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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임 Jul 25. 2022

아이가 말을 걸었다 12

대화가 시작되자, 아이의 모든 말은 내게 질문이 되었고 답이 되었다

언재 밥먹고
언재 책읽고
언재 잘거야?


말에서 갑자기 글로 바꼈다. 편지를 쓰기 시작한 여섯살. 이제는 매일 아침마다 내 머리맡에 편지를 두고, 퇴근 할 때면 현관에 편지를 써서 바닥에 둔다. 얘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좋아하던 아이가, 이제는 내게 답장을 원한다.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하길래 대견하다 싶었는데, 불과 몇 주 사이에 라임까지 넣어가며 나를 희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랜만에 회식을 하고서는 좀 아쉬운 마음에 집까지 후배를 데려왔다. 늦은 밤까지 2차가 이어지는데, 애는 놀아달라고 보챈다. 있다가 놀아주겠노라 미루고 미루다가 새벽 두시까지 흘렀다. 꼼지락 꼼지락 하더니 내 술잔 옆에 편지를 둔다.


"언재 밥먹고

언재 책읽고

언재 잘거야?"


쉬운 맞춤법은 틀리고, 자음 두개짜리 맞춤법은 용케 맞춘다. 편지를 들고 후배와 한참 웃다보니 쇼파 위에서 진짜 잠이 들었다. 소리라고는 우는 소리밖에 못내던 아기가, 눈맞춤을 하고 웃는 소리를 냈다. 옴마, 옴마를 옹알이더니 엄마를 부르고, 아빠 소리까지 냈다. 아이 입에서 나오는 의미없는 소리들이 의미있는 소리가 되는 동안 얼마나 귀를 기울였던가. 주어, 서술어도 없이 나오는대로 단어를 내뱉고, 나는 애써 그것들을 조합하여 아이의 의중을 맞췄다. 물론 100점짜리 듣기는 아니었지만, 수능 영어보다 더 섬세하게 문장을 풀어내려 애썼다.


이제 대화가 통한다 싶었는데, 게으른 엄마는 나태지옥에 빠졌다.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도 전에 "있다가, 잠깐만."하며 아이의 말을 미룬다. "나중에 얘기하자"는 말로 아이의 말문을 닫게 만들었다. 내 기분에 따라 내 귀를 여닫는다. 아이는 엄마 기분에 맞춰 말문을 여닫는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조금씩 신호등이 되어간다. 오솔길처럼 따스한 대화의 통로는, 어느새 규칙과 규율을 따져야 하는 도로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아이와의 대화가 즐겁다. 삐뚤빼뚤 "언재" 하느냐는 아이의 편지는, 뭔가 내게 화두를 던져줬다. "언재나" 열려있던 귀는, "어쩌다" 열리는 귀가 된게 아닐까. 내일은 좀더 많이 들어줘야겠다. 그리고 맞춤법도 조금 더 가르쳐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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