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음반을 산다는 것은 곧 카세트 테이프를 산다는 의미였다. 그땐 그게 아직 보편적이었고, 녹음하거나 덮어쓰는 것도 아주 간단하고 쉬웠으며 무엇보다 저렴했다. 기억을 더듬으면 대략 어떤 가수의 신보 카세트 테이프 음반 하나는 사천 원 정도였다. 90년대 말의 이야기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나의 소원은 ‘워크맨’을 갖는 거였다. 난 그걸 ‘이어폰’이라는 용어로 잘못 알고 있었고, 친척 형이나 누나에게 이어폰이 보통 얼마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당연히 이어폰의 가격을 알려줬다. 만 원 정도 한다는 그들의 대답에 생각보다 싼 물건이라며 안심했고, 어느날 용돈을 모아 만 원을 들고, 물론 들뜬 마음과 함께 사실은 워크맨인 ‘이어폰’을 사러 용산 전자상가에 갔던 나는 곧장 창피함과 허무함과 무기력함을 한웅큼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어폰으로 알고 있던 워크맨은 적어도 열 배의 용돈을 모아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절망적인 시간이 흐르고 중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겨울이 되어서야 워크맨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가지게 됐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사촌형이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샀고, 사촌형의 워크맨을 물려받았던 터라 새것도 아니고 자꾸 배터리 단자 뚜껑이 열려 스카치 테이프로 고정해야 하는 결함도 있었지만 생전 처음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거리를 걸으며 음악을 들었던 그때의 생경한 느낌은 아직도 정확하게 복기할 수 있다. 그날은 눈이 내렸고, 구름이 많았고, 음악은 그 구름이 많은 하늘에서 울려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들은 것은 1995년에 발매된 마이클 잭슨의 히스토리 앨범이었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세상은 꽤 많이 변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그때 처음 세상에 나왔고, 게임방이라 불린 최초의 PC방들이 생겨났다. 당구장과 게임방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혼란한 시기, 워크맨이라 불리던 그 휴대용 카세트가 완전히 휴대용 CD 플레이어에 밀려나고 있었다. 그때도 용돈을 모아 용산 전자상가에 갔는데, 더이상 어린이가 아니었던 덕인지 제대로 알고 가서 CD 플레이어를 사는데 성공했다. 카세트 테이프와 CD는 완전히 달랐다. 늘어나는 일도 없었고 A면과 B면으로 구분되어 있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음질의 차이는 어땠는데. 내가 듣던 마이클 잭슨과 CD로 듣는 마이클 잭슨은 확실히 달랐다. 훨씬 실력이 출중한 밴드를 대동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때 참 많은 CD를 샀다. 메탈리카라든가 드림시어터라든가.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또다른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찾아왔다. mp3라는 것이 등장했다. 아날로그의 테이프에서 디지털 신호를 저장한 CD로 넘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아예 음반의 실체 자체가 디지털 파일인 형태로 바뀌고 있었다. 숨가빴다. 그때 친구들 사이에서 작은 논쟁이 일어났다. CD 음질과 mp3 음질을 구분할 수 없다는 주장과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충돌했다. 전자의 주장을 하는 쪽이 많았고 이 논쟁은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쪽의 영원한 승리로 끝나버렸다. 그걸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도 전에 우리는 고3이 되어버렸고, 수능이 끝난 후엔 그따위 논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1월 1일이 되자 성인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벅찬 감동과 함께 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CD 플레이어니 mp3 플레이어니 뭐가 더 좋으니 하는 건 어느새 얼마나 작고 얼마나 가벼운지가 관건인 세계로 변해 있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예술가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CD와 mp3의 음질 차이에 관해 이야기 하게 됐던 적이 있다. 한 영화 음악 감독이 자기는 정말로 정교하게 구분할 줄 안다면서 테스트까지 해봤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밤새도록 음악과 음원과 음질과 음향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됐다. 고등학생 때 덮어 두었던 책을 다시 읽은 것만 같았다. 그랬다. 실제로 이건 ‘구분 가능한’ 거였다. 물론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기도 하고 훈련이라는 것이 필요하긴 했지만 말이다. CD와 mp3의 차이는 ‘무손실 음원’과 ‘손실 압축 음원’의 차이라는 층위로 옮겨 판단할 수 있다. 이 둘 사이를 지나며 잃어버린 무언가를 사람이 간파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에 이른다. 이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그걸 감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얼마나 많이 들어봤고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져왔느냐의 차원으로 향하게 된다. 1080p의 화질과 4K의 화질을 구분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다. 누군가에게는 그정도 차이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서 무시해버려도 좋은 거지만 누군가에게는 굉장한 차이라서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 차이다. 1080p의 해상도든 4K의 해상도든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고 텔레비전에서 스타 강사가 나와 아무런 말이나 떠들면 그런가보다 하고 보면 되는 사람에게 그런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겠지만 행여 영화를 만들거나 영상을 만들고 이미지를 만들거나 하는 작가에겐 상당히 중요한 차이이자 극명한 차이라는 말이다.
나는 CD와 mp3의 차이를 정확하게 짚어내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 사이에 분명히 차이가 존재하고 그 차이는 누군가에겐 꽤 중요하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다만 나는 장담하는데 장수막걸리와 느린마을 막걸리를 정확하게 구분해낼 수 있다. 물론 가평 잣막걸리와 지평막걸리도 정확하게 구분해낼 것이다. 공주 알밤막걸리와 봉평 매밀막걸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적어도 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만약 내가 ‘막걸리 오타쿠’거나 막걸리를 만드는 장인이라면 이 차이를 좀더 정교하게 가늠하고 또 정확하게 구분하는 일에 몰두할지 모른다. 그런 훈련을 통해 각 막걸리의 특성과 장단점을 파악하고 나의 일에 적용시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차이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그 차이를 명확하게 감각하기 위해 노력해 보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에게 굉장히 중요한 태도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차이의 존재나 이런 태도 자체를 부정하면서 교만한 언어를 뱉어내고 익숙한 아집만 부리는 이가 있다면, 최대한 멀리하는 편이 좋다. 가을이다. 막걸리 마시기 좋은 계절이다. 오늘은 어떤 막걸리를 마실지 성실히 고민해보자. 맛이 다양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