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아이들의 상처 치유기
센터에는 아무래도 발달이 늦은 친구들의 방문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뇌병변, 자폐, 느린 학습자, 선천적으로 신체적 불편함을 가진 친구들 등
이런 친구들을 만날 때 결과를 생각하고 수업에 들어가면 정말 눈앞이 캄캄하고 미래가 그려지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발달이 늦은 친구들은 늘 센터, 병원, 학교 등을 다니느라 지쳐있다. 특히 신체의 어려움으로 물리치료나 운동치료를 함께 병행하는 친구들은 더욱이 힘들어한다.
어른도 매일 운동하는 것이 고역인데 몸의 움직임이 힘든 아이들은 오죽 할까 싶다.
이 친구들(특히 신체적 불편하이 있는)을 만날 때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태도가 보인다.
*결코 전부 그렇다는 건 아니다.
1. 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야.
2. 누군가 해주겠지?
3. 의지의 상실(어차피 질 텐데)
치료실에 오면 문을 안 닫는다.
항상 누군가 뒤따라오며 닫아주는 것이 습관이라 본인이 닫을 필요가 없었기에
무엇이 굴러 떨어져도 누군가가 줍겠지 하고
본인은 주으러 가지 않는다.
게임을 할 때 전투력이 없다.
치료실에서는 문 닫기부터 시킨다. 뒤를 돌아봐 잊은 거 없어? 하면 깜짝 놀란다, 동그란 두 눈으로 얼른 닫는 귀여운 아이들
이기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기 위해 100번쯤 져준다 엎치락 뒤치락 얼마뒤에는 자신감이 상승하면서 선생님을 이겨먹으려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다.
아이들이 왜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어른인 우리의 태도 때문이 아닐까
넌 잘 못 걸으니까 쉬어. 내가 해줄게
넘어질라
넌 도움 주기는 어렵지. 우리가 널 도와줘야지
넌 도움 받아야 할 사람이야.
알게 모르게 만들어진 프레임. 이것이야 말로 차별 아닐까?
언젠가 그 아이들이 세상에 나갈 날을 생각하며 난 오늘도 독한 치료사가 된다. 태도를 만들어 주려.
오늘도 더욱더 도움 주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네가 해. 네가 할 수 있어. 너도 배울 수 있어.
친구들과의 달리기에서 이길 수는 없겠지. 결과만 생각하면 슬퍼지겠지.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보려는 그 태도.
열심히 뭐든 해볼 테야. 그 전투력이 있다면 그게 너의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테니
혹시 혼자서 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일까지 안쓰러움에 힘들어 보여서 먼저 다 해준건 아닌지
요청도 하지 않은 도움을 준건 아닌지 오늘도 자동 반사적인 나의 행동을 돌아본다.
게임하면서
○○아 !! 몇 개월 전만 해도 너 이거 못 했는데? 잉? 어떻게 된 거야?!! 하면 씩 웃으며 말한다.
아~ 연습했죠~ 선생님도 연습하면 잘할 수 있어요!
맑은 물 처럼 투명한 내 아가들
내가 준 물 만큼 자라나는 내 새싹들
나의 힐링, 나의 비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