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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ug 06. 2022

하얀 피부가 아니라면 당신은 '러블리'하지 않아요

하얗게 더 하얗게... 밝은 색 피부를 향한 인도인들의 끝없는 욕망

[# 1] 하얀 피부가 아니면 당신은 ‘러블리’하지 않아요...


오늘은 살짝 깊이가 얕은 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바로 여성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_^;)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덕목들이 필요한 듯하다. 준수한 이목구비, 늘씬한 키, 아름다운 몸매와 같은 외적인 요소들 뿐만 아니라 지성미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인도에 살고 있다면, 이 모든 것들보다 앞서 갖춰야 할 첫 번째 조건이 있다. 바로 밝은 피부색이다. 달리 말하자면 어두운 피부색을 갖고 있는 여성은 ‘아름다운 여성’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부터 통과 못하는 셈이다. 인도에서 지내다 보면 밝고 흰 피부에 대한 인도인들의 사랑을 넘어선 동경과 열망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인도 화장품 업계가 놓칠 리가 없다. 이미 1975년부터 세계적인 화장품 업체인 유니레버(Unilever)는 인도 시장에 스킨 화이트닝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수십 개의 제품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 중이다. 그중에서 인도인들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제품을 고르라면 단연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니레버의 ‘페어 앤드 러블리(Fair & Lovely)'이다. 제품명을 듣고 '어머 이건 꼭 사야 돼’라고 외쳤다면 당신은 이미 ‘얼굴색이 흰색(fair)이 아니면 당신은 러블리(lovely) 하지 않다’는 화장품 회사의 메시지에 넘어간 것이다. 로레알(L'Oreal)이 팔고 있는 경쟁 제품은 한 술 더 뜬다. ’화이트 안티 임퍼펙션(White Anti Imperfection)'이란다. ‘당신 피부가 흰색이 아니면 당신은 퍼펙트하지 않은 사람이에요’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 2] ‘흰 피부에 대한 동경’을 부추기는 사회


재미있는 것은 흰 피부에 대한 이러한 열망을 인도인들이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도에서는 아직도 일간지에 혼처를 구하는 중매 광고가 빈번히 등장하는데, 이때도 절대 빼먹으면 안 되는 정보는 ‘흰색 피부’를 가진 예비 신랑 신부가 ‘흰색 피부’를 가진 상대방을 찾는다는 정보이다. 실제로 ‘페어 앤드 러블리’ 화장품이 시장에 출시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1980년대부터 텔레비전에는 짙은 피부색을 가진 예비신부가 신랑감을 찾지 못해서 고생하다가 화이트닝 제품을 사용하고는 결혼에 성공한다는 스토리라인을 가진 광고가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4년 인도의 ‘광고기준협의회(Advertising Standards Council of India)가 짙은 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광고를 제작하지 말라는 기준을 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광고는 계속되었다.


게다가 인도 최고의 남녀 영화배우들도 대놓고 스킨 화이트닝 제품을 광고하거나 암암리에 피부 미백을 위한 시술을 받았다. 인도의 김혜수라고 할 수 있는 프리앙카 초프라는 지속적인 피부 미백 시술로 2000년에 최초 데뷔하던 때와는 완전하게 다른 피부색을 갖게 되었다. 그 와중에 폰즈와 가르니에 같은 유명 브랜드의 화이트닝 제품 모델로도 활동했다. 여배우뿐만이 아니다. 인도의 송강호라고 할 수 있는 국민배우 샤룩 칸(Shah Rukh Khan)도 10년이 넘도록 ‘페어 앤드 핸섬’이라는 화이트닝 크림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자, 이쯤 되니 인도 소비자들은 스킨 화이트닝 화장품을 안 사고는 못 배기게 된다. 2020년 기준 업계 추산에 따르면 인도 내에서 판매되는 스킨케어 제품의 약 50%는 스킨 화이트닝 제품이며, 그 시장규모가 약 5억 달러 내외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규모이다. 전 세계 스킨 화이트닝 제품 시장 규모가 80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1인당 GNP가 2,000달러 내외에 불과한 인도에서 스킨 화이트닝 제품이 5억 달러 어치나 팔린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 3] 때로는 죽음으로까지 내몰리는 ‘어두운 피부’의 여성들


