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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pr 08. 2023

어떻게 인도는 크리켓을 완벽하게 지배하게 되었나?(1)

[# 1] 뭔가 ‘이그조틱하고 간지나는’ 운동 경기...


자, 이제부터 프로페셔널 스포츠 리그 하나를 설명해볼테니 어떤 리그인지 맞춰보시기 바란다. 총 10개의 팀으로 구성된 이 리그는 1년에 약 2달 반 정도의 기간 동안 약 70개 정도의 게임을 치룬다. TV를 통해 중계되는데 시청자수는 대략 7억명이다. 10개 팀이라는 데에서 우리나라 프로야구를 떠올렸던 분들은 게임 숫자와 시청자수를 듣고는 ‘뭥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단 우리나라 프로야구리그는 정답이 아니다.(^_^;) 이 리그는 2022년 기준 브랜드 가치가 약 110억 달러(약 13조원)에 달하며, 2022년에는 향후 5년간 TV 중계료가 무려 62억 달러(7조 4천억원)에 거래되기도 하였다. 어느 나라에 소재하는 어떤 프로페셔널 리그일까? 영국의 EPL? 미국의 NBA 아니면 MLB 아니면 NHL?


땡땡땡!!! 다 틀렸다. 나라도 틀렸고 운동 경기도 틀렸다.


정답은 바로 인도의 크리켓 리그인 ‘인디언 프리미어 리그(Indian Premier League(IPL))’이다. 2023년에는 3월 31일에 시즌 개막 경기가 열렸고, 이후 5월말까지 약 2달에 이르는 대장정이 계속된다.



필자가 가끔 집앞의 공원에 산책을 나가거나 지방출장을 가게 되면 빠지지 않고 보게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인도의 국민스포츠인 크리켓을 즐기는 인도인들의 모습이다. 조금이라도 공을 치고 달릴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어김없이 누군가는 크리켓을 즐기고 있다. 정말 ‘아따, 인도 사람들 징허게 크리켓 좋아허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운동 경기는 몇몇 국가에서는 그야말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도대체 그런 스포츠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른다. 크리켓도 마찬가지이다. 1600년대 영국에서 만들어진 크리켓은 현대 야구의 할아버지 쯤 되는 스포츠이다. 수백년 동안 영국은 물론 다양한 영연방 국가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우리처럼 크리켓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그저 ‘영국 신사들이 즐기는 이그조틱(exotic)하고 간지나는, 그렇지만 경기 규칙은 이해하기 힘든 운동’이다. 수백년된 고성(古城)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는 초록색 잔디 위에서 하얀색 크리켓 셔츠를 빼입은 파란눈과 금발의 유럽인이 즐기는 그런 운동 말이다.

초록색 잔디위에서 하얀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펼치는 이그조틱하고 간지나는 경기... 바로 크리켓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크리켓도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이미지에 부합하는 운동일까? 최근 수년 동안 세계 크리켓 커뮤니티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거의 수백년이나 된 골동품 같은 운동이 어떻게 인도는 물론이고 서남아시아를 들었다 놨다하는 국제적인 스포츠로 변모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인도라는 이 가난한 나라가 전 세계 크리켓 커뮤니티를 쥐락펴락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인지 그 이야기를 좀 시작해보자.


[# 2] 야구와 같은 듯 다른 듯... 크리켓의 규칙


크리켓 경기를 얼핏 보면 우리 한국 사람들이 잘 아는 야구와 비슷하게 생겼다. 누군가는 공을 던지고 누군가는 공을 치고 있다. 공을 치는 사람 뒤에는 포수처럼 공을 잡으려는 사람도 엉거주춤 서 있고, 그 공을 잡으러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수비수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경기 규칙과 진행방식은 물론이고 선수들의 행동에도 야구와 다른 점도 꽤 많다. 일단, 야구는 9명이 경기하지만 크리켓은 야구의 투수에 해당하는 보울러(bowler), 타자에 해당하는 배츠맨(batsman), 포수에 해당하는 위켓키퍼(wicket keeper)를 포함하여 11명이 경기한다. 야구에서의 내야와 투수 마운드에 해당하는 지역을 크리켓에서는 핏치(pitch)라고 부르는데, 다이아몬드 모양이 아니고 가로가 약 22미터, 폭은 3미터가 넘는 직사각형 모양이다. 양쪽 끝에는 야구의 베이스에 해당하는 위켓(wicket)이 총 2개가 설치되어 있다.


