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수강은방학때 Sep 08. 2019

산티아고 순례길 22일차

레온(León) - 오르비고(Órbigo)

22일차


20. 레온(León) - 오르비고(Hospital de Órbigo and Puente de Órbigo) (31.76km)



-


“우리는 손짓 발짓으로 대충 합의를 봤어요.

그 친구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춤으로 추었습니다. 나도 똑같이 했습니다.

입으로 하지 못하는 말을 발로 손으로 배로 하고, 괴성을 섞어 질렀습니다.

그 손과 발과 가슴과 눈을 보고 있으면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지요.”


카잔차키스 - 그리스인 조르바


-


어떤 사람은 인연보다는 경험으로 남는다.


-


어제 늦게까지 노는 바람에 오늘 늦잠을 잤다. 여섯시 반에 일어나 아침 샤워를 하고 에어비앤비를 나왔다. 리아랑 작별 인사를 못한 게 아직도 아쉽다.


성당 근처에서 일행 한 명을 만나서 같이 동행했다. 일행이 말하길 레온에서 나갈 때 대부분 버스를 타고 나간다길래 우리도 버스를 타고 7킬로 정도 나간 후 내렸다. 내린 마을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으려고 바에 들어갔다. 쥬스와 초코 도넛을 시키고 계산을 하려는데 도넛 값을 안내도 된다면서 손사래를 친다. 고마워용...


일행이랑 같이 쉬엄쉬엄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니엘이라는, 이전부터 만났던 이탈리아 친구가 우리를 따라잡았다. 그렇게 셋이 같이 걸어 오늘 목적지였던 오르비고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한 후에 씻고 낮잠을 자려고 하는데, 한국인 한 명이 바로 옆 침대로 들어온다. 프랑스 길이 아니라 마드리드 길을 걸어와서 한국 사람을 오늘 처음 만나는 거라고 했다.


넷이 함께 마트에 가서 내일 간식거리와 오늘 저녁으로 먹을 삼겹살과 샐러드를 샀다. 그러면서 오늘 처음 만난 분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자기는 예술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언뜻 보기에 그림 쪽은 아닌 거 같아서 혹시나 하고 네이버에 이름을 검색했는데, 오잉? 왜 이 분 사진이 바로 뜨는 거야?

알고 보니 뮤지컬 배우셨다. 와웅.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술도 꽤 많이 마셨다. 열두시가 지나도록. 자전거를 타고 순례길을 온 스페인 아저씨와 알베르게 주인아저씨, 그리고 뮤지컬 배우님이랑 늦게도록 이야기를 했다. 진짜 짧은 영어 실력을 가지고도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지.


배우님은 술기운이 올라오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알베르게 주인아저씨도 답가를 불러줬다. 서로의 순례길 여정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면서.

스페인 아저씨들이 한국어로 고맙다는 표현을 물어보길래 ‘감사합니다’라고 알려줬다. 그 인사는 절대 잊지 않겠다며 이야기하는 자전거 아저씨와 알베르게 이름을 ‘감사합니다’로 바꾸겠다고 이야기하는 주인아저씨ㅋㅋㅋㅋ

주인아저씨는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병맥주를 꺼내주셨다. 새벽 한시가 가까워지면서 잘 시간이 됐다. 서로 아쉬운 마음 한가득 가지고서는, 마지막으로 배우님이 노래를 불러준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난생처음 만난 사람들, 심지어 언어와 문화조차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이렇게나 마음이 통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붕 뜨고 감동적인 밤이었다.


-


Casa de los Hidalgos Hostel


도착하면 웰컴 드링크로 오렌지 쥬스를 준다. 침대도 원하는 자리를 쓰면 되는데 사람이 많지 않아서 웬만하면 일층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각 자리마다 커튼이 있어서 프라이빗 한 환경에서 쉴 수 있다.

멀지 않은 곳에 Dia가 있어서 장을 볼 수 있다. 부엌은 꽤 잘 준비되어 있어 편하다.

주인아저씨도 알고 보면 정 많고 이것저것 도와주시는데 친해지면 병맥주를 자꾸 꺼내다 주신다.

알베르게 이름이 ‘감사합니다’로 바뀌어있을지도 모름.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 순례길 21일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