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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수강은방학때 Sep 07. 2019

산티아고 순례길 18일차

칼자딜라(Clazadilla) - 베르시아노스(Bercianos)

18일차


16. 칼자딜라 데 라 쿠이자(Calzadilla de la Cueza)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Bercianos Del Real Camino) (32.05km)


-


“무엇이 내게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예인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수 없네.

자신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god - 길


-


누가 꿈이 뭐냐고 물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일단 취업부터 해야 될 거 같아요.”


-


너무 더워서 잠을 거의 못 잤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 네시가 되니 벌써부터 하나 둘 일어나 출발 준비에 부스럭거린다.

조금 더 뒤척이다가, 짐을 대충 챙기고 일층으로 내려와 출발 준비를 했다.

어두웠고, 여전히 별은 쏟아지고 있었지만, 오늘은 내 바로 앞에 한 외국인 부부가 앞장서고 있었다. 이 한밤중에는 랜턴 불빛만 봐도 반가운 마음이 생기는데, 이 불빛만 놓치지 말고 따라가야지, 하는 생각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따라갔다.

근데 얼마 가지 않아서, 맵을 보는데 이상한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길이 아닌 거 같은데...

왔던 길로 되돌아가니 내가 갔던 길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화살표가 있었다. 이미 몇십 미터 옆길로 들어선 그 외국인 부부에게 ‘Hey!!!!’ 소리치고 랜턴과 핸드폰 불빛으로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야’라는 반짝반짝 신호를 보낸다.

알아들은 듯, 그 부부의 불빛이 왔던 길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확인한 후 다시 앞에 아무도 없는 컴컴한 길을 나섰다.


첫 마을에 도착하기 직전, 도로를 건너는데 한 고양이가 나타났다. 너무 이쁜 까만 고양이. 나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부비부비 거리는 이쁜 고양이.

너무 이뻐서 바로 바나나를 꺼내 잘라줬다. 근데 저번에 멍뭉이도 그렇고 냥이도 그렇고, 바나나를 안 먹는다. 그런데도 계속 내 다리 밑을 맴돌면서 부비적거린다.

나는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져서는,

야옹아 너는 나랑 같이 포르투까지 가는 거야 어때?, 멈추지 말고 빨리 따라와 너 이름은 뭘로 하는 게 좋아?, 나 이제 진짜 가야 돼, 자꾸 앉지 말고 빨리 따라와 주라, 이러면서 십분도 넘게 고양이랑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내가 길을 알려줬던 외국인 부부가 너무너무 고마웠다며 인사를 건네며 지나가고, 같은 숙소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내 앞을 우르르 지나갔다. 그중에 어떤 외국인이 소시지 하나를 꺼내서 고양이에게 줬는데, 내가 준 바나나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소시지에는 왈가닥 달려들어 두 손으로 잡고 먹는다.

나랑 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

나는 진짜 한국에 널 어떻게 데려가야 되나 고민까지 했는데.

그렇게 소시지를 맛있게 먹는 냐옹이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을 다시 나서면서, 너는 미련하나 없는 고양이니까 미냥이라고 부를게, 잘 지내 미냥아, 하고 혼자 생각했다.


마을에서 카페 콘 레체를 한 잔 마시고 다시 출발했다.

오른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걸어가고 있었는데, god의 길이 나온다.

‘나는 왜 이 길 위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갑자기 울컥, 해서는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은 채 걷는다. 혼자라서 다행이야, 생각했다.


그렇게 걷다가 간만에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써있는 간판을 만났다. 이제 절반가량 걸은 셈이다.

출발하기 전과 나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한번 생각해봤다. 글쎄, 뭔가를 더 얻었다는 느낌보다는 많이 가벼워졌다는 느낌이다. 마치 무성한 가지를 가지고 있던 나무가, 시원하게 가지치기를 한 느낌이랄까.


걷다 보면 배고픈 느낌이 들 때가 많아서 오늘은 쉬는 시간마다 달달한 음식들을 챙겨 먹었다. 콜라며, 아이스크림 같은.

한참을 걷다가 사하군에 도착했다.

꽤 큰 동네인데, 오늘 여기까지만 걷기엔 22킬로 정도로 약간 애매하다. 콜라를 한 잔 더 마시며 쉬다가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도시를 막 벗어나니 드라마에서 본 적 있을법한, 큰 나무가 양옆으로 드리운 멋진 길이 나온다.

슬슬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마지막 마을까지 가는 길목에는 가로수 그늘이 인도 쪽으로 나있어 그나마 덜 힘들었다.

걷다가 잠깐 쉬었던 벤치에는

‘WATCH YOUR STEPS!

YOU ARE KILLING ANTS.

THEY ARE ON CAMINO TOO.’

라는 재밌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또 한참을 걷다가 고가도로 아래 그늘에서 잠깐 쉬는데, 거기에 적혀있던

‘Happiness is only real when shared’

며칠 전 방명록의 글이 생각났다.

‘이 길을 걸으면서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 행복을 옆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누구랑 행복을 나눌 수 있을까?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주제에 그게 쉽진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마침내 숙소에 도착했고, 침대는 깔끔했고, 전날과 달리 푹 잘 수 있겠다, 생각했다.

낮잠을 자고 마을 슈퍼마켓에 갔는데 시에스타인지 문이 닫혀있었다. 한참을 앞에 쭈그리고 앉아 기다리는데, 저기 멀리서 사람들이 우르르 오더니 마켓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내일 먹을 간식과 물, 음료수를 사고 돌아가는 길에 바에 들러 햄버거를 먹었다.


오늘 숙소는 4인 1실인데 외국인 아저씨 한 명과 나, 이렇게 둘만 있다. 아까 아저씨 낮잠 잘 때 코를 심하게 고시던데, 오늘 밤엔 어떨지 모르겠다.


-


La Perala


4인 1실에 각 방마다 샤워실이 딸린 화장실이 하나씩 있다.

와이파이도 비교적 잘 잡히는 편.

다만 주방시설이 없어서 순례자 메뉴로 저녁식사를 하거나 마을까지 나가 바에서 먹는 수밖에 없다.

바를 겸 하고 있어서 적당히 여유 부리며 쉬기엔 좋은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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