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생겨 피아노 학원을 등록한지 일주일 되었습니다.
효린 <안녕>
비틀즈 <I Will>
요한 파헬벨 <캐논>
쇼팽 <녹턴 Op.9 No.2>
평소 유튜브에서 피아노 반주로 자주 찾아 듣던 곡들입니다. 연주할 레벨이 안 된다는 걸 잘 알아 많이 민망했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원장님께 내밀었습니다.
"전문적으로 피아노를 배우려는 게 아니라 저는 그냥 즐기고 싶어요. 몇 마디만 치게 되어도 좋아요. 그냥 피아노 두드리며 재미있으면 돼요."
악보 계이름을 바로바로 읽을 수가 없어 각 음표마다 계이름을 써 놓아야 하고, 손 근육은 마치 갓 마비가 풀려 재활 훈련하듯 굼뜨고 투박하게 움직입니다. 여기저기 헛누르다 비틀비틀 제 자리를 찾으며 한 음 한 음 힘겹게 나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대체 이게 어떤 곡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더듬더듬 치고 있지만 마음은 음악 feel로 충만하여 흥겹습니다.
삼일째 되던 날, 그날도 피아노를 뚱땅땅 실컷 즐기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책상 앞에 앉아 유튜브로 다른 사람들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다가, 문뜩 삼일 동안 하루 두 시간씩 <안녕>만 연습했는데도 진전이 없는 좀전의 내 연주와 비교되면서 멋진 연주들이 부러워 시무룩해졌습니다. 마침 지인과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다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아하! 그렇습니다. 음악 같지도 않은 음을 한 음 한 음 힘겹게 쳐 나가면서도 내가 신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지만 내 머리와 마음에 기억되어 흐르는 멋진 원곡이 내 한 음 한 음 사이의 지루하고 답답한 간극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초라한 내 연주와 마음에 기억되어 있는 멋진 음악이 결합하여 함께 울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음악 같지 않은 내 연주도 내게는 음악이지요.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저는 한 곡 아니 몇 마디도 제대로 치지 못합니다. 어서 빨리 한 곡만이라도 멋지게 쳐 보이겠노라는 마음도 버리고 그날그날 feel 받은 새 곡으로 갈아탑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그 순간 즐기고 왔으니 그걸로 만족합니다.
당분간은 피아노 음악 속에 흠뻑 빠져 살 것 같습니다.
[2015.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