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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황 Sep 03. 2018

누구에게 병역특례를 줄 것인지 결정하는 방법

당신이 병역특례 대상자가 아닌 이유

국제대회에서 국위선양에 성공한 국가대표 스포츠 선수들이 속속 입국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메달을 목에 걸었고, 그들은 메달에 도금된 금속의 재질에 따라 많게는 100만원이 넘는 포상금과 함께 매달 일정 금액의 연금을 받게 된다. 여기에 금이 도금된 메달을 목에 건 이들 중 80명이 넘는 남성들은 병역 특례라는 엄청난 혜택까지 받게 된다.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올림픽이라면 메달의 종류와 관계없이 병역 특례가 주어진다. 이런 제도는 1990년부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 중간에, 그러니까 2002년의 병역 특례의 특례가 생겨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간 월드컵에서 16강은커녕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했던 한국 국가대표팀이 2002년 대회에서 16강에 올랐을 때, 정확히는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박지성의 그 끝내주는 결승 골로 16강을 확정 지었을 때, 경기를 관람한 전 대통령 김대중이 후반 종료 후 라커룸에 찾아가 선수들을 축하하던 때, 당시 팀의 주장이던 홍명보가 “후배들의 병역 문제를 위해 대통령께서 보살펴달라”고 요청했던 일이 있다. 당시 대통령 김대중은 “국방 당국과 협의해 여러분께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고, 이내 대통령령으로 정한 병역 특례에 관한 규정에 ‘월드컵에서 16위 이상의 성적을 낸 자’가 포함됐다. 이런 ‘긴급 조치’의 첫 등장은 4년 뒤 처음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국가대표 야구팀이 4강에 진출하자 “야구팀도 병역 특례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의 논리적 배경이 되었고, 이때 국가대표 야구팀 선수들이 병역 특례를 받았다. 사례 두 개가 생기면 세 개부터는 아주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 이렇게 두 개의 특례의 특례가 만들어진 이후에 국제 검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축구와 야구에 적용한 룰을 나에게도 적용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가정해보자. 국가는 어떤 답을 해야 하는가? 이제부터 전지적 국가의 시점 혹은 대통령의 시점 혹은 국회의원의 시점 따위로 입장을 바꿔서 이 검도 선수에게 “미안하지만, 검도는 안 돼”라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어떤 기준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보자.

이들이 금메달을 따서 얼마나 국가의 위상을 높였는지도, 이들의 국위선양이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사는 35세 김모 씨의 삶에 이익으로 돌아가는지도 알 수 없다.


가장 쉬운 방법은 ‘국민적 관심’을 이유로 드는 거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그리고 월드컵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쏠린 국민적 관심의 규모가 사뭇 비슷했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이 규모를 측정하는 기준과 숫자로 표기된 값을 검도선수에게 제시해야 하는데, 숫자는 웬만하면 소수점 두세 자리까지 포함된 세밀한 수치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중계방송의 시청률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겠지만 이건 사실 공정하지 않은 방법이다. 시청률이라는 것이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국가 기관에서 직접 측정하지 않기 때문에 검도선수로부터 “이 기준은 공정하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 우리는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면서 술을 마신 적이 있는가에 관한 통계는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언제 세계검도선수권대회가 열리는지 알고있는가에 관해서는 집계조차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률보다는 경기가 치러진 직후에 얼마나 많은 음주운전 차량이 적발됐는지를 따지는 편이 좋다. 이건 경찰이 직접 측정하고 통계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 공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서류를 만들 수도 있고, 당시의 혈중 알코올 농도에 관해 일일이 설명하면서 소수점 셋째 자리로 끝나는 좀더 세밀해 보이는 숫자를 들이밀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어떤 스포츠 대회에 병역 특례를 줄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준은 관중들의 혈중 알코올 농도라는 거다. 이를 근거로 삼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이나 텔레비전 앞에 모여 술을 마셨는지 대번에 알 수 있고,  월드컵 축구 대회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쏠리는 국민적 관심사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쏠린 국민적 관심사에 비해 결코 적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물론 이 좋은 방법을 고안한 유능한 국회의원이나 정부 인사는 없었다. 월드컵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의 형평성 문제가 거론되자 결국 2007년에 두 항목이 기준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방탄소년단.


