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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수강은방학때 Sep 07. 2019

산티아고 순례길 16일차

온타나스(Hontanas) - 프로미스타(Frómista)

16일차


14. 온타나스(Hontanas) - 프로미스타(Frómista) (37.04km)


-


“Look at the stars.

Look, how they shine for you.”


Coldplay - Yellow


-


암막 커튼을 친 방 안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폭죽이 터지면서 반짝이는 은빛 가루들을

사방으로 뿌렸어.

그걸 지켜보고 있던 영원은 순간 황홀경을 간직하기 위해

땅에서 그 장면만을 따로 떼어 하늘에 영원으로 남겼지.

그 순간 폭죽이 만들어낸 희뿌연 연기까지 말이야.


-


새벽 네시에 일어나 출발했다. 날이 갈수록 더워져서 최대한 일찍 출발하고 마치는 게 좋을 거란 생각에서다.

어제부터 메세타 구간, 그러니까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지대를 걷고 있다.

새벽에 나오자마자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와, 별들이 쏟아진다. 저기 희뿌연 줄기는 은하수인 거 같다. 잠깐 길에 멈춰 서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다시 랜턴에 의지한 채 길을 걷는다. 그러다가 잠깐 멈춰 뒤를 돌아봤는데, 까맣게 형태만 보이는 나무 사이로 한입 베어 문 듯한 하현달이 너무 뚜렷하게 떠있었다.

와.....


계속 걸었다. 높은 언덕을 헐떡거리며 오르고, 끝없이 펼쳐진 메세타를 혼자서 걸어간다.

누군가는 이 길을 걸으면서 엉엉, 울음을 쏟았다고 하는데, 남들만큼 걱정이 없는 건지 아니면 감정이 메마른 건지 눈물 한 방울 나올 생각을 않는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다. 발걸음마다 목적을 위한 의무를 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도 그렇지 멍청아. 적당히 걸어야 될 거 아니야.

태엽이 고장 난 장난감처럼 계속 걸었다. 익숙한 얼굴들은 이제 보이지 않고 온전히 나 혼자, 이방인으로서 길 위를 걷게 됐다.


마지막 마을에 도착할 때 즈음 적당한 알베르게를 검색했는데, 마을에서 3킬로나 떨어져 있었다.

그 숙소 주변엔 마트가 없어서, 먼저 마트에 들러 음료수와 필요한 것들을 샀다. 그러고는 스틱을 가방에 걸고,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또 한참을 걷는데, 순간 지금 이 먼 타국에서 거지꼴을 한 상태로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걷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웃겨 웃음이 나왔다.


도착한 알베르게는 너무너무 좋았지만 샤워할 때 따뜻한 물이 안 나왔다. 쉬다가 알베르게 바에 와서 콜라 한 잔을 시켜놓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


La Finca


프로미스타보다는 그다음 마을에 가까운 알베르게.

도로 한복판에 뜬금없이 위치해있다.

근데 침대는 진짜 좋음. 모두 일층 침대에, 커튼으로 가림막까지 되어 있다. 세탁기도 무료.

다만 주변에 마트가 없고, 취사시설도 전자레인지가 전부. 따뜻한 물도 안 나왔었음.

바를 겸 하고 있어서 배고플 때 거기서 사 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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