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면, '인도'가 또 '인도'했다고 해야 하나? :(
내가 인도로 발령 나던 바로 그 날, 인도의 공기 오염을 다뤘던 국내 신문기사의 제목은 꽤나 자극적이었다. "도시 전체가 가스실... 미세먼지 지옥..."(중앙일보, 2019년 11년 8월자 기사). 좀 짓궂은 후배 한 명이 어디서 구해왔는지 바로 그 기사가 실린 종이 신문을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1면 전체를 가득 채운 사진 속에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도심을 걷고 있는 인도 시민들의 숨 막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마음이 심란해졌다.
서울에서는 미세먼지 지수가 세 자릿수에만 진입해도 세상의 종말이라도 찾아온 듯 호들갑이지만 이곳 인도에서는 그 정도면 꽤 양호한 수준이다. 2020년 1월 아이들이 입학한 국제학교에서 열린 오리엔테이션에서 '우리 학교는 아이들의 건강에 매우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미세먼지 지수가 200 이하이면 실외에서, 200 이상이면 실내 체육관에서 체육 수업을 실시합니다.'라는 설명을 듣고 나자 한국과는 공기 오염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다른 나라에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단번에 실감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전국 규모의 봉쇄령은 2020년 3월 하순에 내려졌고, 그 덕분에 대기질이 좋아지는 뜻밖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 도로를 바삐 오가던 차량들, 쉬지 않고 쿵쾅거리던 공사장이 일시에 멈춘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굶주림과 실직에 지친 인도 국민들은 봉쇄 완화를 원했고 결국 인도 정부는 점차적으로 봉쇄를 완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이미 200에서 300 사이를 맴돌던 미세먼지 지수는 봉쇄 완화와 함께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하더니 가을 추수철이 지나자마자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1월에 들어서자 가뿐하게 네 자릿수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마침내 작년 11월 10일... 뉴델리의 AQI 지수는 자그마치 1,290을 기록했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세계 1등을 차지했다. 그날 공기오염지수가 고작(?) 305에 불과했던 파키스탄의 라호르 따위는 아주 여유 있게 제쳤다. :)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였다. 도시를 둘러싼 슬럼에서 집 없이 지내는 빈민들이 쌀쌀해진 겨울밤을 견디기 위해 닥치는 대로 불을 피우기 시작하자 도시 전체가 그야말로 '거대한 가스실'로 변모했다. 타이어 태우는 냄새, 건축 폐자재 태우는 냄새, 낙엽 태우는 냄새 등이 뒤섞여 밤새 온 도시를 이불처럼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차를 타기 위해 걸어가는 그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에도 용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매연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이렇게 유독한 공기를 밤새 들이마시며 길 위에서 추운 하룻밤을 보냈을 빈민들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물을 마신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인권일 텐데, 누군가에게는 손에 닿을 수 없는 사치품인 것이다.
오늘도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공기청정기를 켰다. 빨간 불이던 공기청정기의 센서가 10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겨우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나는 그제서야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모닝 루틴은 어제 퇴근한 이후 사무실에 가득 찬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아침부터 좀 후텁지근하다 싶더니 오후 시간이 되자 기온이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되자 바깥 기온이 39도를 육박한다.
"인도에서는 2월이면 최고기온이 20도, 3월이면 30도, 4월이면 40도까지 올라가죠."
언젠가 다른 회사 주재원이 나에게 해주었던 인도의 여름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덥고 공기가 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 창밖이 어느새 뿌옇게 변하더니 오후 3시라고는 믿기 어렵게 어두워졌다. 모래폭풍이 뉴델리에 들이닥친 것이다. 겨울에 북서부의 사막지역인 라자스탄에서 생긴 모래먼지가 가끔 뉴델리를 덮치기는 한다고 들었는데, 겨울도 다 끝난 3월 말에 모래폭풍이라니...
호기심에 핸드폰에 있는 AQI 앱을 켜봤더니 미세먼지 지수가 500을 훌쩍 넘어섰다. AQI 앱에 있는 지도를 열어보았더니 한반도 전체가 몇 개는 들어가고도 남을만한 인도 북부 지역 전체가 모두 짙은 적색으로 변해있었다. 이번에도 미세먼지 지수 300을 간신히(?) 넘어선 중국의 상하이를 제치고 한 번 더 인도가 세계 1등을 차지했다. '인도'가 다시 한번 '인도'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온 세상, 나의 시선이 닿는 지평선 끝에서 또 다른 지평선 끝까지 모두 희뿌연 먼지 속에 파묻혔다. 이쯤 되면 태양도 흙먼지에 맥을 못 춘다. 평소에는 맨 눈으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태양마저 핸드폰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세계 최악의 수준이라는 인도의 대기오염도 결국 근본 원인을 찾아들어가면 ‘빈곤’이다. 일 년 내내 도시 전체에서 크고 작은 건설 공사와 토목 공사가 계속되니 여기서 엄청난 양의 미세먼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인도인들이 몸부림치는 동안 공기의 질이 나빠지는 것이다. 먹고살겠다고 부지런히 일터를 오가는 낡은 차들에서 나오는 매연도 적잖이 공기를 오염시킨다.
농촌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손바닥만 한 경작지에 의존하는 빈농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도의 농업... 척박한 땅에서 내년에도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면 가을걷이가 끝나고 남아있는 짚과 쓰레기를 태워서 거름을 만들어야 한다. 돈 주고 화학비료를 살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는 농민들에게는 거를 수 없는 연중행사이다. 인도의 주요 곡창지대인 펀잡에서 농민들이 논밭을 태우기 시작하고 거기에다가 인도 북서부의 사막지대인 라자스탄에서 발원한 모래바람까지 합쳐지면 겨울 동안 뉴델리 2천만 시민을 괴롭히는 죽음의 칵테일이 만들어진다.
나처럼 사무실에서 시원한 에어컨 켜놓고 공기청정기를 마음껏 돌리며 근무하는 사람에게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이번과 같은 모래폭풍이 그저 한순간의 흥밋거리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날로 뜨거워지는 여름으로 인해 물 부족과 가뭄 피해를 입어 일 년에도 수만 명씩 자기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인도의 빈농들에게는 이번과 같은 모래 폭풍이 가슴 서늘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나와 그들이 이렇게도 서로 다른 운명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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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21년 3월 30일 사무실 앞에서 찍은 사진. 하늘 전체가 뿌옇게 먼지에 덮혀 태양마저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