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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황 Aug 24. 2018

옥탑방에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박원순의 망상에 부쳐

어느날, 박원순 시장이 옥탑방에 들어갔다.


덥다.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덥다느니 하는 통계에 기댄 표현으로는 이 더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덥다. 얼마나 덥냐면, 지난 일요일에 이삿짐을 싸야 할 일이 있어 박스를 구하러 돌아다녔는데, 한낮이었고, 한낮의 더위는 기어코 사람을 쓰러뜨리고야 말겠다는 기세로 있는 힘껏 달려들고 있었고, 평소 같았으면 곳곳에서 길에 내다놓은 박스들이 귀신같이 없어져야 했을 시간이었으나 쓸만하고 큼직한 박스가 길가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다. 킬로그램 당 고작 몇십 원 하는 박스를 리어카에 수북하게 쌓아 고물상에 가져다 팔면 고작 만원 남짓의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노인들은 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며 박스를 ‘수거’한다. 이들에게 박스 수거는 어쩌면 유일한 경제활동일 것이다. 그런데 이 더위는 그들이 경제활동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로 맹렬하다. 노인들에게 박스는 생존의 수단이므로, 박스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생존을 포기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일지 모르는데, 노인들이 도무지 리어카를 끌고 거리로 나오지 못할 정도로 덥다는 것은, 이 더위가 이들에겐 사실상 폭력에 가까울 정도로 위협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옥탑방에서 짐을 정리 중인 박원순 시장 부부.


사실 박스를 아무런 시간에 아무렇게나 버리면 안 되는 거고, 이 사회는 어느새 ‘그래도 박스는 내어다 놓으면 금세 가져가니까 괜찮다’는 모종의 비공식적 합의를 끝낸 상태고, 이 암묵적 합의를 끝낸 우리는 적어도 박스는 아무 때나 아무 데나 버려도 되는 세계에 살게 됐는데 이 세계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인들이 필요하다. 노인들 중에서도 박스를 내다 놓는 쪽의 삶, 그런 삶의 궤도로부터 튕겨 나간 삶을 사는 노인들이 필요하다. 이 사회는 ‘거리의 박스를 재화로 삼아 돈과 교환하는 행위’를 노인들에게 위임하면서 동시에 노인들을 유기했다. 그들의 행위를 ‘폐지 수거’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을 유기한 이 사회를 애써 가린다. 생존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우리가 버린 폐지를 줍는 그들의 행위를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 폐지를 줍던 노인이 온열질환에 걸렸는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누군가 내다 놓은 박스를 보고 횡재했다는 기분으로 달려가 주우면서 흘린 땀에 속옷부터 겉옷까지 흠뻑 젖었다. 하지만 나는 이 체험을 토대로 폐지 줍는 노인들의 삶이나 그들의 존재 방식이나 그들의 실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내가 정말로 생존을 위해 폐지를 줍는 때가 오지 않는 이상 나는 절대로 그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박스를 주워 에어컨이 빵빵한 곳으로 들어가 더위를 식혔다.


얼마전 뉴스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삼양동의 한 옥탑방으로 거처를 잠시 옮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민의 삶을 이해하기 위함이라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출사표와 연일 보도되는 그의 옥탑방 생활을 담은 사진을 나는 관조하고 있었다. 가타부타 말을 보태기도 귀찮을 정도로 더웠고, 해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이상 관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풍기를 선물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이 모든 것이 그가 세계를 잘못 인식해서 잘못 기획된 연극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그에게 전달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옥탑방에 한 달 동안 살면서 그가 체화한 것은 무엇일까? 이 기록적인 폭염이 밤잠을 설치게 만든다는 것? 2018년의 서민들이 고무신을 신지는 않는다는 것? 30도가 넘는 서울의 옥탑방 평상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 과연 이런 것들이 그에게 서민을 좀더 자세히 이해하게 만드는가? 이 다음은 ‘반지하에서 한 달 살기’인가? 그 다음은 ‘행복주택에서 한 달 살기’인가? 그 다음은 ‘임대 아파트에서 한 달 살기’인가? 내친김에 박스도 주우러 다닐 셈인가? 대치동으로 갈 여력이 안 돼 버스로 몇 정거장 떨어진 잠실의 모 아파트 단지에 빚을 얻어 들어가 주거비용과 교육비로 수입의 대부분을 토해내 돈 몇천 원에 손을 바들바들 떠는 이들의 삶도 체험할 것인가? 야간에 택시 운전을 하며 취객도 상대해볼 것인가? 월세 1000만원의 임대료를 주고 장사하며 폐업의 절차를 밟아볼 것인가? 어디까지 체험해야 그는 서민을 자세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한달로 끝나지 않는 생존의 무게는 끝내 상상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자그마치 천만 개의 각기 다른 삶이 모인 도시가 서울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체험할 셈인가?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박원순이 옥탑방을 나오며 이렇게 말했다.


