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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수강은방학때 Sep 06. 2019

산티아고 순례길 9일차

로스 아코스(Los Arcos) ~ 로그로뇨(Logroño)

9일차


7. 로스 아코스(Los Arcos) ~ 로그로뇨(Logroño) (27.7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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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과 슬픔을 품은 채 나를 무작정 걷게 하던 그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쓰라린 마음들은.

혼자 있을 때면 창을 든 사냥꾼처럼 내 마음을 들쑤셔대던 아픔들은 어디로 스며들고 버려졌기에 나는 이렇게 견딜 만해졌을까.

이것이 인생인가.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른다는게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 때문인가.”


신경숙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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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난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잘난 사람들과 사귀는 것이 인생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지나가는 아기에게 웃음 지어주고, 잘못한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할 줄 아는 것이 인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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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왠지 몸이 가벼웠다.

걷기 시작한 이후, 거리상으로는 가장 멀리 가는 날이라서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 기우였다.

몸이 걷는데 적응을 했는지 아니면 날씨가 워낙 좋아서 그랬는지 별로 쉬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길을 걷다 보면 종종 표지석에 돌이 많이 쌓여있거나 편지, 사진 같은 것들이 놓여있는 경우가 있다.

걷다가 표지석에 사진이 눈에 들어와 잠깐 멈춰 선 채로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가족사진처럼 보이는 사진들이 있었는데, 그 사진들을 보는 순간 너무너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이 길을 울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추억했을 어떤 사람을 상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이 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느끼게 될지 잘 모르겠다.

‘WHAT ARE U DOING?’

‘CAMINO IS LOVE CAMINO IS LIFE’

이런 낙서를 볼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갖고 이 길을 걸었을까 생각한다.


도착하고 조금 쉬고 나니 밖에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밤 10시가 다 돼야 해가 지는데, 해가 쨍쨍하면서도 비가 오는 날씨는 볼수록 이상하다.


저녁으로 잘 썰리지 않는 스테이크를 해먹었고,

시간이 갈수록 굵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일기와 여행기를 쓴다.

어제부터 저녁 이후, 규칙적으로 글 쓰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내일은 출발할 때 비가 올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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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gue de peregrinos


알베르게 마당 가운데 발을 담글 정도의 작은 분수대가 있다. 비가 와서 담가볼 기회는 없었다.

시설은 역시 그럭저럭.

로그로뇨는 꽤 큰 동네라서 주변에 상점이며 음식점들이며 많다. 특히 양송이 핀초가 제일 유명한데 걸어서 5분 정도 골목에 가게들이 있다. 짭조름하니 맛있고 가격도 저렴하니 하나 정도 먹어보는 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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