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교실은 어디를 향하는가?
우리 가족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을 프랑스 파리에 살면서 3건의 큰 테러를 겪었다. 낭만과 사랑의 도시를 덮은 테러의 공포... 우리의 파리 생활이 테러 전과 테러 후에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만 기록해도 최소한 책 한 권은 나올 정도로 변화는 컸다. 하지만, 학부모 입장인 우리 부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테러, 특히 샤를리 엡도라는 언론사에 대한 테러(파리에서 일어난 연쇄 테러 중 가장 첫 번째 테러)를 대하는 프랑스 교육계와 학교의 대응이었다.
일단, 프랑스 교육계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프랑스 언론에서는 테러범들이 '액센트가 없는 깨끗한 불어로' 고함을 질렀다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말끔한 파리식 억양이 뭘 의미하는지는 자명했다. 비록 테러범들이 북아프리카 출신 아랍인 이민자의 자식이고 외모와 피부색도 토종 프랑스인과는 달랐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프랑스 교육을 받은 '뼛속까지 100% 프랑스인'이라는 점이었다. 프랑스 교육을 받은 프랑스 청년들이 다른 것도 아닌, 프랑스가 목숨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언론의 자유에 칼을 꽂은 것이었다.
프랑스의 공교육은 나폴레옹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유서가 깊다. 프랑스가 인류 문명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 바로 민주주의와 공교육 시스템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들의 교육 시스템을 자랑스러워하던 프랑스 교육계에게는 그야말로 핵폭탄급 사건이었던 것이다. 테러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호지는 말했다. "하루 종일 담임 선생님이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이셨어. 너무 슬프신가 봐."
하루가 멀다 하고 교육전문가들이 텔레비전에 등장해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그들은 물었다. 어쩌다가 프랑스 교육 시스템은 이런 자생적인 테러리스트들을 막아내지 못했나? 어떻게 하면 제2의 샤를리 엡도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학교 앞에 높은 바리케이드가 등장했고, 쉬지 않고 경찰들이 주변을 순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학교로부터 날아온 이메일의 내용이었다. 테러 직후 봄방학까지의 약 두 달의 기간 동안 (우리로 치면 '사회' 과목에 해당하는 시간에) 애초에 계획했던 교과과정 대신 '평화'와 '분쟁',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학교가 '진도를 나가지 않고 다른 것을 가르치겠다'고 일방적으로 학부모에게 통보한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유엔 인권헌장을 조사하고 리포트를 쓰라는 숙제가 주어졌고, 전 세계 분쟁지역과 분쟁의 원인을 조사하라는 숙제도 주어졌다. 아이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다. 학부모들은 학교의 결정을 이해하고 호응했다. 왜 진도를 나가지 않느냐고 항의했다는 학부모도 만나지 못했다.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났을 때 과연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프랑스 교육계는 고민했고 학교는 실천했으며 학부모들은 지지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교육이자 치유였고, 미래에 대한 약속이었던 것 같다.
한때 식민지배의 가해자였던 다민족 국가의 숙명... 겉으로는 똘레랑스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방인인 내가 보기에도 그들은 애써 무시해 왔었다.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종교, 서로 다른 정치적 신념, 서로 다른 성적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끊임없이 만나고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프랑스 사회의 현실을 말이다.
샤를리 엡도 테러 이후 프랑스 사회 전체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프랑스 교육계는 뼈저리게 자각했다. 학생들에게 다름은 틀림이 아님을, 나의 올바름이 너의 올바름이 아님을,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과 말과 행동을 가진 그 누군가가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이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 현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프랑스 교육계의 대응이 완벽했다고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초등학생들에게 유엔헌장 조사시키고 분쟁지역 조사 보고서 써오라는 숙제를 내준다고 해서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 시절부터 켜켜이 쌓여온 구조적인 모순이 어떻게 일시에 해소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실제로 북아프라카 출신 이민자 자녀들이 주로 재학하는 공립학교에서도 과연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사립학교에서와 같은 그런 교육이 이루어졌는지도 우린 확인하지 못했다.
게다가 샤를리 엡도 사건 이후에도 크고 작은 테러가 잇달았고, 2020년 10월에는 파리 근교에서 중학교 교사가 퇴근길에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참수를 당하는 끔찍한 일도 있었으니 프랑스 교육계의 노력이 만족할 만한 결실을 맺었다고 결론내리기도 어렵다. 다만, 엄청난 사회적 트라우마에 직면했을때 교육계가 함께 고민하고 개선책을 찾기 위해 노력이라도 하는 모습을 우리 가족은 지켜보았다.
한국 사회도 2014년에 엄청난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2016년까지 3년간 프랑스에 머물렀던 우리 가족들은 프랑스 교육계의 대응은 눈으로 확인했지만 한국의 대응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이후 최소한 비슷한 노력이라도 있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304명이 되는 꽃다운 목숨이 스러져갔는데도 그냥 과거의 '사건 사고'로만 기억된다면.... 그리고, 아직도 우리의 사회와 학교에 "얘들아. 조용히 해라. 진도 나가자"를 외치는 선생님들과 "수능 킬러 문항 2개만 풀면 돼."를 외치는 학생들과 “대학만 가면 돼”라고만 외치는 학부모 밖에 없다면...
그렇게 큰 슬픔을 겪고 나서 우리가 배운게 없다면...
아... 왠지 너무나도 슬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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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Haseeb Modi on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