야구와 달리 크리켓에서는 보울러가 전력질주로 달려와서 공을 던지는데, 이 공이 위켓에 닿기 전에 배츠맨이 쳐내야만 한다. 야구는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만들어진 경기장에서 앞쪽으로만 공을 쳐내야 하지만 크리켓의 경우 전후좌우 구별없이 아무 방향이나 공을 쳐내도 된다. 즉, 야구에서와 같은 파울이 없다. 게다가 야구에서는 3명만 아웃시키면 공격과 수비가 바뀌지만 크리켓에서는 무려 10명의 배츠맨을 아웃시켜야만 공수 교대가 된다. 야구와는 달리 한명의 배츠맨은 아웃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공을 치는데다가 10명이나 되는 배츠맨을 아웃시키여야하는 이닝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다보니 심한 경우에는 몇 백점까지 점수가 나게 되고 경기 시간도 매우 길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며칠 동안 승부를 겨루기도 한다.


하지만, 크리켓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의 칼날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세월 좋게 자리잡고 앉아서 며칠씩 치러지는 경기(전통적인 크리켓 경기에서는 티타임(Tea Time)도 있었다. 관중이 아닌 선수들의 티타임 말이다!!!)를 들여다보고 앉아 있을 팬들은 점점 사라졌다. 줄어드는 팬층을 확보하기 위해 경기 규칙을 다양하게 바꾸려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닷새가 아니라 하루안에 경기를 마무리하는 새로운 규칙은 1971년에 처음 선을 보였지만 전통적인(이라고 쓰고 ‘매우 지루하게 진행되는’ 이라고 읽는) 규칙을 따르는 5일짜리 경기는 1980년대와 90년대까지도 주류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10명의 배츠맨을 아웃시키는 1인닝을 각 팀이 딱 한번씩 치루는 방식(T20 방식이라고 부름)이 대세로 자리잡게 된다. 경기시간도 야구경기보다도 짧은 3시간 내외로 줄어들면서 TV 중계에도 딱 맞게 최적화된 경기 방식이 탄생한 것이다.


[# 3] 현대 야구의 할아버지격인 크리켓과 사랑에 빠진 인도


인도에 크리켓이 처음 전파된 것은 인도에 주재한 동인도회사 직원들과 영국 군인들이 크리켓을 즐기기 시작하면서부터인데, 공식적으로 기록된 인도에서의 첫 크리켓 경기는 1751년에 열렸다. 크리켓은 식민지 피지배 민족이 지배민족과 동등하게 싸워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이후 1947년에 인도가 독립을 쟁취하고 영국인들이 떠난 후에도 크리켓은 인도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비싼 장비가 필요 없고 평평한 땅만 있으면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점도 크리켓의 인기에 한몫을 했다. 또한, 축구나 농구와는 달리 신체 접촉이 일어나지 않는 크리켓의 특성은 서로 다른 카스트 사이에서의 신체 접촉이 엄격하게 금지된 인도의 사회적 특성과도 잘 맞았다.      

현대 인도에서 크리켓과 관련하여 가장 큰 사건 2개를 꼽으라면 첫째는 1983년 영국에서 열린 크리켓 월드컵에서 인도가 우승한 일이고 둘째는 2008년 인도 크리켓 리그인 인디아 프리미어 리그(Indian Premier League)가 출범한 일이다. 나이가 조금만 지긋한 인도인들이라면 1983년 크리켓 월드컵 준결승에서 다른 나라도 아닌 자신들의 식민 종주국 영국을 꺾고 결승전에 오른 후 최종적으로는 우승컵까지 차지한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그 당시 우승의 주역이었던 인도 선수는 로저 비니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인도에 오래전에 정착한 스코틀랜드 혈통의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잉글랜드를 때려잡는데 스코틀랜드 후손을 써먹었으니 인도식의 ‘이이제이(以夷伐夷)’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그는 인도는 물론 전세계 크리켓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인도 크리켓협회(Board of Control for Cricket in India)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1980년대의 인도는 아직도 빈곤에 허덕이는 신생독립국이었고, 인도의 경제적인 부흥은 그로부터 약 10년뒤인 1990년대에서야 본격화되었다. 하지만, 많은 인도인들에게 1983년의 크리켓 월드컵 우승은 ‘식민종주국 영국에게 커다란 빅엿을 먹인’ 사건 혹은 새롭고 자신감에 찬 독립국 인도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1987년 인도는 다음번 크리켓 월드컵을 개최한다. 영국 이외의 국가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크리켓 월드컵이었다. 이쯤 되니 인도인들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그야말로 크리켓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눴다고 해야겠다. 그렇다면 그 이후로 인도에서 크리켓의 열기는 식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열기가 식기는커녕 이제는 인도가 전 세계 크리켓의 흐름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등극하게 된다. 바로 인디언 프리미어 리그(IPL)의 등장이다.///




* "어떻게 인도는 크리켓을 완벽하게 지배하게 되었나?(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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