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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May 22. 2021

강의실에 울려 퍼진 'Impossible Dream'

도달하지 못할 꿈이라도...

대학교에 입학한 첫 번째 주...


단과대학에서 주최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신입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는 대형 강의실에 교수님 한분이 걸어 들어오셨다. 얼핏 보면 대학교 강의실보다는 연극무대에 더 어울릴 것 같은 훤칠하고 뚜렷한 이목구비에 환한 미소를 가진 교수님이셨다.


오리엔테이션은 한 시간 정도 진행된 거 같다. 너무 오래전이라 그분이 해주신 말씀(짧게 언급하셨던 본인 연애 경험만 빼고)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날, 그 시간에, 그 강의실에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노래 한곡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The Impossible Dream'...




깡촌에서 태어나 얼떨결에 ' 서울' 대학에 입학한 내가 변변한 뮤지컬 곡을   번이라도 들어나 봤겠는가? 하지만, 부드럽지만 웅장하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대형 강의실을 뭉게구름처럼 가득 채우는 멋진 바리톤 목소리에 단숨에 매료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만난 멋진 멜로디... 뭉클한 감동이었다.  곡이 The Man of La Mancha라는 뮤지컬에 나오는 너무나도 유명한 곡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가사가 적힌 종이가 모든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사를 읽어보니 왜 이런 곡을 신입생들에게 틀어주셨는지, 그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별에 도달할 수 없더라도 팔을 힘껏 뻗어보라는 가사였다. 고등학교라는 온실을 떠나 대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젊은이들에게, 그 교수님은 교과서에 적힌 작은 지식이 아니라, 평생 동안 기억할만한 큰 삶의 철학을 나누고 싶으셨던 거 같다.




그 이후로도 가끔 같은 과 동기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누군가 한 명은 꼭 그분이 들려주셨던 노래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 4년 내내 강의시간에 배운건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그 날만큼은 또렷이 기억난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은 모두 어색하고 쭈뼛쭈뼛했던 대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 다시 그 강의실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느끼곤 했다.


그때를 이야기하고 그 노래를 이야기하면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이 솟아나곤 했다. 어쩌면 그 시절의 즐거운 추억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님,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이루지 못할 꿈이라 하더라도 그 꿈을 향해 힘껏 달려보지 못한 채 현실에 타협하며 늙수그레하게 나이 먹어 버린 우리들 자신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세월은 빨랐고, 세상은 좁았다.


20여 년이 지난 후, 내가 다니던 회사의 경영자문으로 위촉되신 교수님은 일 년에 몇 번씩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사를 방문하셨다. 자문회의 실무를 맡아보던 나는 세월의 흔적을 피하지 못한 교수님의 얼굴을 뵐 때마다 조금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교수님은 수십 년 전 수백 명 학생 속에 섞여 있던 나를 당연히 기억 못 하셨다).


내가 파리지사로 발령받아 떠나기 전 그해의 마지막 경영자문회의가 끝난 날... 내가 20여 년 전 그 강의실에서 그 노래를 들었던 신입생 중 한 명이었다고 처음으로 밝히고 인사를 드렸다.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냐?’라며 반가워해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외국으로 떠나는 나에게 축하의 말씀을 건네는 교수님께 나도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 그날 저희들에게 좋은 노래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의 짧은 인사가 끝나자, 수십 년 전 신입생 환영회 때 내가 봤던 것과 똑같은 미소가 교수님 얼굴에 떠올랐다. 교수님도 내 인사가 무슨 의미였는지 금방 이해하신거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없었다. 나와 교수님이 서 있던 삭막하고 딱딱한 회의실에 다시 한번 그 노래가 가득 차올랐다. 




The Impossible Dream


To dream the impossible dream
To fight the unbeatable foe
To bear with unbearable sorrow
And to run where the brave dare not go


To right the unrightable wrong
And to love pure and chaste from afar
To try when your arms are too weary
To reach the unreachable star


This is my quest
To follow that star
No matter how hopeless
No matter how far


To fight for the right
Without question or pause
To be willing to march, march into Hell
For that Heavenly cause


And I know if I'll only be true
To this glorious quest
That my heart will lie peaceful and calm
When I'm laid to my rest


And the world will be better for this
That one man, scorned and covered with scars
Still strove with his last ounce of courage


To reach the unreachable
The unreachable
The unreachable star


And I'll always dream the impossible dream
Yes, and I'll reach the unreachable star




p.s. 교수님 성함은 적지 않았다. 신분이 밝혀지는 걸 원하시는지 아닌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 photo by Harry Cunningham on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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