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에서의 시험은 한국학교와 어떻게 다를까?

프랑스 학교와 미국학교의 평가방식이 한국 학교와 다른 점...

호비와 호지는 지금까지 파리와 서울에 소재한 2개의 프랑스 학교에서 총 6년, 그리고 지금의 미국 학교에서 총 2년의 시간을 보냈다. 국제학교들이 우리나라 학교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지만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식 또한 한국학교와는 상당히 다르다. 어떤 면에서 얼마나 다를까?




일단,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시험기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나라의 학교에서는 아직도 '중간고사 기간' 또는 '기말고사 기간'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특정한 기간(보통 1주일) 동안 수업은 진행하지 않고 하루에 몇 과목씩 시험을 보곤 한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녔을 때를 기억해봐도 하루에 서너 과목씩 시험을 보는 강행군에 금요일쯤이면 파김치가 되곤 했었다.


그런데, 호비와 호지가 다녔거나 지금 다니고 있는 3개의 국제학교 어디에서도 이런 '시험기간'이란 것은 없다. 수업 진도에 따라 각 과목 선생님들이 알아서 시험을 본다. 그러다 보니 특정한 시기에 며칠 동안에 걸쳐 서너 과목씩 시험을 보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뎌낼 일도 없다. 오히려, 호비와 호지가 현재 재학 중인 미국 학교에서는 하루에 최대 2개 과목만 시험 볼 수 있고, 혹시라도 하루에 시험이 3개가 겹치면 세번째 시험을 다른 날로 미뤄야 한다는 교칙이 있을 정도이다. (이 경우, 학생들은 시험 일자 조정을 당당히 요구하고 선생님들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학생들이 불필요하게 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도 막으면서 충분하게 학습하고 충분하게 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인 셈이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시험이 상당히 빈번하다는 점이다. 보통 2, 3주 동안 특정한 유닛(예 : 수학 시간에 지수와 로그라는 유닛)을 공부하고 곧바로 이와 관련한 시험을 본다. 그러다 보니 보통 한 개 과목에서 한 학기당 많으면 예닐곱 번, 아무리 적어도 너댓 번은 시험을 보게 된다. 물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예고없이 실시하는 쪽지시험(Quiz)까지 포함하면 그 횟수는 더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학기가 시작된 후 2, 3주만 지나면 아이들은 1주일에 최소한 1개 이상의 시험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활을 학기말까지 계속하게 된다.


세 번째, 사지선다형(multiple choice) 방식의 시험이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일부 과목에서만 시행된다는 것이다. 우선, 영어나 역사 등의 과목에서는 일정한 길이(어떤 때는 1,000 단어, 어떤 때는 2,000 단어)의 에세이를 써서 제출하거나, 교실 앞에 서서 발표하는 형태(oral presentation)의 시험을 주로 보게 된다. 선생님이 좀 창의적이면 상당히 특이한 방식으로도 평가가 진행된다. 호지의 경우 역사시간에 '천연자원의 무기화(weaponization of natural resources)'라는 주제로 정치 만평을 그려오라는 시험도 있었다 (^_^;). 말이 좋아서 에세이와 발표 시험이지 실제로 글을 쓸 주제를 잡고, 자료를 조사하고, 글의 뼈대를 잡아서 쓰고, 고치고, 다듬는 모든 일이 그야말로 며칠에 걸쳐서 지속된다. 발표 시험인 경우에는 10여분에 달하는 발표 내용을 거의 다 암기해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 시험이 '정해진 학습량에 대해 반복적으로 객관식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한 후에 1시간 이내의 사지선다형 시험에서 단기 승부를 내는 방식'이라면 국제학교에서는 시험 준비 그 자체(즉, 에세이를 쓰거나 발표시험을 준비하는 것)가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되는 선순환의 과정이라고 보면 되겠다.


네 번째, 채점방식도 국가별로, 학교별로 다양하다. 보통 프랑스 학교는 20점 만점 방식이다. 처음 호비와 호지가 프랑스 학교에서 받아온 성적표를 보고는 '100점도 아니고 10점도 아닌 20점 만점은 무슨 시스템인고?'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6년 가까이 프랑스 학교를 보내다 보니 20점 만점 시스템에 저절로 적응되었다. 인도로 옮겨와서 미국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다 보니 이 학교는 7점 만점 시스템이다. 게다가 이 학교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A, B, C.. 학점 시스템이었는데 IB 교육과정의 평가 시스템과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채점 방식을 바꿨다고 한다.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의 채점방식이 사실상 교육부에 의해서 획일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고 하겠다.


