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y come, easy go... 빛의 속도로 잊어버린 영어...
"들어나 보셨나요? 유남생...(1)"(https://brunch.co.kr/@hobiehojiedaddy/99)에서 이어집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2008년 여름...
나 또한 한국으로 귀국한 다른 해외 주재원과 똑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다니고 있는 회사의 특성상 앞으로 두어 번 해외근무를 더 해야 할 거 같은데, 아이들 영어 공부는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비싼 돈을 들여 영어 사교육을 시켜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다. 그 당시 영어 유치원이 꽤나 유행이어서 많은 학부모들이 영어 유치원에 아이들을 입학시키고 있었다. 일부 강남의 병원에서는 아이들의 영어 발음을 좋게 해 준답시고 아이의 혀와 아래턱을 연결한 근육을 자르는 끔찍한 수술도 버젓이 시행되고 있다는 뉴스 보도까지 있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영어교육 광풍이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유치원생에게까지 번진 상황이었다.
나는 아무리 호비의 나이가 어리더라도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호비에게 물었다. “너 영어 유치원 가고 싶어? 원하면 보내줄게.” “싫어. 한국 유치원 갈래” 1초 만에 돌아온 호비의 대답.... 간결하고 단호했다. 더 이상의 토론은 필요 없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들은 호비의 유치원을 결정했고, 호비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일반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다.
아무리 미국의 유치원에서 보낸 시간들이 즐거웠더라도 다른 피부색, 낯선 언어를 쓰는 아이들에게 둘러 싸여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생활은 어린 호비에게 꽤나 스트레스였었나 보다. 한국 유치원에 등원한 첫날, 호비는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자기와 같은 피부색,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 사이에 둘러싸인 호비에게는 하루하루가 행복한 나날이었다. 1년에 한두 번 열리는 재롱잔치 때 예쁜 색동저고리 입고 신나게 소고를 치는 모습은 귀엽고 활기차 보였다.
몇 달 지나지 않아 호비와 호지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내아이 두 명이 어디선가에서 나타났다. 해외에서 살다가 귀국한 건지 두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문장들이었다. 장난을 심하게 치는 형을 향해 동생은 “Stop. You’re so mean to me!!” 등등의 짧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 두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뚫어져라 유심히 쳐다보던 첫딸 호비는 그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나에게 뛰어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아빠, 저거 어느 나라 말이야?’
너무나도 놀랍고 어이없어서 나는 몇 번이나 호비에게 물었다. ‘너 저게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어?’ 호비는 당연하다는 듯이 ‘몰라’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렇다. 미국에서 귀국하고 채 몇 달 되지 않은 상황에서 호비는 영어를 완벽하게 까먹은 것이었다. 한창 말과 글을 배울 나이였던 호비가 마치 스펀지처럼 영어를 빨아들이는 것을 경이롭게 바라본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 한국에 귀국한 후 그 짧은 시간 동안 깨끗할 정도로 모든 것을 잊은 것이었다.이지 컴 이지 고 (Easy Come Easy Go)... 빨리 배운 만큼 빨리 잊은 것이다.
중남미 사무소에서 3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했던 선배 직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현지인과 프리토킹이 가능할 정도로 스페인어가 유창하던 자기 아이가 한국에 돌아온 지 1년 만에 스페인어 문장은 고사하고 가장 기초적인 스페인어 단어, 예를 들어 ‘물’이라는 단어(‘agua’)조차 까먹었다는 것이었다. 난 믿기지 않아서 물었었다. ‘에이. 선배.. 설마 그렇게 쉬운 단어까지 하얗게 까먹는단 말이에요?’ 하지만, 그 선배의 말이 맞았다. 호비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2년 동안 그렇게 힘들게 배운 영어를 백지장처럼 하얗게 까먹은 호비를 보면서 아깝다는 생각, 본전 생각이 안 들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아이가 싫다 해도 영어 유치원을 보냈어야 하는 건 아닌지 후회도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그렇게 우리 가족의 한국생활은 시작되었다.
* Bohemian Rhapsody by Queen (https://www.youtube.com/watch?v=fJ9rUzIMc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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