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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수강은방학때 Sep 05. 2019

산티아고 순례길 6일차

팜플로나(Pamplona) - 푸엔테 라 레이나(Reina)

6일차


4. 팜플로나(Pamplona) -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23.65km)


-


“할머니, 용서가 뭐야?

없던 일로 하자는 거야?

아님, 잊어달라는 거야?”


“그냥 한번 봐달라는 거야.”


김애란 - 노찬성과 에반


-


세상 만사, 그럴수도 있지.


-


아침을 대충 먹고 여덟시쯤 길을 나섰다. 워낙 큰 도시라 어디로 가야 될지 몰라 헤매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외국인 네 명이 길가 한복판에서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짠했는지 할아버지 한 분이 길을 알려주셨다.

그런데 우리가 스페인어를 못 알아듣는듯하니 자기를 따라오라면서 앞장서기 시작한다. 스페인 사람들 진짜 착하다.

너무 감동받아 무진장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할아버지와 헤어졌다.


팜플로나를 나와 작은 마을을 지나가는데 엄마 차에서 내리던 꼬마 아이가 우리를 보고서는 엄청 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부엔 까미노!!!!!” 하면서 인사를 해준다.


걸으면서 저 멀리 보이는 산 능선에 풍차들을 보며 설마 우리가 저걸 넘어가려나 생각했는데,

응~ 넘어서 훨씬 더 가야 돼~

첫날엔 부끄러웠던지 낯을 가리며 구름 뒤에 숨어있었던 태양이, 어제부터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더니 오늘은 정말이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그늘 하나 없이 보리밭을 보는 심정이란, 순간 농부가 된 줄 알았다.


너무 더워서 다음 마을에 도착해 성당 그늘 밑에서 콜라와 빵을 먹으며 쉬고 있었는데, 어린애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우리가 쉬던 그늘에 앉아서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 중국 말로 인사를 하길래,

“꼬레아노”라고 얘기를 해줬더니 알아들은 듯했다.

스페인이라 그런 건지 밥을 먹자마자 축구공을 차기 시작하는 아이들,

그런데 스페인 사람처럼 보이는 순례자 한 명이 아이들과 함께 축구 트래핑을 시작한다.

와...목뒤로 공을 넘기고 발을 두세 번씩 돌려가며 트래핑을 하는데 넘 멋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한테 “아디오스!” 인사를 건넸더니

“부엔 까미노 꼬레아노!” 하고 대답이 돌아온다.


산 중턱 푯말에 적혀있던

‘Don’t forget.

YOU WERE ALWAYS ON THE WAY’

사실 나는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걸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사는 것마저 누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거 같아서.

하지만 이 길을 걷다보니 꼭 그런것만은 아닌듯 싶다. 길이라고 꼭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어떤 목적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러면서 종종 목적지를 수정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거라면 길만큼 인생을 비유하기 적절한 개념은 없는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풍차를 따라 올라오다 보니 용서의 바람 언덕까지 올라왔다. 여기까지 오니 풍차가 바로 옆에 보이고, 여태껏 안 불던 바람이 여기에서만 시원하게 불어온다.

이 많은 풍차들 중, 내 바람은 어디를 지나쳐 갔을까.


출발할 때 기온이 13℃ 정도로 딱 좋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치솟더니 도착 직전에는 수은주가 32℃를 찍었다.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 더워서 걷고 쉬고를 반복하다 보니 네 시가 다 돼서 숙소에 도착했다. 씻고, 근처 마트에 가서 저녁거리와 내일 챙길 음료수, 간식을 샀다. 

근데 스페인 물가가 약간 이상하다. 삼겹살 560그램에 3천 원??

4명이서 토마토 스파게티와 삼겹살을 해 저녁을 먹었는데 8유로(만 원?)도 안 나왔다.


오늘은 너무 힘들고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저녁을 먹고 바로 잘 준비를 했다. 내일부터는 해뜨기 전, 새벽 일찍 일어나 걷기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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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ue Pilgrims Hostel


긴 복도식 구조에 이층 침대 두 개씩 자리해 가림막으로 가려지는 형태.

조리시설도 있고 자판기도 있고 바도 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Dia가 있는데 참 애매한 거리.

시설은 그냥저냥 평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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