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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ug 11. 2022

영연방대회를 치르며 드러났던 인도의 안타까운 현실

2010년 인도에서 열렸던 영연방대회의 뒷 이야기...

[# 1] 과거 영국 식민지 국가들의 작은 올림픽, 영연방대회     


2022년 7월 28일부터 8월 8일까지 영국의 버밍햄에서 제22차 영연방대회가 개최되었다. 영국 및 과거 영국 식민지 국가들이 참여하는 체육행사로서 올림픽 다음으로 큰 국제적인 체육행사이다. 실제 영연방 회원국은 56개국이지만, 영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 독립된 팀으로 참여하고 포클랜드 제도(Falkland Islands) 등 영국의 작은 해외영토들도 독자적인 팀을 꾸려서 참여하는 까닭에 2022년 영연방대회 참여팀은 총 72개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역시 2022년 영연방 대회에 참여하여 금메달 22개, 은메달 16개, 동메달 23개를 따면서 호주, 잉글랜드, 캐나다에 이어 총 메달 합계 기준으로 4위를 차지했다. 

   

2022년 영연방대회에서는 인도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메달밭인 레슬링과 역도에서의 성적이 좋았다. 한편, 인도 국민들을 감동으로 몰아넣은 멋진 경기는 폐막 하루 전에 펼쳐진 3,000미터 남자 장애물 달리기에서 나왔다. 그동안 장거리 달리기를 줄곧 석권해오던 케냐 선수들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을 펼친 인도의 아비나슈 사블레(Avinash Sable) 선수가 값진 은메달을 따면서 인도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 누구도 못한 예상 못한 깜짝 메달을 따내면서 단숨에 ‘떠오르는 육상 스타’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 것이다.


4년마다 열리는 ‘작은 올림픽’이라 불리는 이 대회는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돌아가면서 개최한다. 2010년 대회는 인도의 뉴델리에서 개최되었다. 1930년 첫 대회가 캐나다의 해밀턴에서 개최된 이후 아시아 도시로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가 1998년에 제16차 대회를 개최한 것이 유일했었다. 그 후 12년 만에 서아시아의 맹주이자 과거 영국 식민 지중에서 최대 인구 대국인 인도에서 영연방대회가 개최된 것이다. 인도 입장에서도 인도 독립 이래 이렇게까지 큰 규모의 국제대회는 처음 유치하고 개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회가 모두 마감된 후 ‘기대에 매우 못 미치는 대회였다’라는 전반적인 평가를 받았다. 


왜 그랬을까?     


[# 2] 시작부터 삐걱거렸던 2010년 영연방대회 준비과정...


1990년과 1994년의 영연방대회 개최 후보지 경쟁에 나섰다가 연거푸 쓴잔을 마셨던 인도는 2003년 자메이카에서 개최된 영연방대회 연합(Commonwealth Games Federation) 총회에서 초대 대회 개최지인 캐나다인 해밀턴을 제치고 2010년 영연방대회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인도인민당(BJP)이 말레이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아시아에서 영연방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을 엄청난 외교적 성과라고 자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런데, 그 이듬해인 2004년 봄에 치러진 총선에서 인도 의회당(Congress Party)가 다시 정권을 되찾고 대회 개최에 필요한 금액 규모 등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조금 바뀌게 된다. 


일단, 전체 인구 세 명중 한 명이 빈곤층인 세계에서 가장 큰 빈곤국가인 인도에서 수십억 달러나 되는 돈을 쏟아부어가면서 빈곤퇴치와는 상관없는 거대한 운동장, 기념 조형물, 선수들이 묵을 호화 선수촌을 짓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인지를 묻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게 된다. 인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중 한 명인 위프로(Wipro)의 창업자 아짐 프렘지(Azim Premji) 역시 인도의 유력 일간지인 The Times of India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인도와 같은 빈곤국가에서 이런 체육행사에 수십억 달러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우선순위이다’라고 비판하였다. 


실제로 뉴델리에 거주하는 빈민층들에게 2010 영연방대회는 악몽이었다. 글로벌 NGO인 The Housing and Land Rights Network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 대회 개최를 위해 뉴델리에서 최소 20만 명이나 되는 빈민층들이 자신들이 살던 집에서 내쫓겨 강제이주를 당해야만 했다. 정부 재정이 부족한 인도 정부에서 이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었을 리가 만무하다. 경기가 펼쳐지는 경기장 일대에 ‘구걸 금지 지역’이라는 것이 선포되었고 대회 개막일이 다가오자 마음이 다급해진 뉴델리 경찰은 1959년에 만들어진 ‘구걸금지법’이라는 법을 근거로 노숙인들을 대거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건설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이 열악한 숙소에서 먹고자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았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채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고된 노동 현장에서 혹사당한 사례도 나왔다. 특히, 어린이들에 대한 노동착취 현장이 CNN을 통해 전 세계로 방송되면서 빈곤하고 비참한 이미지를 벗고자 애썼던 인도의 노력에 그야말로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게 된다. 이쯤 되자 인도 국내는 물론 영국, 호주를 포함한 국외에서도 2010년 영연방대회를 보이콧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에 이른다.


[# 3] 그래도 어찌어찌 대회는 개막되었고...


