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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수강은방학때 Sep 06. 2019

산티아고 순례길 13일차

벨로라도(Belorado) - 아타푸에르카(Atapuerca)

13일차


11. 벨로라도(Belorado) - 아타푸에르카(Atapuerca) (30.0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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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 본 이는 고독의 같은 말들이 슬픔도 상처도 아닌 걸 알게 된다지요.

모든 게 다 지나고 나서야 이해하는 것.

외로운 시간은 그렇게 성립하는 것.

누가 말했던가, 사람은 누구나 바다 위의 섬처럼 외로운 운명을 쥐고 태어난다고.”


심규선 - 외로워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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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고 외로워하지 말기. 혼자서도 마음을 오롯이 지탱할 수 있을 때,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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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 내일 부르고스라는 대도시에 가야 하는데, 오늘 미리 많이 걸어두면 내일 부르고스에 일찍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대충 짐을 싸고, 알베르게 일층으로 내려왔는데, 아씨 깜짝야.

입구에 있던 인형 상이 어둠 속에서 나를 맞이해준다.


어두컴컴한 길을 한참 걷다가, 날이 밝아온다. 나보다 늦게 출발했던 다른 일행들이 벌써 내 뒤에 바짝 쫓아왔다.

가는 도중에 마을에 있는 바에 들러서 카페 콘 레체와 머핀으로 아침을 먹었다.


요즘 부쩍 이런 표지석이 자주 보인다. 이제 겨우 250킬로 정도 걸었다.

오늘도 노을이 정말 이뻤는데, 핸드폰 카메라로는 아무리 열심히 찍어도 담을 수가 없다.

이럴 때마다 dslr 카메라가 하나 있었으면 정말 이쁜 사진을 담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같이 다니던 일행들은 중간 마을에서 멈추고 나는 다른 한 명과 같이 두 마을을 더 가기로 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산을 오르고, 또 한동안을 걷다 보니 저기 앞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커다란 그늘을 만든 채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너무 고마웠당.


그리고 얼마 더 걸어가다 보니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나온 동네 사람이 있었다.

새까만 강아지 사진을 찍으려고 쭈그리고 앉아서 핸드폰을 들이댔다가 일어서니, 주인이 말을 걸어온다. 바로 앞에 보이는 소 한 마리를 가리키며

저기 저 소가 오늘 새끼를 낳았다,고

그래서 쟤 지금 배가 볼록해,라고

나는 ‘와웅! 진짜??’하고 대답해준다.


한 시가 되기 전에 도착한 알베르게에는 이미 여섯 명의 사람이 오픈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마당에서 낮잠을 퍼질러자고 있던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보자마자 쓰담쓰담하며 사진을 찍었다.


오늘 머무는 알베르게는 너무너무 좋다. 무려 여행 처음으로 써보는 싱글 침대!

사람들이 많이 머물지 않는 작은 마을이라 여유롭고 한적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짐을 풀고 샤워와 빨래를 하고 나니 노곤노곤한 기분에 낮잠을 조금 잤다.

점심을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은 터라 저녁과 간식을 살 겸 근처 작은 가게에 갔다.

바에서 약간의 간식 정도를 파는 가게였는데, 빵이 맛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피자빵을 사 먹었다.

아니 근데 왜케 쫄깃쫄깃하지?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거 한국 가서 팔면 많이 팔리겠다, 하는 생각을 한다.


재료가 많이 없어서 오늘 저녁은 베이컨을 넣은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핸드폰으로 앞서 순례길을 다녀간 사람들이 쓴 글을 읽었다. 길 위에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느끼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나는 너무 걷는데만 집중하고 있진 않은가, 생각했다. 걷는 도중에 뭔가 떠오르거나 느낄 때마다 그 자리에 앉아서 무엇이든 끄적이면 재밌지 않을까.


같은 방을 쓰게 된 이탈리아 사람도 내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발한다고 한다.

오늘은 잠자리가 너무 좋아서 푹 잘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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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gue de Atapuerca


넓은 마당이 있는 알베르게. 귀여운 멍뭉이가 있는데 오후에는 잘 안 보인다. 이곳 마을에서 머무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한적하다. 각 방마다 일층 침대 3개와 이층 침대 1개가 있는데, 꽉 차지 않는 이상 일층 침대를 쓸 수 있다.

가까운 곳에 카페 겸 조그만 마트가 있는데, 빵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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