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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pr 09. 2023

어떻게 인도는 크리켓을 완벽하게 지배하게 되었나?(2)

어떻게 인도는 크리켓을 완벽하게 지배하게 되었나(1)(https://brunch.co.kr/@hobiehojiedaddy/185)에서 이어집니다.




[# 4] 거대한 포식자의 등장... IPL


IPL의 출범과 그 성공을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2007년에 남아공에서 열린 세계 최초의 T20 방식의 크리켓 월드컵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애초에 T20 경기방식에 큰 관심이 없던 인도 크리켓협회는 2007년에 남아공에서 열리는 T20 크리켓 월드컵에 국가대표급 선수가 아닌 젊고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파견한다. 그저 ‘졌잘싸’하고 돌아오리라 예상한 이 선수들은 뜻밖에도 승승장구를 거듭한 것은 물론이고, 결승전에서 인도의 ‘철천지 원수’인 파키스탄을 맞아 박빙의 승부 끝에 극적으로 승리하여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젊은 선수들에게는 T20 대회가 일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기회였으니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싸운 덕분이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닷새씩 치러지던 지루한 경기방식이 아니라 3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폭발적인 에너지와 역동성을 내뿜는 새로운 경기 포맷에 인도 크리켓협회는 매료되게 된다. 그 이듬해 출범한 IPL이 세계 최초로 T20 방식을 채택한 프로페셔널 리그가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이러한 짧고 역동적인 경기방식은 TV 중계에도 딱 맞았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광고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2008년에 출범한 인도의 IPL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크리켓이라는 전통적인 스포츠를 크게 바꿨다. 일단, 종주국인 영국에서는 인기가 시들해진 크리켓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인도에서 세계적인 프로스포츠 리그로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적인 크리켓은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끼리 결성된 클럽을 기반으로 운영되던 일종의 친선경기였다. 과격한 신체접촉도 없어서 ‘젠틀맨스 게임(Gentleman's game)'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크리켓은 국가간 대항전(크리켓에서는 국가대항전을 Test Match라고 부름)과 4년마다 열리는 크리켓 월드컵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하지만 인도에서 출범한 IPL은 달랐다. 우선, 인도의 거대기업이나 유명 셀럽이 구단주인 10개의 팀이 엄청난 광고와 TV 중계료를 기반으로 리그를 구성했다. 10개의 구단은 나름대로 멋진 이름도 작명했고 귀에 쏙쏙 박히는 로고송도 만들었다. 팬덤은 금방 형성되었다. 2022년에는 향후 5년간의 방송 중계권이 무려 62억 달러(7조 4천억원)에 거래되기도 하였다. 수만명이 들어찬 거대한 스타디움에서는 수백발의 불꽃놀이가 펼쳐졌고, 경기 시작 전에는 미식축구에서나 볼 수 있던 치어리더들이 등장해서 섹시한 춤을 추었다. 보수적인 인도에서 그야말로 파격적인 엔터테인먼트가 탄생한 것이다. 그 덕분에 1년중 약 2달간 열리는 IPL은 시청자수만 해도 어림잡아 7억명에 달한다. 한마디로 인도가 전 세계에서 최초로 크리켓 리그를 완벽하게 상업화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각각의 스포츠 시장이 얼마나 큰지를 측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각 운동경기의 1 경기당 중계권료를 따져본다면 세계에서 가장 ‘돈이 되는 스포츠 리그’는 미국의 NFL(약 3,600만 달러)이고 두 번째가 바로 인도의 IPL이다. 경기당 중계권료가 약 1,510만 달러 수준인데, 이는 영국의 EPL(약 1,123만 달러), 미국의 MLB(957만 달러), NBA(약 212만 달러)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TV 중계권료, 각종 광고와 협찬, 선수와 구단이 부수적으로 얻는 홍보물품 판매수익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산업 하나가 인도에서 새롭게 창출된 것이다.


물론, ‘운동 경기를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시켰다’면서 상업화되어가는 인도의 크리켓 리그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인도에서 IPL이 열리는 약 2달 동안의 기간 동안 다른 나라에서는 크리켓 경기가 사실상 중단된다. 세계의 유명 크리켓 선수들 대부분은 IPL 소속이기 때문에 국가 대항전(test match)이 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크리켓 경기로 인해 발생하는 수입의 약 80% 가량이 인도 크리켓 경기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인도라는 나라가 세계 크리켓 공동체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너무 커졌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인도 크리켓위원회(BCCI)는 인도 IPL에서 출전중인 선수가 IPL에서 영구은퇴하지 않는 한 다른 나라의 프로리그에 출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력 좀 있다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인도 IPL로 향하고 있다. 인도의 IPL이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전세계 크리켓 커뮤니티의 상위포식자로 등장한 것이다.




[# 5] 크리켓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 IPL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 크리켓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일단, 인도는 물론 서남아에서의 크리켓의 인기는 더 높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008년 IPL 출범 이후 크리켓은 글래머러스하면서 다이나믹한 이미지까지 얻으면서 서남아시아의 젊은 층 사이에서 지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전통적 방식의 크리켓을 즐기던 기성세대들 역시 점차 IPL의 재미에 빠져들고 있다. 물론, 국가대항전 특히나 인도와 파키스탄 또는 영국과 호주 등 전통적인 라이벌끼리의 국가대항전에서는 아직도 엄청난 시청률이 기록되기도 한다. 지난 2015년 열린 인도와 파키스탄의 크리켓 월드컵 경기는 무려 10억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말이 10억명이지 전세계 인구 7명중 1명이 봤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약 25억명에 달하는 크리켓 시청자 숫자도 서남아지역 인구 증가에 힘입어 더욱더 늘어날 것이다.


둘째로, 이제 세계 크리켓 산업은 누가 움직이게 될까? 이제 권력 중심이 영국을 떠나 완벽하게 인도로 옮겨왔다는 데에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그리고 그 권력이동의 이면에는 인도의 재벌과 셀럽을 중심으로 한 엄청난 자금력 그리고 T20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재빠르게 받아들인 인도인들의 사업수완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크리켓을 즐겨왔던 남아공과 호주 그리고 카리브해 연안국가들은 물론 UAE에서도 T20 방식의 리그 출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T20 방식의 크리켓 리그가 인도에서 거둔 엄청난 경제적 성공에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식축구와 야구의 나라인 미국에서도 2024년 T20 방식의 크리켓 월드컵이 열릴 예정이다. 여기서 일정 수준의 인기몰이에 성공한다면, 2028년 LA 올림픽에서의 정식종목 채택을 노리는 세계 크리켓 위원회(International Cricket Council)의 노력이 성공하리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젠 올림픽에서도 크리켓 경기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빠르게 바뀌고 있는 크리켓 환경에 인도 IPL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엄청난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면 대응하는 방법은 쉽다. 경쟁자를 사들이면 된다. 그것도 몽땅 다 사들이면 된다. 실제로, 남아공에서 출범하는 T20 크리켓 리그의 팀들을 모두 인디언 IPL 리그의 구단주들이 사들였다. 경쟁자가 생겨나서 나의 시장을 잠식하기 전에 후한 값을 쳐주고 경쟁자를 미리 통째로 사버린 것이다!!! 수백년전에 만들어진 ‘지루한 운동 경기’를 인도 땅에서 화려하게 부활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다 못해 아예 경쟁자를 잡아먹어버리는 인도인들의 사업 수완만큼은 인정해줄 수 밖에 없다. ///  


* 이글은 일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https://www.ddanzi.com/ddanziNews/768880688)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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