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주택가에 출몰하는 다양한 동물들...
인도는 동물들의 천국이다. 인구 2천만의 대도시인 뉴델리 한복판에서도 사람 눈치 보지 않고 길 위를 의기양양하게 활보하는 크고 작은 동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길 위의 제왕은 단연코 소떼들이다. 줄지어서 멋지게(?) 행진을 하기도 하고 통행하는 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껏 여유 있게 대로를 횡단하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집 근처에 있는 동네 시장에 걸어서 다녀올 때면 어김없이 소떼들을 마주치곤 한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유순한 초식 동물"이라 생각하려고 노력해도, 막상 바로 옆으로 덩치 큰 소들이 줄지어 지나가면 적잖이 긴장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소가 많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기 때문에 막상 소떼를 보고는 딱히 놀랍지 않았는데, 입마개나 목줄 없이 길가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개들을 보고는 적잖이 놀랬었다. 인도 지사 근무했던 전임 직원 중에 개에게 물려 광견병 치료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던 터라 되도록이면 거리에 돌아다니는 개 근처에는 가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주말 아침이면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동네 개들도 공원에 와서 키 작은 나무숲에 몸을 비벼댄다. 추측하건대 몸에 붙은 벼룩이나 이를 떼어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늦은 밤, 한 마리가 컹컹거리며 짖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온 동네 개들이 따라 짖는 '개들의 합창'이 시작되어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때마다 얄밉고 화가 나곤 했는데, 저렇게 아침마다 몸을 긁고 있는 녀석들을 보면 "녀석들... 쌤통이다."라는 유치한 생각도 든다.
구글에 "인도" "원숭이" 이렇게 두 개의 검색어를 넣어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법한 온갖 해괴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원숭이 떼에게 습격당해 추락사한 뉴델리 부시장(2007년 10월), 원숭이에게 끌려가 목숨을 잃은 생후 12개월 된 신생아(2019년 11월), 옥상에서 배드민턴을 치다가 원숭이에 습격당해 추락사한 여대생(2021년 3월) 등등...
머리가 좋고 성격도 포악한 편이라 사람이 사는 집의 유리창이나 문을 열고 침입해서 음식을 훔치거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종종 있다고 전해 들었다. 우리 가족도 두어 번 원숭이를 목격했다. 우리 집과 이웃한 집의 건물 외벽을 타고 유유히 돌아다니다가 우리 집 안방을 쓰윽 둘러보는 원숭이와 눈이 마주치고는 등골이 서늘해졌었다. "잘 봐 놨다가 다음번에 저 집에 들어가야겠다."라는 원숭이의 다짐이 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입주한 이후 벌써 서너 번 아내의 간을 떨어지게 만든 녀석들은 다름 아닌 비둘기들이다. 보통 두 마리가 짝을 지어 날아다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비둘기들은 주로 안방 베란다에 출몰한다. 거기엔 세탁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세탁을 하러 베란다에 나간 아내를 혼비백산하게 만들곤 한다. 아이들은 비둘기들을 '닭둘기', 또는 '엄마 친구'라고 부르며 낄낄거렸지만, 아내는 비둘기가 정말 싫은 것 같다. 푸드덕 거리며 날아올라 바로 옆집 담장에 내려앉고서는 사람 눈치를 보며 다시 우리 집으로 날아올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비둘기의 뒤통수를 향해 아내는 '어우... 진짜 싫어.. 정말 싫어...'를 목청껏 외치곤 한다. 그 녀석들은 인도 비둘기라서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 :)
이 녀석들이 집 지으려고 물어다 놓은 나뭇가지들, 그리고 베란다 난간에 허옇게 싸놓은 비둘기 똥 역시 아내의 치를 떨게 만든다. 몇몇 한국 가정들은 비둘기 등쌀을 견디다 못해 베란다 전체를 촘촘한 bird net으로 감싸거나 베란다 난간에 뾰족뾰족한 bird spike를 설치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몇 주전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우리 가족들의 단체 카톡방에 아내의 메시지가 떴다. 집에 도마뱀이 출몰했다는 거였다. 얼마나 큰 녀석인가 했더니 겨우 손가락만 한 녀석이란다. 동물이라면 종류와 크기에 상관없이 무조건 "어우... 귀엽다"를 외치는 둘째 딸 호지는 쉬는 시간에 카톡 메시지를 발견하고는 "내쫓지 말고 우리가 데리고 살면 안 돼?"라며 급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아내는 가뿐하게 그 메시지를 '읽씹'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갈 때까지 도마뱀은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창문 틈에서 꼼짝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결국 내가 도마뱀을 잡아서 집 밖으로 내보냈다. 오후 내내 따뜻한 봄 햇살을 받아 달궈진 대리석 위에서 조금 더 몸을 덥힌 도마뱀은 유유히 자기 갈길을 갔다. "어우. 이제는 파충류까지.. 진짜 싫어... 정말 싫어..." 아내가 또 한마디 했다. 그 녀석도 한국말은 못 알아들을 텐데 말이다 :)