얼마 전 한국 출신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일각에서 이것 역시 국위선양이므로 병역 특례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펼친 적이 있다. 이런 경우는 ‘어떤 스포츠 대회에 병역 특례를 제공할 것인가?’보다 좀 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현재의 병역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예술·체육 분야의 특기를 가진 사람’에게 현역 복무 대신 본인의 분야에 종사하는 것으로 병역을 대신하는 특혜를 주는데, 이게 바로 병역 특례의 핵심이다. 이러한 특혜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 전 대통령이자 독재자 박정희로부터 시작됐는데, 그 이유는 국가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예술과 체육 분야의 종사자가 국제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두면 한국이라는 국가에 상당한 이득이 되므로 그들에게 마땅한 포상을 한다는 논리였다. 여기서 ‘국가에 상당한 이득이된다’는 것, 그러니까 국가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참인 명제로 놓고 이제부터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차트 1위도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는가를 따져보자. 일단 같은 예술 분야에서는 법으로 지정한 국제 콩쿠르 등에서 일정한 성적을 거둬야 한다. 대부분 클래식 음악이나 무용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런 콩쿠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것은 단연 쇼팽 피아노 콩쿠르로, 2015년 콩쿠르에서 한국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콩쿠르는 병역법에서 정한 ‘국제대회’에 속하지만, 조성진이 이 콩쿠르를 통해 병역 특례를 받지는 않았다. 조성진은 2009년에 일본에서 개최된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했고, 이 콩쿠르 역시 병역법에서 인정하는 국제대회이기 때문에 이미 병역 특례가 주어졌다. 고백하건대 이 글을 쓰기 위해 병역 특례에 관한 규정을 알아보며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1991년부터 3년마다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예술의 경우 스포츠와는 반대의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 스포츠에 적용되는 병역 특례의 기준에 얼마나 대중적인가를 따지는 일이 중요한 반면 예술의 경우 얼마나 베일에 싸여있는지, 얼마나 대중적으로 비주류인지를 따져야 한다. 그렇다. ‘국민적 관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니 방탄소년단의 팬들에게 “당신들의 아이돌은 너무 유명해서 병역 특례를 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돌려보내면 된다.

한 휴대폰 매장에 방수 스피커를 설치하고 있다.

이때 필요한 자료를 만드는 방법은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가장 정확한 방법이 얼마나 많은 휴대폰 가게에서 가게 밖의 거리를 향해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틀고 있는지와 그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량이 몇 데시벨인지를 따지는 거다. 확신하는데 어떤 휴대폰 가게에서도 빌헬름 켐프가 연주한 바흐의 골든베르그 변주곡이 녹음된 도이치 그라모폰 사의 음반을 틀지 않는다. 국악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심지어 국악 같은 경우는 국제 대회가 없기 때문에 국내 대회로 한정하거나 무형문화재 전수자 등을 기준으로 병역 특례를 적용한다. 무형문화재의 경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분야에서 5년 이상 국가무형문화재 전수 교육을 받은 사람이 병역 특례를 받는다고 법으로 정했다. 이런 경우 대금 산조 무형문화재 전수자의 이름이 '손흥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절대로 인터넷에서 그를 검색할 수가 없다. 우스갯소리처럼 읽히겠지만 어떤 경우는 누군가가 얼마나 대중적인 일에 종사하는지에 따라서 법을 적용하고 어떤 경우는 누군가가 얼마나 대중적이지 않은 일에 종사하는지에 따라서 법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은 99%가 넘는 사람들은 이런 엉뚱한 기준의 특례에조차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들 중 대부분은 저 우스꽝스러운 일을 위해 대신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거다. 애초에 ‘특별한 예외’를 만드는 것 자체가 형평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사람이 드문 것은 아직도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상당히 높게 평가받아야 하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가장 민주적이지 않은 구조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현 병역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국가의 위상은 어떻게 높아지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서로가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의 한국을 예로 들자면 한반도 남쪽의 물리적 공간과 민주주의를 토대로 온갖 사회 제도와 구조를 갖춰 수천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일상-문화-생태-경제적 터전이 되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릴 수 있겠다. 아무튼간에 국가라는 것을 이렇게 간단하게 문장으로 정의하기란 쉬워 보일 수 있겠으나 그 실체에 대해 파악하는 것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국가라는 것은 유무형의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어떤 집단이자 어떤 정신이자 어떤 현상이자 어떤 역사이자 어떤 장소이자 어떤 환경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이익이라는 것은 집단의 이익 혹은 정신적 이익 혹은 현상으로서의 이익이나 역사적 이익, 그도 아니면 장소 특정적 이익, 환경적 이익을 뜻한다. 이런 이익은 또한 쉽게 측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회 구성원 개인에게 분배되는지도 규명하기 쉽지 않다. 이렇게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 환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근대 이전의 유럽인들은 몽블랑의 정상에 악마가 산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아무도 몽블랑의 정상에 오르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절대로 그렇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던 어떤 과학자로부터 몽블랑 정상에 오르기 위한 도전이 시작됐다. 이제는 아무도 몽블랑의 정상에 악마가 산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국위선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문제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저 우스꽝스러운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아, 그보다 먼저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것이 더 좋다. 도대체 지금 이 군대라는 것이, 병역법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지에 관한 질문들 말이다. 권리와 의무는 선후 관계이거나 인과관계로 묶인 것이 아니다.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구성원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역 특례 대상자는 한국 사회 구성원 전체가 되어야 한다. 2020년대가 코앞이다.




*이 글은 미디엄에도 게재했습니다. https://medium.com/eltitnu/누구에게-병역특례를-줄-것인지-결정하는-방법-7e62347c8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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