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나 보셨나요? 유남생...(1)

유 노 왓 아임 세잉, 유노왓암셍, 유노암셍, 유남생...

2006년을 전후해서 TV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나몰라 패밀리라는 코너가 제법 인기를 끌었었다. 힙합을 잘 모르는 한국 사람에게 3인조 힙합그룹 멤버들이 힙합을 가르친다는 내용이었는데, 힙합그룹 멤버 세명 중에 ‘유남생’이라는 캐릭터가 있었다.


유남생...


영어를 쓰는 원어민들이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외국인들에게 살짝 비꼬는 듯한 말투로 내뱉는 바로 그 말... ‘You know what I'm saying?’을 빠르게 발음한 ‘유남생’을 캐릭터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한국의 시청자들은 TV 화면을 통해서 ‘유남생’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었겠지만, 미국 현지에서 직접 생생한 ‘유남생’을 경험한 우리 가족들에게는 즐겁기 보다는 안타깝고 속상한 경험이었다.




2006년 8월.. 미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만 세 살도 되지 않은 호비를 보낼 유아원(kindergarten)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백일도 되지 않은 둘째 호지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아내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적당한 유아원을 찾았다. 개신교 교회가 주중에 유아원에게 공간을 빌려줘서 운영되는 곳이었다.


영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호비를 미국 아이들과 선생님만 가득한 그 곳에 보내면서 제대로 적응이나 할지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호비는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유아원에 잘 적응했다. 아니, 잘 적응하는줄 알았다.


호비가 유아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며칠 안된 어느 날 밤. 안방에서 호비와 호지를 재우고 있던 아내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나를 조용히 불렀다. 저녁을 먹고 먼저 잠든 호비가 이상한 잠꼬대를 한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한국말로 사람 이름을 부르는줄 알았단다. ‘유남생? 유남생? 유아원에 새로운 한국 아이(유씨 성을 가진 한국 아이)가 전학왔나?’ 아내 손에 이끌려 안방에 들어가 호비의 잠꼬대를 가만히 들어보았다. 그랬다. 바로 그 유남생... You know what I'm saying을 꿈 속에서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영어는 고사하고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호비가 유아원 가서 하루종일 듣는 영어중에 몇 퍼센트나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 아마 거의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두리번두리번 주위 친구들을 살피며 눈치로 때려맞추는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이었겠는가? “헤이 호비.. 두 유 노 왓 아임 세잉?”, “유노 왓 암 세잉?”, “유노왓암셍?”, “유남생?”... 하루에도 수십번을 되풀이해서 듣고 또 들은 바로 그 말을 아이는 꿈 속에서 큰 소리로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비가 날마다 겪고 있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어떨지 상상이 되자 마음이 짠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첫 몇주간의 적응기가 지나갔다. 결국 시간이 약이었고, 아이는 빠른 속도로 미국 유아원에 적응했다. 고작 2년 밖에 안되는 우리 가족의 미국 체류기간이었지만, 만 세 살에 유아원 생활을 시작한 호비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2년만에 영어로 된 책을 자기 힘으로 읽기 시작하는 놀라운 광경을 우리 부부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영어 파닉스(phonics)를 처음 익히는 미국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아이들이 범하는 실수 - 예를 들어, w로 시작하는 모든 단어, 그게, what이든, was이든, when이든 무조건 was로 읽는 실수 - 를 다 저지르고 있었지만, 그 모습조차 귀여웠다.


phonics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은 한번 '꽂힌' 책을 수십번 반복해서 읽는다고 하더니만, 우리 호비가 딱 그 형국이었다. '타자치는 젖소들(원제 : Click, Clack, Moo, Cows That Type)'이라는 제목의 책에 한번 꽂히더니만 그야말로 수십번 반복해서 나와 내 아내에게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한 농장의 젖소들이 파업을 하면서 농장 주인에게 (타자로 쳐서 작성한) 항의 편지를 보낸다는... 사알짝 사회주의스러운(ㅋㅋ) 내용의 동화책이었는데, 내용도 재미있었고 그림도 좋았었는지 호비는 그책을 그야말로 오타쿠처럼 읽고 또 읽었다.


우리 호비의 첫 영어책...


10년이 넘게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집 책꽃지에 예쁘게 꽂혀 있다.ㅎㅎ




"들어나 보셨나요? 유남생...(2)"로 이어집니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