아주 작은 사건만으로도 내가 다른 문화권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기도 한다. 이삿짐이 들어오던 날, 이삿짐에서 어른 엄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짐을 나르던 이사업체 직원들은 바퀴벌레를 잡을 생각을 안 하고 신발로 슥슥 밀어서 현관문 밖으로 내보냈다. 작은 생명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 나라에 온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잊을만하면 바퀴벌레가 마치 "까꿍... 그동안 나 잊고 있었어?"라고 말이라도 하듯이 우리 집에 등장해서 우리 가족들을 놀라게 한다. 물론, 우리 가족에게 인도 사람들과 같은 자비는 없다. 바퀴벌레가 익사할 정도로 해충 제거제를 뿌려서 죽인다. 마치 지금 이녀석을 죽이면 다시는 바퀴벌레가 우리 집에 출몰하지 않으리라는 듯이 말이다.
제일 골치 아픈 존재는 오히려 가장 몸집이 작은 녀석, 바로 모기이다. 모기가 옮기는 가장 무서운 질병은 말라리아인데, 기후적인 특성상 우리 가족이 사는 뉴델리에서 멀리 떨어진 인도의 동북부에서 주로 발병한다. 하지만, 뎅기열은 뉴델리를 포함한 인도 전 지역에서 골고루 발생한다. 누구는 독감 정도로 앓고 지나간다지만 누구에게는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는 질병이다.
뎅기열 모기는 주로 낮에만 활동하고 몸집이 크고 무겁기 때문에 낮게만 날아다녀서 구별이 쉽다던데, 인도에 온 지 1년도 넘은 우리 가족들에게는 모기를 구별할 그런 안목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한국에서였다면 모기 한 마리 정도는 무심히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뎅기열 모기와 일반 모기를 구별할 능력이 없는 우리 가족들은 그 한 마리를 잡을 때까지 끝까지 쫓아다닌다.
인도 주택가에 자주 출몰하는 동물 이야기를 쓰다 보니 문득 가장 위험한 것은 오히려 가장 작은 것 또는 아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 위압적인 소들은 굼뜨고 느린 행동으로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것 이외에 딱히 인간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없는 대신, 작고 날쌘 원숭이들과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모기들이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게다가 인간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1년이 넘게 인류 전체를 꽁꽁 묶어놓은 걸 보면 '동물의 몸집과 위험도는 반비례한다'는 나의 어설픈 가설이 더욱더 설득력을 얻는 것 같다 :)
어젯밤에도 밤새 동네 개들은 컹컹거렸고, 모기는 왱왱거렸다. 아침이 되자 집에서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쓰레기 하치장에 소떼들은 다시 모여들었다. 비둘기들은 열심히 똥을 싸고 있을 테고, 원숭이 녀석은 이 모든 걸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있으리라...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인도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p/s. 개미 이야기를 빼먹을 뻔했다. 지난 여름 장마가 끝난 어느 날 아침, 작고 붉은 개미가 일렬로 거실을 행진하는 것을 보고 우리 가족들은 신기함(나), 귀여움(우리 딸들), 경악(내 아내)을 동시에 체험했다. 이 녀석들 또한 아내가 한걸음에 약국에 달려가서 구입한 성능 좋은 해충퇴치제를 피하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집에 흰개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주재원들 사이에서 들은 소문에 따르면 흰개미가 나타나면 그 날로 '상황 끝'이란다. 목재로 된 모든 가구와 구조물이 남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제발 우리가 인도에 머무는 동안 흰개미만 나타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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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글쓴이가 직접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