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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수강은방학때 Sep 06. 2019

산티아고 순례길 10일차

로그로뇨(Logroño) - 나헤라(Nájera)

10일차


8. 로그로뇨(Logroño) - 나헤라(Nájera) (28.2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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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나의 이십대 시절에 비추어 지금 이십대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학생들 사이에 앉아 있는 유선의 눈을 스쳐 지나 질문한 학생을 바라보았다. 수줍음을 타는지 질문하는 학생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도 모르게,

함께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잊.지.말.자, 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

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학생들이 와아, 하고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난 줄 알았다가 다시 이어지자 학생들이 다시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신경숙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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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름다운 풍경, 두 손을 꼭 붙잡고 길을 걷는 이탈리아 노부부, 길을 걷는 중간중간 입을 맞추며 서로를 격려하는 커플.


나는 사랑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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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벽에 일어나서 길을 걸었다. 어제 저녁부터 오기 시작한 비가 아직까지 오고 있었다.

사실 내 판초 우의는 비 올 때 쓰는 용도보다는 앉아서 쉴 때 쓰는 돗자리다. 그래서 그냥 출발했다.

비 오는 새벽, 빗물에 씻겨 가로등 불빛에 반짝거리는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걸었다.


화살표를 따라 걷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화살표를 못 봤냐고 물어본다. 알고 보니 오늘 처음 로그로뇨에서부터 걷기 시작한 한국 분이셨다. 화살표가 안 보일 땐 직진하는 거라고 알려드렸다.

가는 도중에 몇 번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미국에서 사업을 하시다가 아들분이 대학 입학을 하기 전에 사업을 정리하시고 둘이 여행을 오셨다고 했다.

알고 보니 미국에서 주류 도매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지역이 세계적인 포도주 생산지역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걷는 동안 포도주를 많이 마셔보라는데, 사실 난 술을 잘 못 마신다.


중간 마을에서 쉬면서 먹었던 카페 콘 레체와 쥬스, 빵은 정말 맛있었다.

잠깐 멈췄던 비가 다시 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지금 비구름 쪽을 향해 걷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걷다 보면 종종 산티아고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는 이런 표지판을 만나는데, 볼 때마다 과연 이 길의 끝에서 난 어떤 모습일까 잠깐 상상하게 된다.


매일 걷다 보면 그날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은 거의 계속 마주치게 된다. 그저께부터 종종 보이던 외국인 아저씨를 오늘 계속 봤는데 빗속에서 왼손엔 초록색 전기 파리채, 오른손에는 나무 막대기, 그리고 작은 가방에 비닐봉지들을 매달고 가는 아저씨. 영어를 못하는 그 아저씨의 별명은 전기 파리채다.

첫날 우리를 지나쳐 걸으면서 ‘This is life!’를 외치며 지나가는 바람에 철학자라는 별명이 붙은 아저씨는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 도착한 마을의 공립 알베르게는 시설이 안 좋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사설 알베르게로 왔다. 강가 바로 앞에 위치한 숙소인데, 금요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북적거린다. 오늘 밤 내 잠자리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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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erta de Nájera


시설이 깔끔하다. 바로 앞에 강이 흐르고 사람들이 거기서 많이들 쉬는데, 이 소리 때문에 자는데 방해가 조금 된다. 특히 주말의 경우 새벽 내내 시끄럽기 때문에 자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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