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진짜 이유....
2014년 가을.
개학과 동시에 시작된 프랑스 학교에서의 수영 수업 방식은 엄격함을 넘어 살짝 가혹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을 자기 키보다도 깊은 차가운 물속에 밀어 넣고는 10분간 버둥버둥거리게 내버려 두는 게 '준비운동(réchauffement)'이었다. 혈액을 빠르게 순환시키면 물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신박한 논리였다.
약 90분간 진행되는 수업 내내 학생들은 물 밖을 나오는 것은 고사하고 수영을 멈출 수도 없었다. 지친 학생이 수영장의 레인이나 모서리를 잡으면 예외 없이 선생님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학부모 중 한 명(아마 호주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은 학부모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트럭에서 모래를 쏟아내듯이 수영장에 아이들을 밀어 넣고는 강압적으로 수영을 가르친다'라고 불평할 정도였다.
일주일에 한 번, 수영장까지의 왕복 시간을 합치면 꼬박 반나절을 할애하는 스파르타식 수업... 수영 수업이 있는 날이면 첫째 딸 호비와 둘째 딸 호지는 녹초가 되어 저녁 숟가락을 놓자마자 곯아떨어지곤 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호비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면담 요청이 왔다. 근심스러운 마음으로 학교로 찾아갔더니 뜻밖의 말을 꺼내놓는다.
"호비의 수영실력이 동급생에 비해 부족합니다.
수영 수업을 추가로 더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대신 프랑스어 수업을 좀 줄여야겠습니다. "
허탈함을 넘어서 살짝 어이가 없어졌다. 하루라도 빨리 프랑스어에 익숙해져도 모자랄 판에 프랑스어 수업 시간을 줄인다는 것이다. 그것도 체육 수업을 위해... 하지만, 그해 4월 16일 한국의 서해바다에서 304명의 꽃다운 목숨을 앗아간 엄청난 사건의 충격이 생생했던 우리 부부는 흔쾌히 학교의 결정에 동의했다. 호비는 이제 일주일에 두 번 수영 수업을 듣게 되었다.
아이들의 수영실력과 기초체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애들이 말하는 걸 가만히 들어보니 이제는 수영 수업에서도 웬만한 서양애들을 가볍게 제치는 눈치였다. "애들 배에 '임금 왕'자 모양의 근육이 생겼어. 이러다가는 남자애들 되는거 아냐?" 어느 날 아이들 목욕을 마친 아내가 말했다. 겉으로는 걱정스러운 듯한 투정이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지는 아이들의 모습에 내심 행복한 듯 입가에는 미소가 스쳤다.
한편, 아이들의 수영 수업은 내용 면에서도 상당히 체계적이었다. 일단, 수면 위에서 최대한 체력 저하 없이 떠있는 자세부터 시작해서 자유형은 물론 배영, 평형, 접형 등 네 가지 수영법을 모두 가르쳤다. 하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수영 수업의 마지막 내용이 수상 구조법이라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들 몸무게와 비슷한 더미(dummy) 인형을 구조하는 법을 반복 훈련시키더니 마지막에는 2인 1조로 서로 구조자와 피구조자가 되어 구조하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시킨다는 것이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단순한 체육 수업이 아니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법을 배우는 수업이었던 것이다.
물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수영을 상대적으로 더 좋아했던 호지는 프랑스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수영 수업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가장 아쉬워했었다. 처음에는 물을 무서워했던 호비도 프랑스 생활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두 가지는 프랑스어와 수영이라고 말할 정도로 수영 수업을 그리워했다.
2021년 1월.
둘째 딸 호지가 재학 중인 9학년을 대상으로 체육시간에 수영 수업을 하겠다는 학교의 안내 메일이 도착했다. 코로나가 한창인 이 시기에 다른 나라도 아닌 인도 한 복판에서, 다른 운동도 많은데 하필 수영이라니.... 살짝 겁이 나서 학교 교감선생님에게 문의 편지를 썼다. "지금 같은 시기에 꼭 수영 수업을 할 필요가 있느냐? 다른 종목을 가르치는 게 어떻겠냐?"
하지만 정작 호지의 반응이 의외였다. "코로나 때문에 불안한 사람은 수영 대신 개인별 PT를 해도 된대. 근데 오랜만에 수영 한번 해보고 싶어. 해보고 나서 불안하면 그때 선생님한테 양해 구하고 개인별 PT해도 될 거 같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호지는 수영 수업을 끝까지 듣고 싶다고 마음을 굳힌 눈치였다. 코로나가 무섭다며 등교할 때를 빼고는 몇 달째 집 밖에도 안 나가더니 수영은 꽤나 하고 싶었다 보다.
수영 수업이 있던 첫날, 평소 같으면 한참을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호지는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콧노래를 부르며 책가방에 수영복 가방까지 챙겨서 학교로 향했다. 수영장이 제대로 소독이나 되었을지, 사회적 거리두기는 제대로 지켜질지, 혹시라도 같이 수영 수업 듣는 애들 중에 무증상 감염자라도 있지는 않을지... 하루 종일 불안하고 찜찜한 마음에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날 저녁, 식탁에 앉은 호지에게 수영 수업이 어땠는지 물었다. "20명 중에 나 포함해서 6명만 수영했고 나머지는 개인별 PT 했어. 많이들 불안한가 봐. 근데, 오랜만에 수영하니까 너무 좋았어." 하루 종일 마음 졸인 부모의 속도 모르고 호지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첫째 딸 호비도 "우아.. 재미있었겠다.'라며 부러운 듯 맞장구를 쳤다. 지난해 3월부터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정작 첫째 딸은 수영 수업을 듣지도 못하고 9학년을 마친 터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두려움과 걱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무뎌졌다. 인도가 더운 나라이긴 해도 2월과 3월은 제법 선선한데, 호지는 춥다는 불평 한마디 없이 실외 수영장에서 진행된 수영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3월 말에 무사히 끝났고, 호지는 9학년 중에서 수영 수업을 끝까지 수강한 유일한 한국 학생이 되었다. 다른 한국 학생들은 감염 위험 때문에 수영장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 네 식구 중 가장 겁이 많아서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는 둘째 딸이 졸지에 학교에서 가장 용감한 (아니 가장 무모한) 한국 학생 자리에 등극한 것이다.
"오랜만에 하는데도 내 수영실력이 녹슬지는 않았더라고.
혹시라도 엄마 아빠가 물에 빠지면 내가 구해줄게. 걱정하지 마."
"야야... 됐다. 엄마 아빠 구하기는 개뿔.
지들만 살겠다고 엄마 아빠 버리고 갈 거면서."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인 줄만 알았는데 둘째가 갑자기 제법 어른스러운 소리를 하자 멋쩍어진 아내가 한마디 던졌다. 둘째는 슬쩍 눈을 흘기더니 식탁에서 일어섰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둘째의 뒷모습을 보니 어느새 키가 한 뼘은 커진 것 같았다. 가슴 한켠이 뭉근해졌다. ///
* 사진출처 : 글쓴이가 직접 촬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