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인도가 최악의 코로나 확산세에 직면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비통과 격정이 작품 전체를 휘감는 가장 역동적인 작품을 고르라면,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리어왕이 단연 으뜸이 아닐까 한다. 가장 사랑하던 피붙이들에게 배신당한 아버지는 광기에 사로잡혀 광야를 헤매고 그 와중에 대충 헤아려도 예닐곱 명은 족히 되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쉼 없이 죽어나간다. 왕이었던 아버지와 세 딸이 모두 죽고, 둘째 사위도 죽고, 충직한 신하도 죽으면서 그야말로 줄초상이 난다. 칼에 찔려 죽고(콘월 공작, 에드먼드), 눈이 뽑힌 후 슬픔을 못 이겨 죽고(글로세스터), 독살당하고(둘째 딸 리건), 자살하고(첫째 딸 거너릴)...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라면 셋째 딸 코델리아의 시신을 끌어안고 절규하던 리어왕이 슬픔에 겨워 세상을 떠나는 5막 3장이다. 하지만, 리어왕을 섬기던 충신 글로세스터 집안의 비극이 드러난 4막 1장도 못지않게 처연하다. 동생에게 모함받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맏아들 에드가는 눈이 뽑힌 아버지(글로세스터)를 발견하고는 그동안 자신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던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구나'라는 말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말이었는지를 깨닫고 절규한다.
'최악'이라는 말이라도
내뱉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직 최악은 아니로구나
The worst is not
So long as we can say
“This is the worst.”
불평이라도 할 수 있고, 최악의 상황이라고 소리라도 지를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은 상황이라는 말이다. 에드가의 이 대사가 예언이라도 된 걸까? 이후로 연극은 한 가문이 모두 목숨을 잃는 최악의 상황을 향해 거침없이 치닫는다.
결국은 돌고 돌아 작년에 있던 그 자리에 다시 왔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작년보다 훨씬 더 안 좋아졌다. 작년 9월 인도 전역의 하루 확진자가 약 9만 8천 명을 기록했었고, 뉴델리에서는 11월 즈음에 하루에 몇천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었다. 지난 가을, 무섭던 코로나 확산 기세가 한풀 꺾이고 나서 나를 포함해서 인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악은 지나갔다'라고 믿었다.
2020년 3월 인도 전역에 내려졌던 통행금지 조치는 점차 완화되었고, 2021년 봄이 되면서 일상생활을 거의 되찾은 듯했다. 통행금지 조치로 생업을 위협받아왔던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터를 찾았다. 꽤 오랜 기간 동안 확산세는 안정화된 듯 보였었지만 실상은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었나 보다. 불과 몇 주 사이에 확진자 수가 폭증하기 시작하더니 2021년 4월 현재 인도 내 전체 확진자가 27만 명을 넘어섰고, 인구 2천만의 도시인 뉴델리에서도 확진자가 2만 5천 명을 넘나들고 있다. 작년 피크의 무려 3배에 달하는 숫자이다.
정말로 안타까운 점은, 그 누구도 이러한 사태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열심히 코로나를 전파시켜야지'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인구가 수억 명에 달하는 인도 상황에서 그저 자기 식구들 먹여 살리기 위해 일터에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슬프게도 ‘선한 의도’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리어왕의 가장 마지막 부분 5막 3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포로가 된 셋째 딸 코델리아는 자기 아버지를 애써 위로하려고 말을 건넨다.
"좋은 의도를 가졌지만
최악의 결과를 맞은 게
우리가 처음은 아니에요."
We are not the first
Who with best meaning
have incurred the worst.
제 아무리 셰익스피어가 최고의 작가라 해도 2021년을 인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코델리아의 위로가 공허하다.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게 어찌 위로가 되겠는가? 나의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슬픔을 겪고 있다는게 무슨 위안이 될까?
코로나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가 3백만 명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들려온 지 며칠 안된 4월 19일, 뉴델리에 다시 한번 통행 제한령이 내려졌다. 기한은 일주일이라는데, 일주일 후에 과연 확산세가 꺾여 통행 제한령이 해제될지 추가로 연장될지 지금 시점에서는 쉽사리 예측되지 않는다.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이 최악이기를, 지금의 상황이 더 이상 최악으로 치닫지 않기만을 그저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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