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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pr 19. 2021

꼰대 테스트 : 빈칸에 알맞은 부사를 넣으세요

문제 : 우리는 인생을 _ _ _ _ 살아야 한다.

자... 아주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당신의 '꼰대력'을 테스트해 드리고자 한다. 문제도 딱 한 문제다.


'우리는 인생을 _ _ _ _ 살아야 한다.'에 알맞은 부사를 넣는다면 무슨 말을 넣어야 할까?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1) 만약 당신이 '열심히'라는 부사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면 당신은 두세 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분명히 빈칸이 네 칸인데, 세 글자 짜리 부사가 떠올랐다면 당신은 심각한 근시이거나, 아니면 글자 수에 상관없이 가장 어울리는 부사는 오로지 '열심히'라는 부사 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생은 그저 열심히 살아야 하는 고행길이여~~~)


돋보기를 맞추시거나 아니면 생각을 확 바꾸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꼰대력은 '10점 만점에 10점'에 쭈욱 머물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 만약 당신이 글자 수에 맞춰 떠올린 말들이 '성실하게', '끈기있게', '부지런히' 등등 ‘열심히’라는 부사어의 사촌동생들이라면? 음...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부모님은 우등상은 못 받더라도 개근상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졸업까지 열두 개의 개근상을 받았다. 뭐, 딱히 자랑거리 아니라는 거는 말 안 해주셔도 잘 안다. 부모님 등쌀에 개근상 열두 개 받고 졸업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나 말고도 부지기수일 테니까.


발바닥에 생긴 티눈이 덧나서 걷지 못할 지경이어도, 위경련으로 병원에 당장 실려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일단 등교는 하고 나서, 조퇴 허락을 받고 병원에 가야만 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감기 몸살 따위는 학교를 결석할 수 있는 이유에 끼지도 못했다.


부모님 세대의 '성실 지상주의'는 나와 내 아내 세대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세월이 삼십 년이나 흘러서 많은 것이 좋아졌는데, 맞벌이 부부가 살아가기에는 2000년대도 녹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파도 당장 봐줄 사람이 없는 현실 속에서 아내는 '얘들아. 쓰러지더라도 학교에 가서 쓰러져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온 후 자주 듣게 된 부사어들도 많다. 나의 인생까지는 아니어도 회사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때로는 묻지 않아도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게 가르쳐주던 선배의 부사어들...


'좀 알아서' 해놔라... '부지런히' 안 챙기냐? '그때그때' 확인 했었어야지... '미리미리' 하라고 내가 말했어 안 했어? '눈치껏 좀' 처신해라...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라, 나는 개떡같이 말해도 너는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 '빠릿빠릿' 안 움직이냐? 등등등...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개근상을 강요했던 우리 부모님, 나와 내 아내는 당연히 꼰대이고, 저런 주옥같은 부사어를 나에게 쏟아부었던 직장 상사들도 모두 꼰대들이다. (혹시 저런 말들을 나도 하지는 않았는지 지금 가슴에 손 얹고 반성중이다.)


결론적으로, 당신이 '성실하게', '끈기있게', '부지런히', '꾸준하게' 등의 부사를 떠올렸다면 당신의 ‘꼰대력’도 꽤 높은 수준일 거 같다.




(3) 자 그렇다면, 나 자신을 '젊은 세대'로 빙의해서 저 빈칸에 알맞은 부사어를 넣어보자..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무슨 부사어를 넣고 싶으신가? 글자 수를 꼭 네 글자에 안 맞춰도 되니 자유롭게 떠올려보시기 바란다. 난 가족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저녁 식탁에서 말을 꺼내봤다. 가족들의 대답은... 약간... 엉뚱했다.


첫째 딸 호비 : 흠... ‘나를 위해'... 근데 좀 이기적인가? '배려하며'라고 해야 하나?

둘째 딸 호지 : '알차게'... 아니면 '테슬라 주식과 함께'? :)

나 : 당신 생각은 어때?

아내 : 응? 독!신!으!로!


아... 졌다. 우리 네 명중 가장 덜 꼰대스러운 사람은 아내였다.



p/s.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몇 년 전에 회사의 젊은 직원 한 명과 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개인적인 생각에) 가장 정답에 가까운 부사어를 그 직원으로부터 듣고는 그 솔직함과 당당함에 적잖이 놀란적이 있다. '저렇게 되바라지게 이야기해도 되나?'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가 퍼뜩, '아... 저 대답을 되바라지다고 생각하는거 자체가 꼰대스러운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젊은 직원이 말한 대답은 다름아닌 '행.복.하.게.' 였다.


너무나도 당연히 가장 먼저 나왔어야 할 부사어...

 

그 부사어가 우리의 입에서 나오기가 왜 이리도 힘든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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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Dmitry Vechorko on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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