나타났다 소리 없이 사라진 고양이를 다시 만난 것은 사과나무 아래에서였다. 제발 좀 찾아오지 말라고 할 때는 죽으라고 찾아오더니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내내 뒷 소식이 궁금했던 차였다(이 녀석과의 첫만남과 밤새 놀아달라고 창가에서 울어대던 이야기는 차차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내 기도가 헛되지는 않았던지 녀석(?)은 배가 잔뜩 불러 있었다. 품고 있는 새끼가 서너 마리는 되지 싶었다. 마침 내 오래된 꽃밭으로 할미꽃 구경을 가던 길이라 사진기도 있겠다 녀석의 사진이라도 남길까 싶어 사진기를 들이대는데 제법 멀리서도 나를 노려보는 눈매가 매섭기 그지없었다. 임신 때문에 민감해진 탓도 있겠지만 섬뜩한 느낌과 함께 서운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래도 한때는 밤이면 밤마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으르렁거리던 정이란 게 있는데...
그날 이후로 또 한참 동안은 고양이를 만나지 못했다. 다만 어디에선가 몸을 풀고 제 새끼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겠지 싶은 생각만 들었다. 새끼는 몇 마리나 낳았는지 또 얼마나 잘생겼는지 못내 궁금했지만 동네를 다 뒤지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그저 별 탈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스치듯 고양이를 다시 만났을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춧대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던 고양이는 두 마리였다. 홀쭉해진 어미 고양이와 아직 애기 티가 역력한 새끼 고양이는 내게 눈길 한번 주는 일 없이 제 갈 길을 말없이 가고 있었다. 새끼를 못 낳아도 서너 마리는 낳을 줄 알았더니 달랑 한 마리만 데리고 있어 저간의 사정이 몹시 궁금했지만 그도 짐작 못할 바는 아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백미러를 통해 보는데 고양이도 내 작업장 언덕배기 위에 우뚝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품없이 말라비틀어진 몸이었지만 당당한 기운만큼은 누구 못지않았다. 보고 있는 내가 다 머쓱해질 정도였다.
그날 이후로 고양이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들고양이의 운명이 어쩌니 저쩌니 운운하지 않더라도 나는 이미 그날 만났던 고양이에게서 앞날을 직감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숭숭 털이 빠지고 바싹 말라 볼품없는 몸으로도 어찌 그리 당당할 수 있었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허세는 아니었을 것이다. 고양이의 마지막 그 당당함마저 단지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면 삶이란 너무 가련하지 않은가.
가끔씩 그 고양이가 떠오를 때면 마치 풀지 못한 수수께끼인 양 그때 그 마지막 몸짓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허세가 아니라면 뭘까? 머릿속에서만 뱅글뱅글 맴도는 단어 하나를 좀체 끄집어낼 수가 없다. 그러다 어제 이 고양이를 만났다. 단 한 번 스쳐 지나갔을 뿐이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때 당당하던 어미 고양이 옆에서 얌전히 꼬리를 사리고 있던 새끼 고양이라는 것을, 제 어미를 닮아 코밑의 검은 점이 유난스러운. 그리고 여태 머릿속에서만 뱅뱅 맴돌고 있던 한 단어가 툭 튀어나왔다.
자존!
곱상하게 생겨서 암컷이 아닐까 싶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는 혹 모를 일이다. 수컷이 암컷보다 더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경우도 부지기수니 말이다. 암컷이건 수컷이건 저번처럼 더 가까이 두려고 다가가지 않을 테니 내 곁을 떠나 훌쩍 사라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제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초대하지 않아도 가끔씩은 다녀간 흔적이라도 남겨주었으면, 그리하여 다가올 겨울을 무사히 넘긴다면 내 창문 아래로 찾아와 마음껏 울어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