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수강은방학때 Sep 05. 2019

산티아고 순례길 5일차

주비리(Zubiri) - 팜플로나(Pamplona)

5일차


3. 주비리(Zubiri) - 팜플로나(Pamplona) (20.25km)


-


“행복하여라. 배낭은 비어 있지만 마음은 풍요로운 느낌들과 벅찬 감동으로 가득해진 순례자여.”


Zabaldika 성 스테파노 성당 ‘순례자의 행복’


-


걸음걸음마다 마음 양동이 가득 차있던 근심이 넘쳐흘러서일까. 걸을수록 점점 생각이 없어진다.

멍하니 걷는 시간이 늘어난다.


-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오늘은 비교적 쉬운 길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별로... 평소와 같은 길이었다.

가는 도중에 말에게 사과를 던져 주고 있던 동네 아저씨와 아기 꼬마를 만났다. 너희 가는 길에 성당 하나가 있는데, 그 성당 종탑에 정말 오래된 종이 있다고, 가는 길에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주었다.


오늘도 여러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겨우겨우 헤치며 걸었다. 중간 바에서 얼음에 콜라, 바나나를 먹으면서 쉬는 동안 동네 주민이 끌고 나온 리트리버가 얼마나 귀엽던지.


거의 800km에 이르는 이 길은 이 작은 노란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 이 길이 맞는지 궁금해질 즈음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정표 옆에 적혀있던

‘WHAT ARE YOUR DEMONS?’

이 문장을 보니 문득,

‘내 악마를 죽여줘요. 스스로 다치게 할 것만 같아요.’

하는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날 다치게 만드는, 머뭇거리게 해서 겁쟁이로 만드는, 그래서 결국엔 바다 위에 표류하는 유리병처럼 그냥 살게 만드는 악마.


걷다 보니 동네 아저씨가 말했던 성당에 도착했다. 자발디카라는 작은 동네의 성당이었는데, 여행자들을 위해서 각국 언어로 된 안내장이 있었다.

무심코 받아든 종이에는 ‘순례자의 행복’이라는 제목의 글이 적혀있었다. 오늘 만난 최고의 행운.

종탑 위에 올라가 종을 한번 울리고 다시 길을 시작했다.


드디어 오늘 목적지인 팜플로나에 진입했다. 이 도시는 꽤 큰 마을이라 도시에 들어와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걷고 있었는데, 얘네는 얽히고설켜서 한 몸인 양 연결되어 있었다.

너무너무 힘들어 들어간 슈퍼마켓에서는 오레오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는데 진짜 꿀맛이었다.


가는 도중에 물이 든 페트병을 잃어버렸는데, 갑자기 뒤에서 자전거 탄 사람이 내 물병을 들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거 니꺼야?”하고 물어보면서 오고 있었다.

“뎃츠 마인!” 너무너무 고마웠당.

(고마운 뒷모습을 남기고 싶었는데 슝, 하고 가버렸다.)


예약해둔 아파트먼트는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웰컴 드링크가 와인 한 병에 각자 맥주 한 캔.

푹신한 침대, 넓은 화장실까지.

다만 오늘이 일요일인터라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서 우리가 계획했던 목살 고추장찌개와 삼겹살은 물 건너갔다ㅜㅜㅜㅜ

진짜 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훨씬 더 맛있었던 (스낵면 스프 2개를 넣은)고추장찌개와 계란 프라이, 그리고 냄비밥.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라는 문장이 너무나 공감되던 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내일 출발을 위해 잘 준비를 했다. 푹신한 매트리스, 포근한 이불, 차가운 베개와 함께 하루를 끝맺는다.


-


Apartamento “Tu Sitio”(에어비앤비)


진짜 좋았다. 웰컴 드링크도 그렇고, 시설도 너무 좋고.

며칠이고 더 묵고 싶을 정도로.

싱글 침대 2개와 퀸 사이즈 침대 1개

1박에 60유로. 네 명이 같이 지냈으니 인당 15유로꼴.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 순례길 4일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