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방법을 가르쳐줘서 고마워
어릴 적 우리집에 특별한 가훈은 없었다. 하루는 가족끼리 모여 술을 마시는데 가훈 얘기가 나왔다. 우리집에 가훈이 어딨냐며 코웃음치는 남동생에게 얘기해줬다.
"지알아서"
부모님은 빵터졌다. 좋게 말하면 굉장히 자립심을 강조하는 분위기였고, 나쁘게 말하면 돈터치였다. 뭘하든 어떻게 되든 그건 '지알아서' 할 몫이었다.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사춘기 때는 굉장히 싫어하던 분위기였다. 무관심한 부모 밑에서 자기 알아서 살길을 찾는다는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어느 학원을 갈 지도, 무엇을 배울지도 스스로 정해야 했으니까. 비만 오면 우산을 들고나타나는 친구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어찌됐든 안전하게 집으로 갈 방법을 혼자 고민했다.
다행히도 우리 삼남매는 굉장히 자립심이 강한 편이다. 스무살이 되면 당연히 집을 떠나야 된다고 생각했고, 조금 더디기는 했지만 경제적 자립이 당연한거라 여겼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엄마에게 등록금 달라는 말을 못해서 장학금을 받으려 악착같이 수를 쓰고, 주말 알바는 당연히 해야하는 거라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당연히 스무살 넘은 성인이라면, 아니 어린 아이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자질을 갖추는건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소심한 성격의 우리 아이, 외동으로 자라서 모든 걸 부모가 다 해주는 입장인 내 아이는 나의 어릴 적과 매우 다르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쉽게 맺지 못하고 자꾸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녀석을 보면 허파가 뒤집어진다. 이녀석이 A형이라 그런가, 싶다가도 내 입장에선 답답하기 그지없다. 일곱살이나 된 놈이 아직도 엄마보고 놀아달라니, 내가 이렇게 나약한 녀석을 키워왔던가. 그런 마음이 욱하고 올라오는거다.
며칠 병원에 입원해있다보니 예민도가 급상승했다. 하루종일 애와 함께 있는 건, 하루종일 지루하지 않게 놀거리를 제공해야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 놀아줘'라는 소리를 오백번은 더 들어야 한다. 내 한계는 정해져 있는데 이녀석은 자꾸만 놀아달라고 한다. 밖에서는 이미 소아과 병동에서 친해진 언니오빠, 동생들이 뛰어놀고 있는데, 이녀석은 도통 나갈 생각이 없다.
한번만 나가서 안면을 트면 내가 편해질 것 같은데 말이다.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도대체 왜 너는 나가질 않아?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지 않아? 너 나이가 몇살인데 왜 자꾸 엄마한테 놀아달라고 하는거야? 너는 혼자서 못놀아? 혼자서 못놀겠으면 친구를 사귀면 되잖아?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야? 너 유치원에서도 이래? 맨날 혼자 노는 거야? 친구 만드는거 할 줄몰라?"
글로 옮기는 것보다 더 모진 말들을 내뱉었다. 그러면 안되는데, 정말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한참 동안 할말을 쏟아내고 나서야 아이 눈을 바라봤다. 서운한 표정이 한가득이다. 엄마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뭐라 답도 못한다.
"종이랑 펜 들고나가서 그림이라도 그려, 니가 안에 있으면 아무도 너를 모른다고. 그냥 나가기라도 해"
뭐라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서운할까. 놀아주기 싫은거면서 괜히 소심한 지 성격탓을 해대니, 엄마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아이는 주섬주섬 펜과 종이를 들고 터덜터덜 밖으로 나갔다. 병원 복도를 걸어가는 아이의 링겔 바퀴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엄마.."
빼꼼이 문을 열고 아이가 부른다.
"어, 왜?"
"고마워. 엄마가 방법을 가르쳐줘서, 나 이제 놀 수 있어"
눈물이 났다. 너는 그렇게 모진말을 듣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건지. 한참있다가 아이는 다시 돌아왔다. 귀여운 그림을 썩 잘그리는 우리 아이가 혼자 쇼파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단다. 그러다보니 지나가던 선생님과 친구들이 그걸 보고서 다들 이쁘다고 한마디씩 거들었나보다. 기분이 좋았던 아이는 계속 그림을 그리다가 들어온거다. 물론 이후로 며칠동안 매일 저녁마다 밖에 나가 놀 빌미를 만든건 안비밀.
엄마가 억지로 손에 쥐어진 종이와 펜 덕분에 친구를 만들 수 있었다며, 그게 고맙다는거다. 아이가 다시 나간 후에 나는 한참동안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다. 안아프게 널 키우고 싶은데, 매일 모진 말로 널 아프게 키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