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코로나 상황의 불편한 현실
[# 1] 인도의 코로나 확산세
무서운 속도라는 표현조차 부족할 정도이다. 인도 현지 언론들도 '괴물 같은 폭증(Monster Surge)'라고 표현할 정도로 최근 며칠 동안 인도 내 코로나 확산세가 엄청나다. 4월 21일(수) 하루 동안 인도 전역의 신규 확진자가 31만 6천 명에 달하고 있다. 경제 중심지인 뭄바이가 속한 마하라슈트라 주(State of Maharashtra)는 6만 7천 명, 인구가 2천만 명 규모인 뉴델리 역시 2만 4천 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를 기록하고 있다. 뉴델리만 보자면 매일 인구 천명중 한 명이 새롭게 감염되는 공포스러운 속도이다.
불과, 한두 달 전에 인도 전역에서의 하루 신규 확진자가 만 명 미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달 사이에 자그마치 30배가 넘게 늘어난 것이다. 현지 뉴스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짧은 기간에 갑작스럽게 늘어난 환자로 인해 인도 중앙정부는 물론 주정부들 그리고 의료계도 적잖게 당황하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현지 뉴스와 외신 뉴스를 비교하며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인도의 코로나 상황을 다루는 인도 정치권과 언론의 불편한 현실이 눈에 띈다.
[# 2] 코로나 한복판에 진행된 힌두교 종교축제
인도에서는 봄에 두 개의 힌두교 축제인 Holi 축제와 라마신 탄신일(Rama Navami) 축제를 지킨다. 힌두력에 따라 2021년에는 두 축제가 각각 3월 말과 4월 중순에 열렸는데, 유명한 힌두교 성전과 갠지스 강에 모여든 수십만 명의 인파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더욱더 놀라운 것은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볍게 무시하고 빽빽하게 모여있는 모습이었다. BBC를 포함해서 인도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다루는 외신들은 이러한 종교 행사가 코로나 확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 인도 언론들은 태도가 상당히 다르다. 힌두교 종교집회를 비판하는 보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인도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 그중에서도 현 집권여당인 BJP당의 지지기반인 힌두교 근본주의 세력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이 없는 것이다.
대신 '언제나 그렇듯이' 이슬람교도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불과 몇십 명의 농민들이 모여 이프타르(라마단 기간 중 일몰 후에 갖는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찍은 한 현지 뉴스는 Covidiots (코로나 멍청이들)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헤드라인과 함께 하루 종일 이들을 비난하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의 확산세는 수십만 명이 모였던 힌두교 종교축제가 아니라 이슬람 세력 때문’이라고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적발된 사람들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추진 중인 농산물 유통법에 반대하면서 몇 달째 뉴델리 주 경계에서 연좌농성 중인 농민시위의 주동자들이다. 인도 정부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이슬람 세력과 정부의 개혁입법을 반대하는 농민들을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는 '일타쌍피'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어 이들에게 모든 비난을 집중시키는 저급한 정치적 술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3] 엄청난 규모의 지역 선거
5개의 주에서 총 1억 8천만 명의 유권자가 참여하는 지역단위 선거가 인도의 각지에서 진행되면서 엄청난 규모의 정치 집회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70, 80년대 한강변에 수십만 명이 모이는 정치집회가 심심치 않게 열리곤 했다는데, 바로 그 모양새이다. 각 정당들은 대중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느냐를 놓고 상대 세력과 경쟁을 한다. 마스크? 사회적 거리두기? 당연히 없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자를 열광적으로 응원하는데 그런 거추장스러운 게 뭐가 필요하겠는가?
신규 확진자가 1만 명이 넘어선 웨스트벵갈 주에서 하루에 3번이나 대규모 집회를 연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인도 내무부장관이자 모디 정권의 사실상 2인자인 사람이었으니, '정치권이 국민의 생명보다 표를 앞세운다'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코로나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현지 방송에 출연한 의사 한 사람이 '종교와 정치가 판을 치면 과학은 설 자리를 잃는다'라며 지금의 인도 상황을 한탄할 정도이다.
[# 4] 언론 :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그러나 언론의 자유는 없는...
현지어를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현지에서 영어로 방송되는 몇몇 채널들을 중심으로 현지 뉴스를 접하게 되는데, 방송의 내용이나 톤이 한국의 방송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다. 작년 봄 코로나가 처음 확산되던 시기에는 코로나 뉴스가 아닌 볼리우드 배우의 자살사건이 몇 주 동안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었다. 젊은 배우의 자살, 그 자살 배후로 의심받는 그 배우의 아내(그녀 역시 유명한 연예인),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얽힌 정치인들과 경찰들까지 뒤얽히면서 그야말로 현실판 막장드라마가 한동안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웠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연예인 가십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2021년도 자극적인 보도 행태는 마찬가지이다. 화장터 시설이 부족해서 길거리에서 수십구의 시체를 화장하는 장면, 죽어가는 환자들과 이미 사망한 환자들이 같은 병실에 누워있는 참혹한 장면, 환자로 가득 찬 병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앰뷸런스에서 죽어가는 환자들과 그 옆에서 울부짖는 가족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치료는 고사하고 생명 연장에 필요한 산소통마저 부족하다 보니 중앙정부와 주정부는 산소통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이 와중에 중앙정부와 뉴델리 정부는 산소통 확보를 놓고 이견을 보이다가 급기야 정치인들끼리의 말싸움으로 번져서 '네 탓이요' 타령만 계속하고 있다. 남의 탓할만한 대상이 필요했는데, '옳거니' 싶은 거다.
그러는 와중에 뉴스 화면 하단에는 'World's Worst Spike(세계 최악의 확산세)', 'Public in Total Panic(대중은 혼란에 빠졌다)', 'Rumors of Loot and Riot(탈취와 폭동 소문)' 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포함한 정치인에 대한 '컬트' 수준의 지지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게 교묘히 행해지는 정부의 언론탄압, 집권여당에 비판을 가하는 언론인에 대한 빈번한 테러를 보면 인도의 언론 자유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할 수 있다. 실제로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에서 집계한 언론자유지수(https://rsf.org/en/ranking)에서 인도는 전 세계 180개국 중 142위를 머물러 있다.
부실한 의료체계, 당리당략에 함몰된 정치인들, 수준 낮은 언론, 현지인들마저 한탄할 수준인 미신적 종교 행태... 의학이 전염병과 싸우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절망적 환경이다.
[# 5] 앞으로 며칠이 결정적 분수령이 될 듯...
일부 지역에 국한된 통행제한 조치가 확대될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엄청난 확산세에 직면한 뉴델리와 마하라슈트라 같은 주요 주 정부(이들 주 정부는 현재 야당이 집권하고 있다)들은 이러저러한 형태의 통행제한을 발표하면서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반면, 집권여당은 2020년과 같은 전국 단위의 대규모 봉쇄를 다시 도입하는데 주저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중앙정부도 어쩔 수 없이 작년과 같은 전국 단위 봉쇄를 다시 도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소문도 돌기 시작한다.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우리와 같은 주재원들에게는 살고 있는 나라가 정세 불안에 휩싸이게 되면 참으로 난감하고 당혹스럽다. 이 나라 국민들도 고치지 못하는 문제를 고칠 능력도 지혜도 없는 우리 같은 손님들은 그저, 아무 일 없이 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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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Naveed Ahmed on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