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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건축가 Sep 18. 2020

백 by 하라 켄야


백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은 색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문화(일본) 속에 존재하는 감각의 자원을 밝혀내는 시도이다.
즉, 간결함과 섬세함을 낳는 미의식의 원점을 백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찾아보는 것이다.  


일본인의 감수성을 흐르는 백(白)은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이나 깔끔함 정도에 지나는 것이 아니다. 일본 그 속에 단겨진 정수(精髓)라는 의미가 더 가까울 것 같다.

스타일의 하나가 아닌, 백() 그 자체로 존재하는 뿌리같은 것이다.

한반도에 살아온 우리가 100% 이해하기 힘든 그 것을(? 우리가 백의 민족인데...),

하라 켄야의 언어를 통해서 몇가지 단편들로 그 근저를 떠돌았다.


일본의 건축과 공간, 책과 정원 속에 담겨진 백()의 정수가

지금의 일본 문화와 미의식의 전반에 흐르고 있다면,

우리 건축과 공간에 닮겨진 생(生)의 정수가 한국 문화와 미의식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명확히 명확히 정의되지는 않지만,

언젠가 반드시 찾아지리라 믿는다.


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얗다고 느끼는 감수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백을 찾아서는 안된다.
하얗다고 느끼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백이라는 감수성을 찾음으로써
우리는 평범한 백보다도 더 하얀 백을 의식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 속에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게 깃들어 있는
백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
'고요함'이나 '공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거기에 잠재되어 있는 의미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백을 깨닫는 것으로 세상은 빛이 증가하고 어둠의 정도가 심화한다.
- 제1장 '백의 발견' -  


일본의 국기는 백 바탕에 적색 원으로 만들어져 있다...중략...적색 원은 일단 텅 빈 그릇이기 때문에 거기에 어떤 의미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 침략, 파괴, 제국주의 또는 애국심이나 평화라는 의미도 받아들일 수 있다...중략...나는 전쟁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것을 평화국가의 심벌마크라고 배웠다...일장기에는 밝음, 어두움, 현저함, 막막함 안에서 밝게 빛나는 백에 기세가 넘치는 적색을 배치한 극도의 대비가 잘 드러나 보인다. 이처럼 거대한 수용력으 가진 심벌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리스도교의 십자가가 이에 해당한다.


하라 켄야가 말하고 있는 일본의 정수인 백(白)은 이렇게 현대 일본을 잠식해버리고 모든 것을 지워버렸나보다.

전쟁 이후에 태어났다기보다는, 전쟁 종료 직후에 태어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인들이 타국의 문화와 정신을 말살시켰던 노하우를,

자국민들에게 전쟁의 기억을 말살시키는데에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백은, 붉은 피를 지워버리는 힘이 있다.

우리에게 백(白)이 마냥 좋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청소 - 아름다움은 창조의 영역에 속하느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무엇인가를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깨끗하게 쓸고 닦아 청초함을 유지하는 행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선종의 절이나 정원 등을 볼때 그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선사의 정원이 아름다운 이유는 정원사의 재능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가꾸는 손길 때문에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것도 1년이나 2년의 청소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청소하고 또 청소함에 따라 자연과 인간의 어느 한쪽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조형의 물결 같은 정원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원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청소와 정리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16평 작은 빌라에서는 청소와 정리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면,

솔직히...하지 않았다.

아내가 거의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나는 화장실 청소도 몇번 하지 않았다.

그 동안 많은 것을 참고 혼자 묵묵히 해준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


하지만, 40평 전원주택은 더이상 아내가 혼자 청소와 정리를 할 수 없다.

또 못다한 집짓기와 정원관리까지 하려면 하루종일 365일을 해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청소의 당위성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치 쓸데없는 일때문에 시간을 뺏기는거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청소는 집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며,

집의 아름다움을 유지시켜주는 일상의 행위이다.

이렇게라도 생각해야, 청소가 즐거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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