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굳이 만나자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는 '갑'이고, 또 한편으로는 '을'이다.

2021년 4월...


한국에 있는 우리 회사 거래처의 부사장께서 조만간 인도에 출장을 가게 될 거 같은데 만날 수 있겠느냐며 국제전화를 걸어오셨다. 전 세계 10여 곳에 해외법인을 가지고 있는 나름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인도에도 꽤 오래전에 생산법인을 만들어서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영업실적을 선방한 기업이었다.


이렇게 코로나 상황이 심각한 인도에 출장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지 않이 놀랐다. 이유를 물어보니, 일년에 몇 군데씩 해외법인을 돌아보며 영업상황을 점검해오곤 했는데, 2020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거의 해외에 나가지 못하다가 이번에 큰 맘 먹고 1년만에 인도에 온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출장오는데 인도 현지 거래처만 만나고 돌아가면 섭섭하고 아쉬울 거 같아서 굳이 내 사무실로 찾아와서 '인사를 드리겠다'는 거였다. 따져 보자면 우리 회사는 '갑', 그 회사는 '을'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체질적으로 그런 '갑을' 관계를 싫어하는 나는 '어떻게 하면 이분이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하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제전화까지 걸어서 굳이 약속을 잡자고 하시는 분을 야멸차게 거절하기도 난감했다. 거절했다가는 '나를 만나기 싫다는 건가'라고 오해하실까 걱정도 들었다. 시간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지만 찜찜한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하루에도 신규 확진자는 수만 명씩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혹시라도 이곳저곳 인도 거래처 만나서 코로나에 걸리고는 나한테 옮기는 건 아니려나?', '화상회의도 있고, 전화 통화로도 거의 모든 업무가 가능한데 굳이 찾아오시는 건 뭐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 분도 오죽 급했으면 이런 시국에 다른 나라도 아닌 인도에까지 출장을 오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몇천 명씩 코로나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이 나라에 오고 싶어 오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저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어쩔 수 없어서, 일이 하도 안 돌아가니 오지 않을 수가 없어서 오는 게 뻔했다. 이쯤 되니, 굳이 사무실에 찾아오시겠다는 분을 막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나 음식은 대접 못하겠지만 따뜻한 위로의 말씀이라도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분은 내 사무실에 오지 못했다. 인도에 도착하고 불과 하루이틀 만에 뉴델리 전역에 통행제한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아예 올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만나기로 약속했던 날,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을'의 난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인 잘못도 아닌데 연배도 나보다 높으신 분이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 분의 말씀도 끊을 겸,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그나마 최선의 답변을 해드렸다.


"부사장님이 안 오셨다고 해서 전혀 섭섭한 마음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부사장님의 안전한 귀국이 첫 번째 급선무입니다.

무사히 공항까지 이동하셔서 귀국하시는 길을 속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셨죠?"




'갑'인 내가 '섭섭한 거 없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자 비로소 수화기 너머 '을'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분도 이제야 마음이 놓인 거다. 살짝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분의 안전한 귀국을 기원했고, 그분은 열악한 환경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염려해주셨다. 서로의 건강과 가족의 안전을 빌어주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갑'과 '을'이 아니라 평범한 가장, 가족을 위해 일하는 아버지였다.


그분도 어차피 월급 받으며 일하는 샐러리맨... 나랑 하나도 신세가 다를 게 없다. 만석꾼 집에서 종노릇하는 거랑 천석꾼 집에서 종노릇하는 게 뭐가 다르겠나, 다 종노릇인데... 주인(회사)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일하라면 일하고, 다시 오라면 오는게 종(회사원)의 신세이다. 그 분도 주인이 가라고 시켰으니 왔을테고, 나 역시 주인이 여기에서 일하라고 시켰으니 일하는거다.


이렇게 힘들고 세상살이가 팍팍할 때, 그저 홀아비가 과부 신세를 이해하듯, 아직도 회사를 탈출 못한 '도비'가 또 다른 '도비'를 위로하면서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루하루 버텨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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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Sebatian Hermann on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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