화장품을 발라서 얼굴을 희게 만드는 것은 그나마 애교스러운 수준이다. 스테로이드나 하이드로퀴논(hydroquinone) 때로는 수은 등의 위험한 성분이 들어간 의약품을 합법적으로 때로는 불법적으로 구매해서 의사의 처방도 없이 자신의 얼굴에 바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오로지 흰 피부를 갖기 위해서이다. 때로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청소년기부터 오랫동안 의약품에 의존해오다가 청장년기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피부 노화는 물론이고 피부 질환으로 발전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사랑하는 딸의 피부를 조금이라도 하얗게 만들어서 좋은 남편감을 찾아주려던 어머니의 부지런함이 결국에는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좀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피부색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조롱에 가까운 놀림을 견디다 못해 대학교 2학년 여학생이 자살을 하거나, 심지어는 결혼 후에도 피부색을 트집 잡아 추가적인 지참금(dowry) 요구하는 남편의 학대를  이겨 자살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2022 5월에도 인도 서부의 구자라트 주에서 피부색을 핑계로 집요하게 계속되는 남편의 학대를 이기지 못한 아내가 목숨을 끊는 끔찍한 일이 있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학대가 자신의 딸에게도 이어질 것을 걱정한 그녀는 태어난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딸을 가슴에 품고 강물에 뛰어들었고   목숨을 잃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성의 지위가 낮은 인도 사회에서 짙은색 얼굴을 가진 여성은 이중의 차별을 겪는 것이다.


[# 4] 느리지만 조금씩 나타나는 변화들...


2009년 인도 남부 타밀 나두(Tamil Nadu) 주의 주도(州都)인 첸나이에서 카비타 엠마누엘(Kavitha Emmanuel)이라는 여성 사회운동가가 Women of Worth(값어치 있는 여성들)라는 NGO를 세웠다. 밝은 피부를 동경하고 짙은 색 피부를 멸시하는 사회적 편견에 대항해서 'Dark is beautiful'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인도의 유명 여배우이자 감독인 난디타 다스(Nandita Das) 또한 ‘Stay Unfair, Stay Beautiful’이라는 슬로건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동조하면서 힘을 보탰다.


2013년을 전후하여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면서 흰색은 아름답고 검은색은 추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한 노력은 추가적인 동력을 얻게 된다. 다국적 기업인 존슨앤드존슨은 자신들의 제품군인 뉴트로지나(Neutrogena)와 클린앤드클리어(Clean & Clear)에서 화이트닝 제품을 퇴출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유니레버 역시 앞으로는 제품명에서 'fair', 'white', 'lightening' 등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자기들의 최대 히트 상품인 ‘페어 앤드 러블리’를 판매 중단하기보다는 이름만 ‘글로우 앤드 러블리’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스킨 화이트닝 업계에서의 최대 히트상품을 차마 자신들의 손으로 단명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5] 과거를 반성하며 그리고 미래를 그려가며...


2020년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 폭력에 희생당하자 프리앙카 초프라는 이에 항의하는 메시지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미국의 유명 보이밴드인 조나스 브라더스의 닉 조나스(Nick Jonas)와 결혼한 후 인도는 물론 미국 시장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던 프리앙카 초프라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의사표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과거 오랜 기간 스킨 화이트닝 제품의 모델로 활동한 것을 기억하는 인도인들은 그녀를 위선자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결국 2021년 2월 자신의 자서전 출간을 전후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녀는 과거 자신의 행적에 대해서 사과하게 된다.

인도 유명 여배우 프리앙카 초프라가 과거 모델로 활동했던 스킨 화이트닝 제품

희고 밝은 피부를 동경하다 못해 짙은 색 피부를 경멸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약자인 여성 중에서도 피부색이 짙은 여성들을 이중으로 차별하는 이러한 행동은 과연 인도에만 국한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도 흰 피부에 대한 동경과 짙은 피부에 대한 차별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은연중에 이러한 ‘흰 피부’에 대한 동경은 일상생활 속 스며들여 있다.


한 채널만 넘기면 또다시 나타나는 수많은 홈쇼핑 채널에서 누가 봐도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에서 온 게 분명한 모델들이 겉옷은 물론 아슬아슬한 속옷을 입고 화면을 누비는 동안 짙은 색 피부를 가진 사람이 의류모델을 하는 것을 우리는 단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나? 간장 게장이나 김치를 파는 홈쇼핑에서는 그나마 한국인 쇼호스트가 한국인 광고모델을 옆에 두고 물건을 팔고 있지만 이제 웬만한 의류는 물론 일상생활 용품을 파는 홈쇼핑마저 얼굴이 하얀 모델들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 글로벌화되고 국제화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아니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져 있는 ‘흰 것은 아름답고 어두운 것은 추하다’라는 편견의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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