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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ug 12. 2023

나에게 아이돌 (이름을 가진) 친구가 생겼어요

갑자기 '소미', '은비', '유진', '윤진'이가 내 친구가 되었다

[# 1] 나의 외모를 바꾸고 싶어요...


한국으로 오랜만에 본국휴가를 들어가면서 잠시 머물 임시숙소를 강남역 근처에 마련했다. 이런저런 일을 보러 강남역 근처를 걸어 다니다 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바로 얼굴에 각종 붕대나 밴드를 감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강남이 워낙에 성형수술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 그러려니 했지만 좀 지나치게 많다 싶을 정도였다.


어떤 때는 커플로 보이는 젊은 남성과 여성이 모두 얼굴에 붕대를 칭칭 동여매고는 편안한 복장으로 강남대로를 걷고 있는 모습도 목격했다.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두 사람 모두 외국 사람이었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성형 수술 실력 덕분에 이제는 젊은 외국인들도 커플끼리 성형수술을 위해 즐겨 찾는 나라가 된 것이다.


'신체발부는 부모님이 물려주셨으니 감히 손대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 이라는 수백 년 묵은 고리타분한 이야기 꺼내서 꼰대짓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누군가를 누군가답게 구별하는 가장 첫 번째 특징이라면 바로 그 사람의 외모일 텐데, 그런 외모를 이미 바꿨거나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 그런 사회가 되었다는 게 새삼스럽게 낯설게 느껴졌을 뿐이다. 내가 아닌 다른 나로 재탄생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그리고 외모를 바꿈으로써 또 다른 나로 재탄생(했다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내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사회 말이다.




[# 2] 나의 이름을 바꾸고 싶어요...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가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여동생도 식구들을 데리고 잠시 내려왔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중년층에서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개명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동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여성일수록 자신의 '촌스러운' 이름을 재판까지 가면서 적극적으로 개명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지어주신 투박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이름들을 꾹 참고 살다가 50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예쁘고 세련되게 바꾸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이야기였다.


여동생이 개명을 통해 이름을 바꾼 자신의 친구나 선배들 몇 명을 언급했는데, 친숙했던 이름들을 모두 멋진 새 이름을 바꿨다. 심지어 요새 유행하는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의 이름인 '소미', '은비', '유진', '윤진'으로 이름을 바꾼 경우도 있었다. 아직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옛스러운' 이름을 바꾸지 않고 있는 여동생은 "내가 이래 봬도 아이돌을 친구로 둔 사람이야"라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우리 세대 여성의 이름은 '진선미정숙현' 이렇게 여섯 글자만 있으면 다 만들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진선이, 진숙이, 선미, 선정이, 미진이, 미선이, 미정이, 미현이, 정숙이, 현정이, 현숙이, 현미, 미숙이... 내 아내도, 나의 여동생도 저 여섯 글자 중 하나가 이름에 들어있다. 그런 이름을 갖고 평범하고 무탈하게 잘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 50을 넘어선 사람들에게도 그런 평범한 이름이 아닌 상큼하고 세련된 이름이 필요한 그런 시대가 되었나 보다. 


얼굴을 뜯어고치고 부산스럽게 개명재판을 해서 이름을 바꾸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자면야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좀 들었다. 수술의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과 재판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견뎌서라도 바꿔야 할만큼 자기의 외모와 이름이 싫다면 바꾸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럴 용기도 부지런함도 없는 나로서는 지금까지의 내 외모, 지금까지의 내 이름이 아니라 새로운 내 외모, 새로운 내 이름, 더 나아가 '새로워진 나'로 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램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그들의 용기가 부러울 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호비와 호지의 이름에도 위의 여섯 글자 중 하나가 각각 들어있다. 호비와 호지도 나중에 나와 내 아내가 죽고 대충 50살쯤 먹고 나서 자신들의 이름이 촌스럽다고 개명재판을 신청하려나? 만약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떤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려나? '윤진'이나 '은비', '소미'나 '유진' 같은 우리나라 아이돌 이름들이 한바탕 유행했으니 이제는 외국 출신 아이돌 이름으로 바꾸려나? '카즈하', '사쿠라', '민니'... 아니면 '슈화'나 '레이'로 바꾸려나? 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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