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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니 Oct 04. 2022

존재의 가치

느티나무



  밑동 굵기가 장정 세 아름쯤 되는 300년 묵은 느티나무다. 말이 쉬워 300년이지 이쯤 되면 존재 그 자체가 역사다. 동네 초입 언덕배기를 오갈 때면 어느 때건 경외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들어오던 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자주 온 것은 물론 한번 내렸다 하면 폭설이었다. 뉴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경이 일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길을 쓸지 않으면 고립되는 건 한순간이라 눈만 내렸다 하면 마을 사람 전체가 모여 눈을 쓸곤 했다. 


  군 시절을 강원도에서 보냈는데 그때 한 제설작업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쓸고 또 쓸고... 지금도 눈이라면 치가 떨린다. 언젠간 작업장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린 적도 있었다. 그때 마을 안에 있던 소나무 두 그루가 와지끈 부러졌다. 한 그루는 족히 몇백 년은 묵었음직한 아주 멋들어지게 생긴 놈이었다. 물론 이 느티나무는 그 와중에도 멀쩡했다. 


  뭐든 너무 가까이 있으면 눈여겨보지 않게 된다. 무슨 변고라도 생기기 전에는 말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부러지고 난 다음에야 그 소나무가 서 있던 동산이 허전해진 것을 아쉬워했듯이... 


  소중한 것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그 상실감을 알 도리가 없다. 어떤 것들은 단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 가치가 충분하다. 나는 너무 늦게야 그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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