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적응 꿀팁 (5) : 수학

의외로 학생들이 수업에 잘 적응 못하는 과목...

* '국제학교에 적응하는 꿀팁 (4) : 역사(하)' 편에서 이어집니다.


[# 1] "아빠. 그렇게 말하지 마.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


첫째 딸 호비가 중학교 1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호비가 수학 시간이 재미있었다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학 공책을 꺼내 보여줬는데, 2개 페이지에 걸쳐서 직선 아홉 개만 달랑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직선의 평행과 직교에 대한 기초적인 공리를 설명하는 수업이었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서 내가 다시 한번 9개의 직선을 그려보았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그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파리에서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는 한 과목의 수업이 보통 90분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간단한 공리를 설명하는데 90분을 다 썼다는 거였다. 직선 아홉 개에 90분이 지났으니 10분에 한 개 꼴로 직선을 그린 셈이었다. 살짝 어이가 없기도 하고 장난기도 발동해서 아이에게 농담을 던졌다. "네가 다니는 학교가 얼마나 비싼 사립학교인데... 수업 시간 90분 내내 직선 아홉 개만 그린 거야?"


그러자 아이가 정색을 하며 되받아쳤다.


"아빠. 그렇게 말하지 마.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




단순히 직선 9개만 그린 건 물론 아니었다. 직선이란 것의 성질은 어떠한 것인지, 평행한다는 것, 직교한다는 것의 성질이 무엇인지를 선생님이 꼼꼼히 설명하고, 그림으로 그려가며 설명해주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받았던 한국식 수학 수업과 다를 바가 없었다.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각각의 공리에 대해서 왜 그런 공리들이 성립하는지를 아이들끼리 조를 짜서 서로 토론하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직선 9개를 종이에 그리고, 선생님은 설명하고, 학생들은 토론하다 보니 90분이 쏜살같이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호비는 그 토론과 논증의 시간을 즐겁게 즐긴 것이다.


고작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직선 몇 개를 종이 위에 그어놓고 토론을 벌였는데 얼마나 수준 높은 토론을 벌였을까?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일이 호비의 수학 수업과 관련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은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한국이었다면 5분 만에 선생님이 개념 설명하고는 "자. 다 이해했지? 연습문제 풀자"로 넘어갔을 가장 간단한 문제들을 학생들끼리 토론하고 설득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한국처럼 후다닥 '진도를 빼는' 수업이 없었다. 설명하고, 토론하고, 학생들이 이해할 때까지 질문받고 답변하는 수업방식이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고작 서너 개의 문제(물론, 고등학교로 올라오니 숙제가 많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10여 개에 불과하다)를 숙제로 내주는 게 고작이었다. 대신 학교 수업의 대부분은 기초적인 개념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질문하고, 서로 토론하는데 할애한다.




[# 2] 아주 좋아하거나 아주 싫어하거나...


사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에 재학하다가 국제학교 중고등학교로 전학 온 학생들 대부분은 수학 시간에 거의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대학 입학할 때까지 근의 공식만 일만 번을 풀어제낀다는 우리나라 수학 학원에서 훈련받은 아이들이 왜 어려움을 겪겠는가? 하지만, 의외로 수학 수업을 즐기지 못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


바로, 토론하고, 논증하고 심지어 소그룹으로 나뉘어 서로 수학 문제 풀이 방법을 토론하는 수업 방식에 익숙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면 선생님이나 학원 강사가 오분만에 개념을 설명한 후 연습문제를 수십 개 풀어도 시원치 않았을 문제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 학생들 중 일부는 지루해하거나 또는 (영어나 역사 시간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져서) 후다닥 문제를 혼자서 풀고는 큰 목소리로 자랑스럽게 답을 외친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풀이와 토론 과정에 동참하지 않다가 정답을 단말마처럼 외치는 한국 학생들에게 대놓고 경고한다. '빨리 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라면서 말이다. 그럼 이제 한국 학생들은 화가 나고 답답해진다. 심한 경우에는 '선생님이 한국 학생들을 싫어하시나? 선생님이 인종차별주의자인가?'라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더 심해지면 수학선생님과의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도 가끔이지만 발생하게 된다.


국제학교의 수학 선생님들은 기본적인 개념을 같이 이해하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다. 수학에 뛰어난 학생들이 좀 더 어려운 문제를 풀며 실력을 뽐내고 싶어하면 수학과 관련된 다양한 학내 클럽에 가입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그리고, 그러한 클럽에서는 학생들이 얼마든지 자기 실력 자랑을 해도 뭐라고 나무라지 않는다. 정규 교과과정의 수학과 클럽 활동으로의 수학이 정확하게 나눠져 있는 것이다.




얼마 후에 각 과목별로 국제학교에 적응하기 위해서 한국 학생들이 준비해야 할 구체적인 꿀팁을 쓸 예정이다. 하지만, 국제학교에서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다고 딱히 조언할 내용이 없다. 오히려, 느리고 답답하게 진행되는 수학 교과과정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마인드 컨트롤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른다.(^_^;)


그리고, 수학, 아니 모든 학문을 대하는 자세를 한국 학교와는 조금 다르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다. 바로, 정답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그 정답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학문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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