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는 것, 머무는 것, 철수하는 것... 어느 것 하나쉬운 게없다.
사내 전산망에 올라온 공지는 간결했다. 미얀마 현지 치안사정을 고려한 잠정적 폐쇄이며, 직원과 가족들 전원을 귀국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얀마 지사가 담당하던 업무는 이제부터 본점의 어느어느 부서에서 담당하게 되었으니 업무 관련해서 문의가 있으면 그 부서로 연락하라는 짧은 안내도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난 여름부터 이미 최소인원만으로 운영 중이었는데 이젠 완전히 철수하는 것이다.
미얀마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진 지 몇 주가 지났다. 회사 외부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왜 이렇게 늦게 철수 결정이 내려졌는지 다소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현지에서 활동하는 나 같은 주재원의 입장에서는 철수 결정이 이제서야 내려진 게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일시적인 철수이건 영구적인 철수이건 결정을 내리기 전에 고민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도에 코로나가 한창 확산되던 작년 여름... 사실 나도 본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되도록이면 직원과 가족 전체가 잠시 귀국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가족만이라도 귀국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인사담당 부장께서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뜻 답하기 어려워 가족들의 뜻을 물어보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귀국해도 막상 들어가서 살 곳도 없는 거 당신도 잘 알잖아.
전세 세입자를 내보낼 돈도 없고, 설사 돈이 있더라도 얼마나 머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보내?
그리고 애들 학교는 또 어쩌고?"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아니, 돌아갈 형편이 안되었다는 게 더 정확하다. 인도와 한국 사이에 정기 항공편마저 끊어져 있는 상황에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 채 가족들만 비행기에 태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한국 회사의 주재원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잔류하는 모양새였다. 우리 가족도 잔류를 선택했다. 일단, 잔류를 선택했지만 언제든지 사무실을 (일시적으로라도) 폐쇄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직면하자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사로부터 급박하게 철수 결정이 내려지면 나와 내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작년 여름 내내 사무실 폐쇄가 현실화되면 무슨 문제부터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며 수첩에 적었던 메모들... '현지 채용 직원 고용유지?', '각종 용역계약은?', '임차주택 의무 거주기간?', '아이들 학교는?', '돌아가서 살 전셋집' 등등.....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해외에 나가는 것, 현지에 머물며 영업하고 생활하는 것, 마지막으로 현지를 떠나 귀국하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자.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분들 중에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길래 해외에 왜 나가? 한국이 얼마나 좋은데.
자기가 좋다고 가족들 다 데리고 나가 놓고서는 이제 와서 뭐 그렇게 불만이 많아?"
맞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회사가 종사하고 있는 업종의 특성상 반드시 장기간 해외에 직원이 거주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그런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에게는 좋든 싫든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굴레가 바로 해외근무이다. 원하지 않는 시기에 해외에 나가야 할 수도 있고, 잔류를 희망하더라도 한국에 귀국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원해서 나가는 환경 좋은 나라도 있고 원하지 않더라도 나가야 하는 나라도 있다.
그리고, 소위 '후진국'으로 발령 나면 가끔 나 자신이 '후진' 사람이 된 듯한 시선도 견뎌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선진국에 발령받은 직원들은 어깨를 떡 펴고 돌아다니며 축하를 받는 반면, 후진국에 발령받은 직원들은 출국하는 날까지 동료 직원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현지에 도착해도 마찬가지다. 인도에 도착해서 만난 현지 부동산 중개인은 첫 만남에서 강한 인도식 악센트가 섞인 영어로 내게 농담을 건넸다. "Now, you're transferred to India. Did you get demoted?" (인도로 발령받으셨군요. 강등이라도 당하신 건가요? ^-^)
아이들 학교부터 시작해서 모든 한국 생활을 정신없이 정리하고 다시 제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나라였다. 이방인의 언어가 24시간 나를 감싸는 삶,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서의 삶'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아빠는 아빠대로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관행이 버젓이 벌어지는 후진국 상황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가고, 아이는 아이대로 하루하루씩 학교 생활을 견디다 보면 3, 4년의 세월이 후다닥 지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 한국에 재적응하기 위한 전쟁을 또 한바탕 치러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몇 년마다 나라를 옮기는 자신들의 생활을 '뿌리째 뽑혀서 새로 심겨지는 나무 같은 기분'이라고 말하곤 했다.
재적응은 아내에게도 쉽지 않았다. 나의 프랑스 지사 근무가 끝나고 귀국한 2017년 1월. 복직한 아내가 첫 출근했다가 퇴근하더니 "나 보다 입사 후배가 팀장을 맡은 팀에 팀원으로 배치됐어."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 때문에 자기 커리어가 망가졌다고 성질이라도 부렸더라면 내가 덜 미안했을 텐데... 남편인 내가 미안해할까 봐 태연한 척하는 아내에게 난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부터 인도의 확진자 수가 갑자기 폭증하기 시작했다. 하루 2만 명 내외에 머물던 숫자가 불과 며칠 사이에 8만 명을 돌파했다. 아마도 ‘3차 확산’이 이제 시작되나 보다. 아이들은 학교를 못 가게 될까 봐 걱정하기 시작했고, 나와 아내는...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혹시라도 본사에서 철수 권고가 오지는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들어가서 살 집도 없는데... 그리고, 아이들 학교는 또 어쩌지?....
'정착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머물다 떠나는 삶'은 그 시작도 중간도 끝도 늘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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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무굴제국 황제인 후마윤의 무덤을 글쓴이가 직접 찍었다. 무굴 제국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인도에 '머물다 떠난' 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