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이다. 그러니까,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단군할아버지를 기리는 날이다. 고조선의 건국 신화는 모두가 알다시피 인간이 되고 싶다며 찾아온 곰과 호랑이에게 환웅이 백일 동안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고 버티면 인간이 되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걸었고, 곰이 백일 동안의 시험을 통과해 이른바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나는 이 신화를 당시의 토테미즘과 연관시켜 곰을 숭배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 사이에 지역 패권을 다투는 경쟁이 있었고, 곰을 숭배하는 부족이 경쟁에서 승리해 지역을 장악하고 세력을 굳건히 키운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신화가 아니라 신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고민하는 거다. 오늘은 5천 년 전이 아니라 2018년이다.
관함식이라는 것을 하는데 한국 해군이 일본 해군에 욱일기를 달고 오지 말 것을 요청하자 일본 해군 측에서는 예의가 없다면서 그럴거면 아예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 세간이 시끄럽다. 욱일기가 어떻고 전범기가 어떻고 독일과 달리 일본이 사죄를 하지 않고 하여간 말이 많고 시끄럽다. 그런데 그 전에, 거기가 어디고 도대체 뭘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사정은 이렇다. 제주도에서 세계 해군 축제가 열린다. 그 왜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 그리고 해군기지로 기억되는 그곳 있잖나. 그 충돌의 시간을 치유하겠다며 그 장소에서 세계 해군 축제를 연다는 거다. 그 축제의 일환으로 관함식이라는 것을 하는 거고 이 관함식이라는 것은 해군 함정을 모아다 그 위용을 과시하고 검열하는 행사를 일컫는다. 대항해시대가 제국주의로 이어져 몇 개의 제국이 식민지를 수집하던 때 생겨난 군사적 행사다. 제국주의로부터 이어오는 어떤 행사를 제국주의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어야 했던 곳에서 주최한다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이상하고 바보같은가? 게다가 축제라느니 치유라느니 하는 것은 군대가 전쟁이라는 폭력을 다루는 집단임을 가린다. 욱일기를 달고 오네 마네가 문제가 아니라 관함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딴 행사를 그 장소에서 한다는 발상 자체가 절망적이다. 잘 따져봐야 한다. 오늘은 18세기가 아니라 2018년이다.
중고등학생들의 두발을 자율화 한다는 서울시 교육청의 선언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학생에게 어울리는 머리는 따로 있다, 학생은 꾸미지 않아도 예쁘다, 외모 신경 쓸 시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들이 떠돈다. 심지어 어떤 교사라는 양반은 강력한 법치와 규제만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학생들을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취지의 글을 쓰고 페이스북에서 따봉을 받기도 했다. 일단 강력한 법치가 강력한 규제를 뜻하는 것이 아니므로, 법치라는 것과 규제라는 것을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 하는 말은 그냥 무시해도 좋으련만, 해로운 말과 해로운 글과 해로운 정신은 이렇게 따봉과 함께 가을 전어 굽는 냄새 퍼지듯이 확산된다. 지난 100 년을 좀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처했던 상황은 갑자기 일본 제국이 들어와 통치를 하며 여러가지 것들을 강제했던 거였고, 그 시기가 지나고 겪은 상황이란 건 전쟁을 겪으며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에 의해 또 여러가지 것들을 강제로 못하게 된 거였고, 그 시기를 지나쳐 처했던 상황이란 것은 이승만부터 박정희를 거쳐 전두환에 이르는 독제를 겪어내며 또한 여러가지 것들을 강제 받게 되었던 거였다. 이 빌어먹을 강제의 경험으로부터 자유니 인권이니 평화니 주체적 존재니 인간성이니 하는 것들의 소중하고 타협 불가능한 이유들을 깨닫기 위해 역사라는 것을 배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머리를 마음대로 못하게 했다는 걸 창피하게 여겨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게다가 헤어스타일을 보고 편견을 갖는 이들이 누구보다 해로운 법이다. 오늘은 1988년이 아니라 2018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