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제도권 교육 밖에 있다는 것을 절감할때...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아, 내 자식이 제도권 교육 밖에 존재하는구나’를 절감하게 되는 계기가 몇 차례 있었다. 한국에서 '정규' 초등학교나 '정규' 중학교를 제대로 잘 다녔더라면 들어볼 일도 없는 용어와 절차들을 만날 때가 대표적이다. ‘정원외 관리자’라는 말도 그 중에 하나이고, 초졸 또는 중졸 검정고시도 그렇다.
중학교까지의 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정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자퇴하게 되면 이러한 학생들은 '정원외 관리자'로 분류되어 관리된다. 호비나 호지처럼 국내에 소재한 외국인학교를 다닌 아이들도 초중고 자퇴생들과 마찬가지로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로 분류된다. 언젠가는 검정고시를 보게 될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호비와 호지도 3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2017년 1월 귀국하자마자 서울 서초구에 소재한 서래마을 프랑스 학교에 입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가지 못하게 되었다. 프랑스 학교를 즐겁게 다니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나중에 한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경우를 대비해서 어떤 행정절차를 마쳐야 하는지가 걱정이었다.
교육청에도 문의하고 인터넷도 열심히 뒤져 초졸, 중졸 등의 검정고시를 통과해야 하며, 검정고시 응시를 위해서는 이른바 정원외 관리자 증명서라는 서류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호비와 호지가 마지막으로 재학했던 초등학교에서 증명서를 발급해줬다. 맨 윗줄에 쓰여 있던 ‘정원외 관리’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소외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국어와 국사 수업이 개설되어 있어서 한국의 고등학교와 동일한 졸업자격을 주는 소수의 ‘국제학교’ 졸업생이라면 굳이 검정고시를 보지 않아도 국내의 대학에 입학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 소재하는 약 40여 개에 달하는 ‘외국인학교’ 재학생이 한국의 대학 진학을 희망한다면 검정고시가 필수적이다.
첫째 딸 호비의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위해 원서도 제출하고, 시험준비에도 같이 동참하면서 검정고시의 세계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매년 다양한 연령대를 가진 수천 명의 응시생이 검정고시에 응시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꽤 놀랐었다.
검정고시는 배움의 때를 놓친 어르신들이 주로 보는 시험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막상 호비의 검정고시 응시원서를 접수하러 갔다가 젊다 못해 어린 학생들도 많이 있어서 두 번째로 놀랐다. 원서접수처에서 호비의 원서를 작성하는데, 생김새와 옷차림은 한국 아이들과 똑같은데 자기들끼리는 유창한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주위에 많아서 세 번째로 놀랐다. 아마도 한국에 정착한 재중동포(조선족) 자녀들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검정고시야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니 조금 불편하고 어색하더라도 그러려니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도 크고 작은 불편함은 꽤 있었다. 프랑스 학교는 보통 9월 초에 신학기를 시작해서 약 6주간 수업을 하고 2주간 방학을 하는 사이클을 이듬해 7월에 시작하는 여름방학까지 계속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10월 중순이나, 2월 중순, 4월 말처럼 한국 학교가 멀쩡하게 수업하고 있는 시기에 프랑스 학교는 2주간의 방학을 맞게 된다.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호비와 호지만 집에 두고 2주일 동안 출근하자니 적잖이 신경이 쓰였다. 당장 아이들 점심부터가 걱정이었다. 새벽에 좀 더 일찍 일어나 점심을 차려놓고 출근하는 방법,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사먹을 수 있는 용돈을 주는 방법 등등 여러 방법을 궁리해봤다. 하지만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밥도 안 먹고 침대에서 유튜브를 보고 뒹굴 게 뻔한 게으른 아이들에게 자기들 손으로 밥을 차려먹으라고 닦달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차라리 점심시간에 맞춰 아빠의 사무실 근처로 오게 해서 밥을 사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복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엄마 사무실은 근처에 제대로 된 식당도 없고 해서 결국 아이들 방학 동안 내가 점심을 책임지게 되었다. 2주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 게다가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이는 것도 아니고 나는 오로지 메뉴만 고르면 되는 것이었는데도 일이 쉽지 않았다. 첫째가 좋다는 음식은 둘째가 싫다 하고, 둘째가 반기는 음식은 첫째가 반대했다. 아이들이 어렵게 의견 통일한 음식들은 죄다 라면, 떡볶이, 순대, 퇴김처럼 영양가 없는 분식류였다. 좀 음식다운 음식을 먹이고 싶어서 고민 끝에 좋은 식당에 데려가면 아이들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아빠. 이건 아저씨 아줌마들이나 좋아할 음식이야. 맛없어.”
숟가락과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아이들은 이내 핸드폰 화면 속으로 빠져들어 버렸다. 이러다 보니 결국 방학이 돌아올 때마다 루틴은 똑같았다.
방학이 시작된 처음 며칠 동안은 의욕적으로 식당을 찾아 나서다가 호비와 호지가 메뉴를 놓고 몇 번 다투고, 옆에서 그걸 중재하던 나도 지쳐서 짜증낸다. 결국 방학이 끝날 즈음에는 두 아이가 모두 좋아하는 분식류로 타협을 보거나, 내가 일이 많아서 점심을 빨리 먹어야 하는 날이면 애들을 데리고 아예 회사 구내식당으로 가곤 했다. 아저씨 아줌마들 사이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꽤나 어색한 일이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국내에서 아이들을 외국인 학교에 보내는 한국 가족들은 ‘정원외 관리’ 대상인 아이들을 데리고 검정고시를 보고, 생뚱맞은 방학기간 동안 아이들을 어찌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아싸(아웃사이더)’스러운 일상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외국인 학교 안에서는 ‘인싸(인사이더)’스러운 일상일까? 우리 가족의 경우를 살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파리에서 보낸 3년간의 생활, 서래마을 프랑스 학교에서의 생활, 그리고 이곳 인도에 있는 국제학교에서의 생활, 모두 정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아싸(아웃사이더)’ 생활이다. 언어도 불편하고 다른 학부모들처럼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사교성도 없어서이다.
그저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너무나 좋아해왔고 지금의 학교에서도 좋아한다는 것. 그 이유 하나에 의지해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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