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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Oct 03. 2022

몬순이 끝나고 난 뒤...

인도의 진짜 재무부 장관은 누구인가? 몬순과 디왈리로 알아보는 인도

[# 1] 인도의 진정한 재무부 장관은 사람이 아니다?


현재 인도의 재무부 장관은 니르말라 시타라만(Nirmala Sitharaman)이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의 브라만 계급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영국으로 유학가게 된 남편을 따라 오랫동안 런던에서 거주했다. 이후 인도로 귀국하여 2006년 47세의 나이에 현재의 집권 여당인 인도인민당(BJP)에 입당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BJP 대변인과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후 2019년 세계 6위의 거대 경제를 이끄는 재무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총리를 겸직하며 잠시 재무부 장관을 겸직한 인디라 간디 이후로 2번째 여성 재무부 장관으로서 코로나 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세계적인 공급망 불안 사태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무난하게 인도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보통의 인도 사람들에게 ‘인도의 진짜 재무부 장관은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질문의 의도를 곧바로 눈치채고는 씨익 웃으면서 ‘몬순’이 진정한 인도의 재무부 장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몬순은 원래 특정한 계절에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계절풍을 말하는 단어이지만 인도와 동남아 지역에서는 여름에 이러한 계절풍에 동반하여 발생하는 우기(雨期)를 몬순이라고 부르며, 때에 따라서는 이러한 우기에 내리는 비를 가리키기도 한다. 사람도 아닌 날씨가 인도의 진정한 재무부 장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 2] 2009년의 극심한 가뭄, 이로 인해 드러난 인도 경제의 취약성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도의 산업구조 특히 농업 및 농산물 유통과 같은 농업 유관 분야가 인도 경제 전체에서 갖는 중요성부터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농업 및 농업 유관 산업은 인도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약 20% 비중을 차지하지만 전체 노동자의 43%를 고용하고 있다. 또한, 농업 또는 유관산업에 생계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가구수가 인도 전체 가구 10가구 중 7가구가 된다는 추산도 있을 정도이니, 농민들의 소비 심리와 정치적 의견이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자, 그렇다면 농사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단연코 물이다. 인도에서는 보통 6월부터 9월까지의 4개월 동안을 몬순 기간이라고 보는데, 이 기간 중 평균 강수량은 약 890mm 수준이다. 1년 동안 내리는 비의 약 70%가량이 시기에 집중되며, 이때 내리는 비는 인도 경제 특히 인도 농업에게는 그야말로 귀중한 생명수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치수 시설을 갖춘 농지는 인도 전체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한번 가뭄이 들었다 하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인도의 농업 수확량 더 나아가 인도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상당히 크다.


실제로, 2009년에 인도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다. 연평균 강수량의 75% 불과한 비가 내렸던 1972년 이후 37년 만에 찾아온 극심한 가뭄이었는데, 특히 인도 북서부에는 평년 대비 약 2/3에 불과한 비가 내리면서 밀과 사탕수수를 포함한 농작물 수확량이 급감했다. 농업 수확량이 감소하자 인도 경제 여기저기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일단 밀, 쌀, 각종 야채를 포함한 밥상 물가가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일부 식료품은 불과 몇 달 사이에 20%가량 치솟았고 결국 2009년에 인도 전체의 소비자물가는 전년대비 12%나 올랐다. 아무리 개도국이라 하더라도 너무나도 높은 물가상승이었다. 


결국 시민들은 불만을 터뜨렸고,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프라납 무케르지(Pranab Mukherjee)는 ‘인도의 진짜 재무부 장관은 (본인이 아니라) 몬순이다(In India, monsoon is 'the real finance minister')’라고 변명 섞인 발언을 했다. 정부와 자신을 향하는 시민들의 불만을 피하기 위해 꺼낸 발언이었지만 인도 농업과 인도 경제 전체가 가진 취약점을 한 마디로 요약했다고 할 수 있겠다.




[# 3] 몬순이 끝나고 난 뒤...


