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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수강은방학때 Sep 06. 2019

산티아고 순례길 12일차

그라뇽(Grañón) - 벨로라도(Belorado)

12일차


10. 그라뇽(Grañón) - 벨로라도(Belorado) (15.8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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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벌이다.”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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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지내다 보면, 이 사람이 진심으로 나와 통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정도는 금방 알 수 있다.

이 길 위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속마음을 터놓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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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걷기로 한 길이 짧아서 늦게 일어났다.

오랜만에 해가 뜬 이후 길을 나섰다. 각자 준비되는 데로 기다리지 않고 출발했는데, 혼자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맞으며 걸으니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걷는데, 너무 여유로웠다.

그래서 갑자기 행복하단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이 길을 걷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저기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형체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파리채 아저씨다. 시작부터 아저씨를 보니 너무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아저씨가 지나갈 때 “Buenos dias!”하고 기억해두었던 아침인사를 건넸다.

아저씨는 여전한 미소와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 인사를 건네며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다.

(이후로 파리채 아저씨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오늘 길은 너무너무 여유로웠고, 그래서 그림 같은 집 앞에서 꽤 오래 쉬었고, 처음으로 진짜 꽃밭을 보기도 했다.


목적지 마을에 도착해서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낮잠을 잤다. 작은 마을이기도 하고, 오늘이 일요일이기도 하고, 햇볕이 너무 따가운 시간이라서 저녁 식사 전까지는 별달리 할 게 없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광장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었다. 먹으면서 지금 동행하는 일행들과 그만 헤어지는 게 좋겠단 생각을 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고 재밌지만, 이렇게 여러 명이 몰려다니는 것도 내심 내키지 않을뿐더러, 여기까지 와서 어떤 소속감이나 책임감을 느낀다거나, 다른 일행들의 기분이나 감정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일은 숙소 예약을 하지 않고 일단 걷기로 결정했다.


저녁시간이 돼서 알베르게 식당으로 갔다.

사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매 끼니를 식당에서 사 먹으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여태껏 식당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사 먹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오늘 알베르게 식당은 맛있다는 평이 있어서 기대를 하면서 립을 시켰는데.

와. 진짜 맛있다.

한 입 먹는 순간 갑자기 분위기 패밀리 레스토랑.


엄청 큰 바베큐 립을 다 해치우고 나니 벌써 아홉시가 다 돼간다. 내일은 네시부터 일어나 걸을 계획이라 이제 바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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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gue de Peregrino “Cuatro Cantones”


꽤 큰 알베르게. 주인분이 요리도 하신다. 메뉴가 굉장히 많은데, 저녁 식사를 여기서 하는 것도 좋은 방법. 다만 오후 다섯시 반 이전에 저녁식사를 한다고 미리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시설은 평범한 수준. 3층의 경우 계단을 많이 올라가야 돼서 귀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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