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휠체어 체험 선언에 부쳐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20대 초반, 군 생활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신병이 새로 전입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고약한 장난 하나를 계획해 실행에 옮긴 적이 있다. 그 고약한 장난이라는 건, 금요일에 전입해 들어오는 신병과 동기인 척 연기를 하며 주말을 보내는 거였고, 난 무려 사흘 간 소대의 쫄병 노릇을 했다. 별것 아닐 듯하지만 말년 병장이 아침 여섯시에 칼같이 일어나 점호를 준비한다거나 마음대로 누워서 쉬지 못한다거나 무엇보다 공공화장실의 변기를 청소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덧붙여 취침 시간인 10시 이후에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한다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 <가짜 이등병> 기획은 사실 여러 사람의 협조로 상당히 알찬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데, 이를테면 야간 점호에 들어온 간부가 나를 알아보고는 “얘도 신병인가?”라며 즉흥적으로 연기에 동참한다거나 실제로는 후임인 상병이 “빨리 움직이지 못해?”라며 고함을 지르는 식이었다. 이렇게 모두가 만들어낸 말년 병장 이등병 체험의 백미는 <가짜 이등병>을 동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진짜 이등병과의 비밀 대화였다. 사실 내무실에 들어오게된 신병 중 대부분은 한동안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제 동기들과 사적인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째서인지 우리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일요일 저녁에 담배를 나눠 피우며 몰래 “뭐가 제일 힘든 것 같냐?”거나 “어땐 새끼가 가장 나쁜 새끼일 것 같냐?”따위의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듣는 시간은 정말이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쪼록 무사히 주말 내내 했던 <가짜 이등병> 연기를 마치고 잠든 나는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 점호에 나가지 않았다.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며 점호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뒤뜰에 나가 담배를 피웠고, 느즈막하게 병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고 휴가 나갈 준비를 하면서 점호를 위해 줄을 선 병사들 앞을 지나갔다. 그때 하얗게 질린 그 신병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물론 이 장난은 이등병의 고충이나 신병의 말못할 사정을 알아내기 위함이 아니라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주말 내내 동기라고 믿었던 녀석이 알고보니 말년 병장이었다는 사실과 마주한 한 인간의 당황스러운 눈망울을 관찰하겠다는 아주 악한 의도로 시작됐다.
그런데 이걸 아주 선한 의도로 기획한 이들의 소식을 몇 년 후에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됐다. 소대장을 맡게되는 소위들이 병사들의 내무 생활 고충이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또 소대장으로서 더 나은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나흘 동안 <가짜 이등병>이 되었다는 기사였다. 이 체험을 마친 소위 하나는 “신병은 무조건 경례를 해야 하니까 왼손으로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병사들만의 규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른 소위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다 보니까 힘들었다”고도 했다. 그들은 또 “(나흘 동안)욕설과 구타를 발견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이들이 이후에 소대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병사들과 얼마나 잘 지냈는지, 장교 생활을 하면서 병사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어떤 제도를 만들고 어떤 부조리를 없애고 어떻게 고충을 해결했는지는 알려진 바도 없고 사실 중요하지도 않다. 그보다는 이 두 체험, 그러니까 어처구니 없는 <악의적 장난>과 <나이브한 체험>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무엇보다 공공화장실의 변기를 청소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이 신임 장교들은 신병은 왼손으로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는데 이것은 역으로 ‘나는 (원래)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주 극명하게 드러낸다. 게다가 악의적 장난이 됐든 선의의 체험이 됐든 사나흘 후면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자명한 사실 때문에 그동안 경험하고 마주치는 모든 불편한 상황들은 견딜 만한 수준의 것들로 압축되거나 삭감되고 만다. 때문에 <가짜 이등병> 체험은 그 의도의 선함 혹은 악함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 결과의 선함 혹은 악함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 자체로 큰 결함을 가지고 있을 뿐만아니라 모순적이면서 부조리하며 동시에 오만하고 게으르다. 그런 방식으로는 이등병이 겪는 최소한의 상황들을 실제로 체화하기는 커녕 그동안 꾸준히 지적되던 병영 생활의 문제들이나 군대 내 부조리나 군대라는 집단의 폭력에 대한 숱한 목소리들을 휘발시킨다. 그 확실하고 심지어 가시적이어서 눈에 보이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공감하는데 체험은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 이건 다시 서울 시장 <박원순>에 대한 이야기다. 옥탑방 체험을 마치고 나오면서 재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했을 때 사실 그의 궤도가 얼마나 잘못됐는지 아주 잘 알게 됐고 그와 관련된 글을 이미 썼지만 그가 <휠체어 체험>을 하겠다는 선언을 한 이상 그게 얼마나 잘못된 발상인지에 대해 다시 쓸 수밖에 없게 됐다. <휠체어 체험>은 박원순의 낭만들을 다시 한 번 전시한다. 구체적으로는 ‘나는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시장이다’라는 낭만적 자아를 드러내고 ‘나는 실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가다’라는 낭만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나는 소수자-약자의 처지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는 낭만적 지향을 드러낸다. 그래서 <옥탑방>을 택해 체험하고 <휠체어>를 택해 체험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체험을 세계에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동시에 자신의 낭만적 자아와 낭만적 정체성과 낭만적 지향을 시민들이 목격하게 만들면서, 책상 앞에만 있는 과거의 행정가나 다른 정치인과는 다른 평가를 자신에게 내리라고 강하게 권유한다. 박원순의 체험 역시 <가짜 이등병>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그 의도의 선함 혹은 악함과는 관계 없이, 그 체험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결과물들의 선함 혹은 악함과는 관계 없이 그동안 여실히 존재해온 장애인들의 처지에 관한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휘발시킨다는 커다란 문제를 지니고 있다. 광화문역 한쪽 구석에서는 장애인들의 오래된 지루한 투쟁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데, 지척의 거리에서 <3선 시장> 박원순이 갑자기 <장애 체험>을 하겠다고 나섰음을, 적어도 그 둘을 연관지어 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오늘날 박원순의 이 선언은 그래서 그 자체로 커다란 결함을 가지고 있을 뿐만아니라 모순적이면서 부조리하며 동시에 오만하고 게으르다. 그래서 폭력적이다. <휠체어 체험>이 불편한 것은 그것이 정치적 방법-속성으로서의 <보여주기> 혹은 <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기획이 가지고 있는 결함과 폭력성 때문이다. 이전에 전 대통령 이명박이 재래시장에서 국밥을 먹는 <체험>을 했던 이후로 재래시장들과 국밥집들의 문제가 좋은 방향으로 선회되거나 해소된 적이 없다는 사실도, 전 국회의원 정몽준이 고시촌의 창문 없는 방을 방문한 이후로 청년과 주거의 문제가 좋은 방향으로 선회되거나 해소된 적이 없다는 사실도 상당히 중요하다. 행정가에게 또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책상앞이나 옥탑방이나 휠체어 위라는 어떤 물리적 장소의 구분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문제를 확실히 바라보고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전달되는 문제를 집중해서 경청하는 태도다.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겠다는 의도라면 지금 박원순에게 필요한 것은 나이브한 체험의 오만함이 아니라 경청하겠다는 겸손한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