낮 최고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어서는 맹렬한 더위에 사람들이 지쳐갈 때쯤이면 어느새 시간은 5월을 지나 6월로 향하고 하늘에서는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인도 농민들에게는 이때만큼 다행스럽고 행복한 시기가 없다. 하지만,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도시에 사는 시민들에게는 솔직히 몬순은 불편하고 힘든 시기이다. 빈번한 침수와 이로 인한 교통통제를 겪어야 하고 그렇지 않아도 나쁜 수질은 장맛비 직후에 더 나빠져서 피부가 민감한 사람은 샤워 후에 온몸이 빨갛게 부어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9월 말을 전후하여 몬순이 끝나면 농촌이고 도시고 상관없이 축제의 시간으로 접어든다. 빠르면 2월 하순부터 시작되는 무더위 그리고 4개월 가까이 계속된 장마가 끝나고 이제 일 년 중 그나마 견딜만한 4, 5개월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인도에서의 결혼식도 대부분 몬순이 끝난 가을부터 열리며, 힌두교에서 가장 큰 축제인 디왈리(Diwali)도 10월 말 또는 11월에 있다. 


디왈리는 힌두 음력으로 일곱 번째 달인 아스비나(Asvina)가 마무리된 후 여덟 번째 달인 카르티카(Kartika)의 초순에 닷새 동안 집과 힌두교 사원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이다. 미국에 추수감사절이 있고, 동양 문화권에 추석이 있다면 인도에는 디왈리가 있다고 할 정도로 온 가족이 한데 모여서 식사를 하고 불꽃놀이도 하며 파티를 즐긴다.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단 사탕과 후식도 등장해서 인도인들의 미각을 즐겁게 만든다.


디왈리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는데, 겨울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추수를 한 후 힌두 신화에 등장하는 부와 풍요의 신인 락슈미(Lakshmi)에게 행운을 기원하는 것이었다. 현대에 들어오면서 디왈리가 가진 이 두 번째 의미를 산업계가 놓치지 않고 기가 막히게 이용하기 시작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이 일제히 엄청난 할인에 나서서 인도인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고 가전제품 제조업체를 포함한 많은 수의 제조업체가 이 시기를 겨냥하여 신제품을 출시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인도의 가정들이 크고 작은 소비재는 물론이고 컴퓨터나 가전제품, 자동차와 같은 고가의 물건들을 이때 사들이면서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버금가는 엄청난 규모의 소비가 일어나게 된다. 품목에 따라 차이가 많지만 소비재의 경우 일 년 매출의 40%-60%가량이 디왈리를 전후한 몇 주 동안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는 유통업계 통설이 있을 정도이다.


농사가 풍년이었다면 디왈리 축제 때 이것저것 물건도 사들이고, 풍성한 음식으로 잔치도 열겠지만 몬순 시기에 강수량이 부족하여 농사를 망치게 되면 인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촌 인구들은 당장 디왈리 쇼핑 규모를 줄이게 되고 결국 제조업계와 유통업계도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결국 몬순 시기의 강수량에 따라 그해의 농작물 작황은 물론 농가의 연간 전체 소득이 결정되게 되고 이 것이 연말까지 이어지는 제조업 및 유통업의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인도의 몬순이야말로 인도의 진정한 재무장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 4] 인도가 쌀 수출을 제한한다면...


인도양에서 발생하여 6월 초에는 인도 남부를 7월 이후에는 인도 전역에 많은 비를 뿌리는 몬순은 인도인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자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너무 적은 양의 비가 내리면 극심한 가뭄과 흉작을 견뎌야 하고 조금만 비가 많이 오면 애써 가꾼 경작지가 모두 물에 잠기는 참혹한 수해는 물론 수배명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 수해를 겪어야 한다. 북서부의 펀잡이나 하리아나주와 같은 소수의 주를 제외하고는 관개시설과 치수 시설이 미비한 인도에서는 그야말로 인도 경제 성장을 쥐고 흔드는 존재이다. 그리고, 인도인들은 이러한 무자비하고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2022년에도 몬순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인도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2년 몬순 기간에는 연평균보다 약 6% 가량 많은 비가 내렸는데, 가뭄을 겪느니 비가 조금 많이 내린 것이 다행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정작 비가 많이 내려야 할 6월에는 비가 오지 않고 7월 중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면서 모내기할 시기를 놓친 쌀, 생육 기간을 놓친 목화, 대두, 사탕수수 그리고 대부분의 채소 가격이 올랐다.


지역적인 강수량 불균형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인도 내 주요 쌀 생산지인 북동부 및 남동부 지역에서는 예년보다 훨씬 적은 비가 내리면서 벼 파종 면적이 평년의 8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벌써부터 인도 내 주요 경제기관들은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확대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추세가 농작물 가격 상승으로 인해 더욱더 악화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게다가 세계 제1의 쌀 수출 국가인 인도의 쌀 작황이 나빠지게 되면 결국 인도는 쌀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밖에 없어 향후 세계 곡물 시장 불안정성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 쯤되면 이제 인도양의 몬순은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 곡물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존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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