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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임 Sep 23. 2023

아이가 말을 걸었다. 21

38도가 좋을 것 같아

뒤늦게 독박육아 전선에 뛰어들었다. 복직없는 육아휴직을 다짐했지만, 한달도 되지 않아 벌써 '복..'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생각보다 내 아이에 대해 잘 몰랐다. 휴직 전만 해도 나는 내가 아이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줄거리만 읽고서도 그 책을 다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아이와 만나는 시간은 하루 3시간 남짓. 퇴근해서 3시간이 아이와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이었다. 물론 주말은 예외지만. 평일은 대충 그랬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런거다. 장거리 연애가 오래갈 수 있는 비결이다. 자주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짧은 시간 서로는 최선을 다해 서로의 좋은 면만을 보여주려 애쓴다. 우리가 함께지내는 3시간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시간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친절하고, 아이는 최선을 다해 착한 어린이 행세를 한다.


2017년 7월 7일, 아이와 만난 이후 3개월간의 출산휴가. 그 이후로 늘, 한결같이 우리는 그런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그게 2023년 9월부로 균열이 생긴것이다. 3시간의 가식이 그날부로 끝난거다. 더이상 우리는 서로에게 잘보일 필요가 없어졌다. 언제든, 계속 볼 수 있으니까.


내 짧은 육아휴직의 기간 동안 우리는 대략 이랬다. 첫 주는 호주여행이었다. 나는 그저 한없이 너그러웠다. 그래서 무사히 그 여행을 마쳤다. 이건 순전히 내 기분이 정말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주차. 아이가 유치원에 갔다. 유치원에 가있는 동안 집안 청소를 하고 나름대로 시간의 환기를 가졌다. 지금 3주차. 아이가 편도염으로 입원했다. 하루 24시간, 내내 둘만 붙어있는 일상을 4일째 보내고 있다.


여행지에서의 너그러운 시절은 지났다. 현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너무나 길고 지루하다. 놀아주는 방법도 모르고, 긴 대화를 이어가는 능숙한 기술도 없다. 온전히 응석을 받아줘야만 하는 시간이다. 물론 상대의 입장도 있다. 화를 내도 엄마가 곁에 있고, 투정을 부려도 엄마가 있다. 그러니 더이상 착한아이 코스프레는 안해도 된다. 참아왔던 응석을 부릴 절호의 찬스다.


위태로운 입원생활, 독박 육아 시간이 4일을 넘어가고 있다. 이정도 가지고 고충이냐 싶냐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나는 이제 갓 육아에 던져진 초보엄마다. 그 입장을 이해해줘야 한다. 내게는 지금이 적응기다.


우리가 위태로운 병원동거를 이어가는 동안, 나는 점차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기저에는 배신감이 깔려 있었다.


'내 아이가 이렇게 말을 못됐게 하는 아이였나?'

'왜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지?'


배신감이 컸다.


그리고 어느날 밤, 아이와 좁은 침상에 누워서 대화를 나눴다.


"어휴, 차라리 내가 아팠다면 더 나았겠다"(그랬다면 입원은 안했을테니까.)

"그럼 엄마도 열나고 아프잖아"

"괜찮아 난 어른이니까 웬만큼 아픈건 참을 수 있지"

"그럼.... 우리 38도 하자"

"왜?"

"많이 아프진 말고, 1도씩 나눠가지면 되잖아. 나도 조금만 아프고, 엄마도 조금만 아프고"


38도가 적당하단다. 입원하기 전 40도까지 올랐던 이녀석의 이마를 수없이 만지며, 제발 열이 떨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해열제는 안 듣고 애는 지쳐가고. 옆에서 죄책감에 눈물이 났던 나였다. 밤새 한숨 못자고 아이를 안고 찾았던 병원이었다. 입원하고서는 마음이 조금 나아졌는데, 그깟 며칠 함께지내며 답답한 마음에 아이에게 짜증을 부렸다. 엄마는 그렇게 감정기복이 심했다.


그런 엄마에게 아이가 제안한다. 둘다 아프지 말자고. 참을 수 있을 만큼만, 1도씩만 나눠갖자고. 이 착하고 지혜로운 아이 앞에서, 엄마는 또 부끄럽고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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