그래도 어찌어찌 대회는 개막되었다. 하지만 우여곡절과 논란은 개막일까지 멈추지 않았다. 당초 2만 2천 명가량으로 구성되었던 자원봉사자들 중 거의 절반 가량이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들은 대회조직위원회의 무성의와 홀대가 참을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지만 중간에 사라진 자원봉사자의 일부는 대회조직위원회로부터 티셔츠를 포함한 물품만 지급받고 그야말로 깜쪽같이 먹튀하였다.


개막일을 불과 며칠 앞둔 9월 21일에는 주 경기장인 자와할랄 네루 경기장에 건설 중이던 육교가 폭삭 내려앉는 사건이 발생했고 2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중경상을 당했다. 국내외 언론들은 2003년에 개최국으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 정부가 차일피일 대회 준비를 미루면서 2008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대회 준비에 나선 것에 주목했다. 준비 부족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는데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뉴델리 주지사는 ‘그 육교는 선수들이 아니라 관중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물인데 왜 이리도 호들갑이냐?’라는 답변을 내놓아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선수가 아닌 관중들은 죽거나 다쳐도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


이미 2010년 7월을 전후하여 인도 정부 내 독립 감사기구인 중앙감사위원회(Central Vigilance Commission)가 공사 가격 부풀리기, 공사 관리감독 소홀, 무자격자에 대한 각종 공사 계약 등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2달러에 불과한 화장실 휴지를 자그마치 80달러에 사들이고, 98달러짜리 거울을 220달러를 주고 사들이는 등 가격 부풀리기의 수준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이쯤 되자 인도 내에서도 대회조직위원회와 위원장인 수레쉬 칼마디(Suresh Kalmadi)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다. 결국 당시 총리였던 만모한 싱(Manmohan Singh)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대회가 개막하기도 전인 2010년 8월 ‘부정을 저지른 공무원에게는 엄한 처벌을 내리겠다’라는 약속을 해야만 했다.


10월 초에 개최된 개막식조차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신 왕세자인 찰스 왕세자가 개막식에 참석하게 되자 인도인들은 내심 불만스러웠다. 축사를 하러 대회조직위원회 위원장인 수레쉬 칼마디가 단상에 오르자 경기장에 모여있던 수만 명의 관중이 일제히 야유를 보내면서 개막식 분위기는 그야말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결국 그는 이듬해인 2011년 부정부패를 포함한 다양한 혐의로 체포되어 약 10개월간 구치소 생활을 하고 보석으로 풀려난다. 하지만 12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그에 대한 재판은 열리지 않고 있다. 


한편, 미숙한 경기 운영도 여기저기에서 드러났다. 티켓이 수만 장 팔려나갔다는 조직위원회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회 기간 내내 경기장은 거의 대부분 텅 비었고, 경기장 근처에서 코브라가 발견되었다는 소식, 대회에 항의하는 NGO들의 항의 시위 소식, 럭비 경기장에 설치된 전광판이 무너졌다는 소식, 수영장에서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단체로 복통을 호소했다는 소식만이 국내외 뉴스를 채웠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부실이었다.


[# 4] 이게 바로 인도식 일처리 방식...


인도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은 인도인들의 느긋하다 못해 속 터지는 일처리 속도에 기겁하곤 한다. 제 아무리 중요한 행사라 하더라도 제시간에 행사 준비가 완료되어 정시에 행사가 시작되는 것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원래 예정된 시간을 다소 넘기더라도 행사는 어찌어찌 개최되곤 한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러 사람들이 달려들어 일을 마무리하는 ‘인도스러운’ 일처리 습관 때문이다. 중요한 부분과 눈에 보이는 부분만 얼렁뚱땅 마무리되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대강 생략될 거라는 거는 각오해야 한다.


2010년 영연방대회도 마찬가지였다. 인도인들의 기준에는 대회 개막에 맞춰 개통하기로 했던 지하철이 조금 늦게 개통되었지만 여하튼 개통되기는 하였으니 ‘큰 문제가 아니었다’. 주경기장 내 육교가 무너지기는 했지만 노동자들을 동원해서 개막 직전에 보수공사를 마치고 육교를 다시 설치했으니 이 또한 ‘큰 문제가 아니었다’. 위생과 안전에 대해서 유난히도 깔끔을 떠는 선진국의 기준에는 다소 부족했겠지만 인도인들의 눈에는 그만하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선수들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화장실 때문에 분통이 터졌겠지만 전통적으로 불가촉천민들이나 담당하는 화장실 공사와 같은 ‘더러운 일’이 촉박한 기간 동안 꼼꼼하게 마무리되리라 기대한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선진국의 눈으로 보자면 2010년 영연방대회는 인도가 가진 부패와 무능 그리고 비효율과 인권유린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인도인들의 눈으로 보자면 일어날 만한 부정부패 사건과 일어날 만한 각종 사건사고가 일어난 ‘무난하게 개최된 대회’였을 것이다. 대회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을 신랄하게 비판한 서양 언론과 선수들의 호들갑을 마주하고서도 ‘이게 바로 인도식 일처리 방식이야’라며 어깨 한번 으쓱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선진국의 사고방식과 인도 특유의 사고방식이 충돌한 전형적인 사건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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