“박 시장은 옥탑방 입주 후 여러 차례 “예전에는 동네마다 구멍가게, 양장점, 전파상, 작은 식당들이 있었는데 다 사라졌다”며 대형마트,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며 붕괴한 골목상권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연합뉴스 기사 중)


그래.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한 맛을 낼 줄 아는 골목 어귀의 작은 식당, 오랜 경력의 재단사가 운영하는 양장점,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평상과 구멍가게, 냉장고 텔레비전 가릴 것 없이 척하면 척 고치는 맥가이버가 있는 전파, 얼버무려 설명해도 곧잘 알아듣고 원하는 매무새로 머리를 다듬는 단골 미용실. 2020년대를 눈앞에 둔 지금, 서울에서 이런 그림을 만들기를 원하는 이가 있다면 그의 직업은 아마도 영화 감독이나 드라마 프로듀서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이미지를 연출하려면 제작비가 상당히 들어갈 테다. 동시대의 시점에서 조금만 벗어난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드는 데에는 상당한 돈이 들어가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이걸 진짜로 그리워하고 이게 진정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행정가고 정치인이라면, 제작비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전체, 나아가 시민의 삶 전체가 흔들린다.


박원순이 생각하는 그 전파상은 1996년 홍콩 영화 <첨밀밀>에 등장한다. 지금은 2018년이다.


골목 어귀의 작은 식당? 그래, 중국집을 예로 들어보자. 배달만 하는 그저 그런 집이야 생기든 없어지든 솔직히 알 바 아니다. 그보다 화교 출신의 주인장이 재료나 레시피에 꽤 공을 들인 탓에 입소문을 타고 제법 먼 동네에서도 짬뽕 하나를 먹으려고 부러 찾아오는 그런 식당을 예로 들어보자. 그런 중국집이 프렌차이즈가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보다 획기적인 방법으로 전국구의 짬뽕이 된 사례가 있다. 이마트의 즉석식품 브랜드인 피콕에는 초마 짬뽕이라는 냉동 짬뽕이 있는데, 3대를 거쳐 짬뽕 맛을 지켜온 동네 짬뽕집과 계약해 냉동 짬뽕 형태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2인분에 5천원 대이며, 감히 단언하는데 웬만한 동네 중국집 짬뽕은 비교할 만한 수준이 아닐 정도로 썩 괜찮은 맛을 자랑한다. 이런 사례가 한둘일까? 다른 예도 들어볼까? 잠실 신천동의 새마을시장엔 내가 좋아하는 닭강정 집이 있다. 배달은 전혀 하지 않는 탓에 닭강정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매일 볼 수 있다. 하지만 택배로는 전국 어디든 배송한다. 속초의 명물이라는 만석 닭강정이나 중앙 닭강정도 그렇고 닭강정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동인천의 신포 닭강정 역시 그렇다. 귀찮지 않다면, 동네 닭강정 집이 변변찮은 경우 인터넷으로 이들 중 하나를 골라 주문하면 다음날 편의점의 네 캔 만원 맥주와 함께 근사한 저녁을 만들 수 있다. 양장점은 어떤가? 유니클로에서 싼 값에 그럭저럭 괜찮은 옷을 쉽게 살 수 있는 시대에 요즘 누가 옷을 맞춰 입는가? 게다가 이런 브랜드는 기장 수선까지 한번에 해준다. 맥가이버가 있는 전파상? 제 브랜드의 AS 센터를 이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현대의 전자기기 유통 구조에 전파상이 웬말인가? 정말 이런 나이브한 생각으로 골목 상권이나 구도심의 경쟁력 확보라는 시대적 문제에 접근하려 한다는 말인가?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되는 지역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들이 바로 박원순 시장이 나열한 저런 가게들이다. 동네 상권의 부흥에는 무엇보다 주거비용의 획기적인 절감과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부담이 크게 준 상황이라는 인프라와 활발하게 돌아다니며 동네를 탐닉하는 소비층이 필요한데, 박 시장이 열거한 ‘80년대의 가게들’이 2020년대 서울의 상가 임대 시장이 요구하는 임대료를 이겨내고 이런 소비층을 고객으로 만들 수 있을까? 대기업의 골목 진출이라는 가시화된, 뻔히 보이는 현상 뒤에 숨겨진, 골목에 진출한 대기업의 기획이 성공한 시대적 요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을 못하는 것인가?


박 시장의 시정은 실패로 귀결될 듯하다. 매번 틀린 질문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틀린 질문을 시작으로 어떤 문제에 대한 계산을 하면, 궤도를 이탈하고 만다. 그렇게 궤도를 이탈한 우주선은 제아무리 좋은 기계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영원히 깜깜한 우주를 떠돌다 수명을 다하게 된다. 정신차리시라. 서울이라는 시공간은 당신의 향수와 이상을 위해 존재하는 무대가 아니다.



*이 글은 미디엄에도 게재했습니다. https://medium.com/eltitnu/옥탑방에선-아무것도-할-수가-없다-3e47efd97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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