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세바돈(Foncebadón) - 폰페라다(Ponfer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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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무조각도 성물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카잔차키스 -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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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캐나다, 독일, 미국,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스페인, 멕시코, 프랑스, 일본, 러시아.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길 위에서 만나고
길 위에서 만나지 못한 나라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길을 걸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행운이고 축복인지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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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배우님이랑 같이 출발했다. 다음 마을 가는 길 중간에 나오는 철의 십자가를 같이 보기 위해서. 길 한가운데 높게 솟아있는 철의 십자가는 한 시간 남짓 걷다 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후회, 미련, 미움들이 남겨져 있는 곳. 누군가에게 이곳은 멋진 사진 한 장 남기기 좋은 배경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보자마자 눈물짓게 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할까.
자기가 과거에 지었던 죄를 떠올리면서 용서를 구할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미안했던 마음에 울컥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까?
셀 수 없을 만큼 쌓여 있는 이 돌들의 무게만큼,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응어리를 여기에다 맡겨두고는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섰을까?
그렇다면 나는 얼마큼의 돌들을 이 자리에 남겨두고 가는 게 좋을까?
이 길 이후로 배우님은 또다시 빠른 발걸음으로 멀어져갔고 다시 혼자 걷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오늘은 어제 올라왔던 높이만큼 다시 내려가는 길이라 힘든 내리막을 계속 걸었는데, 고도가 높은 만큼 경치는 더 좋았다. 마치 구름 속을 걷는 기분.
중간에 쉬었던 마을 바에는 아주 작은 개가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으르렁거리고 짖는 녀석이었다. 멋도 모르고 슬금슬금 다가가다가 갑자기 왈왈거리는 소리에 놀라서 뒷걸음질 쳤는데, 그걸 보고 주인이 얼마나 비웃던지ㅋㅋㅋㅋㅋㅋ
오늘 도착한 폰페라다는 꽤 큰 도시였고,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조금 쉬다가, 오는 길에 만난 일행과 먼저 도착해 쉬고 있던 배우님과 같이 맥도날드에 갔다. 스모크하우스? 인가 하는 시그니처 메뉴를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배를 채우고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사람들이 이상한 옷을 입은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경찰들이 도로를 통제하는 걸 보고는 무슨 행사가 있는 건가 생각했다. 그래서 숙소에서 잠깐 쉬고 아홉 시에 마을 축제를 구경하러 다시 나왔는데, 알아보니 이 도시가 과거 템플기사단의 중심 거처였고 오늘이 바로 그 템플기사단을 기리는 마을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밤 열 시 반이 되어서야 행사는 시작됐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엄청 많은 주민들의 행렬이 시작됐다. 지난 역사가 다시 꿈틀거리며 살아나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앞을 지나쳐가는 마을 사람들 모습을 볼 때는, 먼 과거, 길 위의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십자군 전쟁에 나섰을 기사단들의 당당한 모습이 현실이 되어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행사 마지막 화려한 불꽃놀이를 끝으로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내일은 뒤에 오고 있는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 더 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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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ana Hostel
깔끔하다. 단점으로는 미리 예약을 하면 예약비 1유로를 더 받는다. 늦게 가도 자리는 많으니 예약 안 하는걸 추천.
6-7명이서 같이 방을 쓰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방에 열기가 찬다. 중앙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여러 명의 열기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
빨래 건조장소는 밖에 없고 건물 지하에 있기 때문에 빨래가 잘 안 마른다. 다음날 아침 출발하기 전에 챙겨야 할 정도.
주방 비슷한 공간은 있지만 전자레인지와 커피포트 정도 뿐이고 따로 냄비를 다룰 장소는 없다.
출발은 여섯 시부터, 조식은 여섯 시 반부터 가능. 조식은 5유로지만 여러 종류의 빵과 시리얼, 커피와 오렌지 쥬스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