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진 거라는데...
젊은 세대들만 세대차이를 느끼는 건 아니다. 40대 후반에서 50대로 넘어가는 나 같은 기성세대에게도 세상에는 세대차이를 느끼게 하는 일들 투성이다. 십 대인 두 딸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사무실에서 젊은 직원들과 일할 때마다, TV를 볼 때마다... 매일매일 느낀다.
세대차이를 느낄 때마다 젊은 세대들은 '이런 불합리한 일들을 앞으로 고쳐나가야지'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다짐이라도 하겠지만, 우리 같은 기성세대에게는 '에구... 내가 이렇게 세상에 뒤쳐져 있구나. 이걸 언제 따라잡나?'라는 살짝 서글픈 느낌뿐이다. 젊은 세대에게 세대차이는 극복해야 할 도전적 과제라면, 우리 같은 기성세대에게는 이미 정거장을 떠나버린 경기도행 광역버스 같은 느낌이랄까? 따라잡으려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브런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약 한 달 반 정도의 기간 동안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바로 세대차이이다. 내가 글을 쓰면서, 다른 브런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른 작가들과 (소심하게나마) 소통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세대차이를 느낀다.
일단, 젊은 브런치 작가들은 겉모습(?) 부터 세련되고 '힙'하다. 자기소개 사진은 어쩜 그렇게도 멋있게 잘 찍는지 연예인 프로필 사진 뺨칠 정도로 멋진 사진을 자신의 프로필란에 띄워 놓은 작가들이 많다. 사진 속 작가들의 미소는 또 어찌나 당당하고 멋진지... 부러울 뿐이다.
가끔은 사진보다 더 멋들어진,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멋진 일러스트나 자신의 필명을 예쁘게 적은 캘리그래피를 올려놓은 작가들도 많다.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게다가 많은 경우 작가 소개란에 인스타그램이 링크되어 있다. 역시 젊은 세대의 대세는 인스타인가 보다. 나 같은 기성세대들은 링크할 SNS 매체가 아예 없거나 있어봤자 교회 권사님과 같이 찍은 꽃 배경 사진과 산악회 동료들과 찍은 등산복 사진만 가득한 페이스북뿐인데 말이다.
둘째로, 젊은 브런치 작가들의 아이디어와 문체는 내가 보기에도 정말 세련되다. 통통 튀고 빠르게 읽히는 문체에 날카로운 감수성까지 더해져 있다. 거기에 사회의 부조리를 새로운 시각에서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나같은 중년 아저씨를 감탄하게 만든다. 반면,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 브런치 작가들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하나의 문장 자체도 만연체이고, 글의 길이도 길다. 글의 내용도 식상하다. 첫 문단만 읽어도 글의 내용이 다 가늠되는 글들이다. 한 마디로 재미가 없고 길고 지루해서 읽기가 싫다. 에휴, 재미없으면 짧게 쓰는 재주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재주도 없다.
인용하는 문헌(?)에서도 세대차이는 드러난다. '사서삼경의 무슨무슨 편을 보면...'으로 글이 시작한다면 그 글은 십중팔구 기성세대의 글이다. '라떼는 이랬는데...'라는 표현과 '과거형' 동사들이 많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오륙십 대의 글이다. 기성세대들은 일단 오래된(?) 책들을 인용하고 자신이 겪어온 경험을 풀어놓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면, 젊은 브런치 작가들은 동시대 작가들의 재기 발랄한 문장을 효과적으로 인용하고 또한 그 아이디어를 솜씨 있게 발전시킨다. 서글프지만 현실이 그렇다. 기성세대 브런치 작가들은 사람들도 '오래' 되었고, 인용하는 책들도 '오래' 되었고, 글 쓰는 방식도 ‘오래’되었다.
셋째로, 젊은 작가들은 솔직하고 대담한 주제를 선택해서 이야기를 잘도 풀어낸다. 취업 준비하며 겪은 일들, 회사 내에서의 갈등과 퇴사, 시댁과의 갈등, 자녀를 교육하며 겪은 지극히 개인적 경험뿐만 아니라, 나 같으면 눈치가 보여서 다루지 못할 민감한 문제들(임신과 출산, 자신 또는 가까운 가족의 정신적, 신체적 장애, 이러저러한 개인적 실패의 경험 등등)도 솔직하게 밝히고 글로 써서 공감과 연대를 한다.
