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걸 잘못 먹었는지 입천장을 데고 말았다. 언제 어떻게 데었는지 기억에도 없는데 입천장에는 오십 원짜리 동전만한 물집이 잡혀 있었다. 피곤해서 그런 걸까? 아무리 둔하다고 해도 뭘 먹다가 입안에 이만한 물집이 잡혔는데 그걸 모를 수 있다니...
사정이야 어쨌든 입천장에 물집이 잡힌 것은 확실했다. 보통은 이렇게 물집이 잡혔을 때 그걸 터뜨려버리면 무지 쓰라리기 때문에 제풀에 사그라들 때까지는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입천장에 물집이 잡혔다는 걸 의식하자마자 혓바닥이 잠시를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어금니를 아무리 꽉 물고 있어도 혓바닥은 어느 틈엔가 그 물집을 더듬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고생한다, 아무리 다짐한들 그건 오로지 생각뿐이었다.
혀끝이 물집이 난 자리를 너덜너덜하게 만들기까지는 불과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혀는 입안의 이물감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만큼 쓰리거나 아프지는 않았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본능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혓바닥은 그 이후로도 수시로 물집이 났던 자리를 쓰다듬기에(?) 여념이 없었다. 처음에는 약간 쓰라리기도 하고, 다른 곳과 달리 까끌까끌한 느낌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곧 무덤덤해졌다. 사람이란 어떤 악조건에서도 금세 적응한다더니 그게 틀린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물집이 터지고 나면 밥을 먹을 때 고생할 줄 알았더니 그것도 별 문제가 없었다. 아무리 짜고 매운 음식을 먹어도 까딱없었다. 다만 한 가지, 뜨거운 걸 먹거나 마실 때는 영 거북했다. 아픈 건 아니었다. 단지 불편할 뿐이었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참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입안에 난 상처니 금방 아물 거라는 기대도 있었고 말이다. 적어도 커피 한 잔을 마셔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달달한 커피 한 잔이 무료한 내 일상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나 보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커피는 곤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어떻게든 맛을 느껴보려고 했지만 뜨거운 커피는 미처 맛을 느낄 사이도 없이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자동으로 목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의식과 상관없이 몸이 먼저 반응을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깟 커피 입안이 다 나을 때까지 제맛을 느끼지 못한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웬 호들갑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가니 죽을 맛이다.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는 커피라니! 달달한 커피 맛이 미칠 듯이 그리운 걸 보니 이것도 중독이라면 중독이지 싶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도 참 웃기는 일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커피의 달달한 맛에 중독이라니.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일어나서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먹는 것, 입는 것, 하는 일, 만나는 사람... 그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고 감사하지 않은 게 없다. 그러니 나는 행복에 겨운 사람이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즐겨 부르던 '내일 일은 난 몰라요'란 찬송가가 영 못마땅했는데 이제는 그 찬송가가 뭘 의미하는지 알 것도 같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내일 일이 내 것이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난 몰라요... 그러니 행복에 겨운 걱정은 이제 그만하련다. 내게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그냥 흘러가련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는 없지만 끝나는 그날까지 저 하늘의 구름처럼, 저 개울의 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