다섯 번째, 시험의 종류가 다양하다. 위에서 설명한 시험의 '방식'(예 : Quiz, 에세이 쓰기, 발표하기, 창작물을 만들어서 제출하기 등등) 뿐만 아니라, 시험의 종류도 다양하다. 일단, 한 개의 유닛이 끝나면 선생님들은 formative test를 실시한다. 예를 들어, 물리 수업에서 '힘과 운동'과 관련된 유닛이 끝나면 그 유닛에 해당하는 formative test를 보는데, 이를 통해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그 단원에서 무엇이 중요한 개념인지에 대한 감을 잡게 해 준다. 대부분의 경우 기본개념을 묻는 문제가 많아서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고 시험 시간도 조금 짧다. 그로부터 통상 1주일쯤 후에 이제 (성적표에 성적이 올라가는) 진짜 시험을 보게 된다. summative test라고 불린다. 난이도도 어렵고 제법 복잡한 응용문제도 출제되면서 formative test를 보고 안심했던 학생들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안겨주기도 한다.(ㅎㅎ)


이게 끝이 아니다. 학교마다 교칙에 따라 다르지만 summative test를 망친 학생들에게 재시험(reassessment)의 기회도 주어진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재시험이란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국제학교에서는 고등학생에게도 재시험의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교칙에 따라 한 학기당 재시험을 볼 수 있는 조건이나 그 횟수(호비와 호지의 학교의 경우 학기당 모든 과목을 통틀어 딱 2회)가 정해져 있다. 재시험을 무분별하게 남용하여 학점을 올리려는 학생들의 시도는 이러한 교칙에 의해 차단된다.


여섯 번째, 학생의 부모가 선생님이더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시험을 보고, 채점을 하고 또 그 점수가 성적표에 올라간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국제학교의 특성상 미국에서 파견된 교사들이 많고 이들 교사들의 자녀들 또한 (인도인들이 다니는 현지 학교에 다닐 수는 없다 보니) 아빠와 엄마가 교사로 근무하는 국제학교에 재학할 수밖에 없다. 많지는 않지만 엄마나 아빠가 자신의 자녀를 가르치고 평가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학교나 다른 학부모들이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이다. 내신 성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였다면 교장실에 항의 전화가 빗발칠 텐데, 국제학교에서는 그런 개념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는 거다.


마지막으로,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선생님이 학생이나 학부모와 면담하여 성적을 수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상상도 하기 어렵겠지만, 국제학교에서는 평가도 학습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여 시험이 끝난 후 학생을 따로 불러서 혹시라도 개념은 제대로 알고 있었는데 계산 실수로 잘못한 것은 아닌지 등을 확인한다. (물론, 수업태도도 불량하고 개념도 제대로 이해 못 한 학생의 시험 점수가 낮았다면 이런 일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 ^_^;... 수업태도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 갑자기 일정한 패턴으로 계산 실수를 반복하자 선생님이 채점이 다 끝난 이후에 그 학생을 불러 계산 실수를 바로잡아 주고 계산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정답이 무엇인지를 고려하여 점수를 올려준 경우도 있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처제네 아이에게도 일어났다. 2021년 여름에 처제의 식구들도 말레이시아로 이주하면서 두 아이들(각각 9학년과 6학년)이 쿠알라룸푸르에 소재하는 미국계 국제학교에 재학 중이다. 한국에서 쭈욱 한국학교만 다니다가 국제학교로 전학 간지 반년도 안된 처제의 첫째 딸(9학년)이 문자 그대로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영어과목 oral presentation을 준비하고 시험을 봤는데 7점 만점에 4점을 받고는 크게 실망한 것이다. 게다가 처제가 아이의 말을 찬찬히 들어보니 발표 내용면에서도 부실해 보였던 네이티브 스피커 학생들은 손쉽게 5점이나 6점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국제학교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처제가 이러저러한 사정을 설명하고는 '항의편지를 써야 할지, 쓴다면 어떤 방식으로 써서 보내야 할지'에 대한 의견을 나에게 물었다. 한국에서야 선생님에게 성적을 변경해달라고 요구한다는 상상 자체를 할 수가 없었을테니 어찌보면 처제의 고민은 당연한 것이었다. '정중하게만 써서 보낸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국제학교에서는 성적관련 문의나 변경 요구가 종종 있다'는 말로 안심시켜 주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처제는 결국 내가 초안을 잡아준 이메일을 영어교사에게 보냈다. 일은 약간 어이없을 정도로 손쉽게 해결되었다. 항의편지를 받은 영어교사는 매우 흔쾌히 '사실 4점을 줄지 5점을 줄지 고민하다가 4점을 주었다. 학생의 동기 부여를 위해 기꺼이 5점을 변경해주겠다'라는 답장을 보내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제학교에서의 평가방식은 한국학교에서의 평가방식과 꽤 많은 면에서 다르다. 엄격하게 정해진 공통화된 기준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량화하는 것이 우리나라 학교의 평가 방법이라면 교사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평가 또한 학습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는 유연한 방식이 국제학교의 평가방식인 것 같다. 어찌 보면 정확하고 엄격한 서열화를 통해 대학 입학에 필요한 내신 성적을 산출하는 것이 우리 학교의 아주 솔직한 평가 목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그런 면에서는 이러한 목표에 얽매이지 않는 국제학교의 평가방식이 조금은 나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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