나는 다른 작가들의 글도 즐겨 읽고 공감 버튼도 거리낌 없이 잘 누르고 때때로 댓글도 달곤 한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때때로 몹시 어려운 경험을 자세하게 쓴 글을 읽고 나면 솔직히 공감 버튼을 눌러도 될지를 고민하게 된다. 가벼운 주제에 대해 유쾌하게 쓰인 글이면 몰라도 개인적 어려움이나 고통스러운 경험을 묘사한 글에 '공감'버튼을 누른다는 것 자체가 왠지 모르겠지만 자꾸 망설여진다.
그래서, 남자/비장애인/기성세대/주택 소유자/4대보험 적용되는 회사의 정규직 직원인 나는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나와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이 쓴 글을 다 읽고서 한참을 고민한다... 나는 과연 이 버튼을 누를 자격이나 있는건가?... 나의 공감은 진솔한 공감인가?...
네 번째로 느끼는 점은, 의외로 다양하고 희귀한 경험을 한 젊은 브런치 작가들이 많다는 점이다. 브런치팀이 그런 작가들을 주로 뽑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특이하고 신박한 개인적 경험을 가진 작가는 물론이고, 어디 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를 여행하거나 심지어 몇 년간 살아본 젊은 작가들도 부지기수이다. 30대 중반에 이미 몇 개의 직장과 몇 개의 국가를 경험한 사람들이 브런치에는 널려 있다. 한 직장에 목매달고 죽기 살기로 치고받고 경쟁하며 한국에서 붙박이로 살아온 기성세대와 비교하면, 그런 젊은 작가들이 살아온 인생의 밀도와 축적한 감정의 농도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일까... 젊은 작가들은 브런치 내에서도 서로서로 소통을 정말 잘한다. 공동 매거진은 물론이고, 브런치 플랫폼 밖에서도 다양한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 정기적인 레터 발행 등 정말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잘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을 마케팅하는 데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어느 작가는 젊은 세대들의 감성을 '밉지 않은 관종 감성'이라고 칭하던데,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이러한 자유로움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에 비해 나를 포함한 소위 '기성세대' 작가들은 조금은 후줄근하다. 일단 프로필 사진부터 어정쩡하고(등산복이나 양복 입은 사진 아니라면 그나마 낙제는 면한 거다), 글감이나 아이디어도 그리 세련되지 못하다. 이런 걸 써도 될까 안 써야 할까를 엄청나게 고민하는 자기 검열을 마치고, (직장인인 경우) 회사 눈치를 보며 간신히 글을 쓴다. 그나마 그렇게 완성된 글은 '일기인지 에세이인지 구별도 안 되는 ‘그저 그런 글이다. 젊은 세대들의 말을 빌자면 '일기는 일기장에나 쓰셔'라는 핀잔 듣기에 딱 좋은 글이다.
다른 작가의 글을 읽고 적극적으로 공감하려 해도 망설여지기는 마찬가지다. 정말 마음에 드는 글을 읽고 공감한다는 댓글을 남기려다가도 글을 쓴 작가가 너무 젊은 작가이면 댓글은 물론 공감 버튼에서도 손을 떼곤 한다. 혹시라도 내 댓글을 보고는 '어우. 이 아저씨 주책이야.. 웬 오지랖..'이란 소리 들을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십 대의 두 딸을 키우면서, 20년 넘게 맞벌이하면서 나도 나름 겪고, 느끼고, 배운 게 많아서 젊은 세대와 공감하는 게 조금은 있다고 자부하지만, 괜히 한두 줄 공감 댓글을 어설프게 썼다가 지청구(?) 먹을까 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겠지'라고 생각하고 단념하는 것이다.
에휴... 다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내 글은 만연체이고 글 자체도 너무 길고 지루하다. 통통 튀는 느낌은 고사하고 퉁퉁 튕기는 느낌조차 없다. 그래도 최소한 공자왈 맹자왈 타령은 안 했으니 절반은 성공한 건가? 날카롭고 번득이는 감수성으로 무장하고 거리낌 없이 소통하고 감성을 공유하는 젊은 작가들이 부러울 뿐이다. 부러우면 진 거라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완패’했다.
젊은 브런치 작가님들... 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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