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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pr 12. 2021

"그건 그 아이 엄마가 잘못한 거야."

우리의 교실은 어디를 향하는가?

[# 1] 2011년 봄


두발 자전거를 혼자 탈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이 한껏 좋아진 첫째 딸 호비와 함께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몇 시간을 뛰어놀았던 어느 토요일 오후... 집에 돌아가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오른 건 거의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데 호비와 비슷한 또래의 한 남자아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책가방도 모자라 실내화 가방처럼 생긴 또 다른 가방까지 든 아이는 초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피곤을 넘어 권태에 찌든 얼굴이었다.


자세히 보니 실내화 가방이 아니었다. 가방에 적혀 있는 ‘XX웅변학원’이라는 이름... 아이는 보습학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 당시에만 해도 웅변학원이나 스피치학원을 가장한 보습학원이 성업하던 시절이었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며 '주말 오후를 낭비한' 우리 아이와 주말에도 학원을 다니며 우리 아이보다 '또 한걸음 앞서 나간' 남의 집 아이가 내 눈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10층에 멈출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아내와 나는 첫째 호비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선행 과외는 시키지 않겠다고 결정했었다. 거창한 교육적 철학도 없었고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다만, 아이들은 학교와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저녁 먹으면 일찍 불 끄고 자는 게 최고의 양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벌이를 하는 나와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방과후 수업이나 피아노 학원에는 보내야 했지만, 선행학습을 목적으로 하는 학원에는 단 하루도 아이들을 보내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이상한 부모’가 되었다.


하지만...

가끔, 아니 아주 솔직히 말하면 매주, 매일, 매 시간 너무나도 불안했다.


'우리 아이만 바보 온달이 되어가는 건 아닌가? 남들 다 하는 사교육인데...

내가 무슨 우리나라 교육을 구원할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냥 학원 보내야 하는거 아닌가?'


이런 불안감과 싸우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 2] 너무나도 친절했던 경기도 교육청...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경기도 교육청은 초등학생들의 과도한 교육열을 방지한다는 취지 아래 성적표에 학생들의 석차는 표시하지 않고 있었다. 첫 학기가 끝나고 호비가 받아온 성적표... 각 과목별로 90점에서 100점 사이에 속한 아이들, 80점에서 90점 사이에 속한 아이들이 각각 몇 명인지 친절하게 막대그래프로 그려져 있었다.


70점에서 80점 구간에 있는 막대그래프가 유독 짧았는데 거기에 웬 큰 점이 하나 찍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과목만이 아니었다. 모든 과목에서 유독 최하위 구간을 나타내는 짧은 막대에 떠억 하니 큰 점이 하나씩 찍혀 있었다. 상황이 금방 이해되었다. 그 모든 큰 점들은 우리 호비의 점수였다.


다른 모든 학생들은 모두 90점에서 100점 또는 80점에서 90점 구간에 속하고 우리 아이만 모든 과목에서 최하위 구간에 꾸준히 속한다면 누가 봐도 뻔한 거 아닌가? 결국,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경기도 교육청 덕분에 우리 부부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모든 과목에서 골고루 최하위권의 성적이라는 것을... 강남도 아니고, 목동도 아니고 상계동, 중계동도 아닌 경기도에서 말이다.  




[# 3] 2013년 여름


2년 후 초등학교에 입학한 호지도 여전히 방과후 수업과 피아노 학원을 제외하고는 학원 문턱을 단 한 번도 밟아보지 않았다. 내일이 중간고사이건 기말고사이건, 밤 9시가 되면 불 끄고 자는 우리 집의 규칙에 예외를 두지 않았다. 그래도, 시험 전에 최소한 문제집 한 권 정도는 풀게 시켜야 할거 같아서 아이들에게 사주곤 했다.


하지만, 내가 봐도 초등학생들이 과연 풀 수 있는 수준인지 이해할 수 없는 난이도의 문제들이 수두룩했다. 초등학교 1학년 문제집에서 확률과 통계의 기본 개념을 적용하는 문제까지 발견하고서 나는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이따위 문제가 나오면 맞출 필요 없어. 그냥 틀리면 돼. 알았지?"


호지의 첫 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 언니보다는 조금 더 성적 욕심이 많았던 둘째 딸 호지가 같은 반 친구들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를 듣고 와서는 꽤나 충격받은 듯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누구누구는 학원을 몇 군데 다닌다더라... 누구누구는 몇 시까지 잠을 안 자고 공부한다더라...


그런데 그중 한 아이의 이야기가 기가 막혔다. 아이 엄마가 시험 전에 문제집을 자그마치 10권이나 사서 풀라고 시켰다는 거다. 풀다가 너무 졸려서 아이가 잠들자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는 분에 못 이겨서 잠든 아이를 흔들어 깨웠고 새벽 1시까지 끝끝내 10권을 다 풀게 시켰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엄마에게 그 어린 것이 얼마나 닦달을 당했을지... 내 자식도 아닌 남의 집 자식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도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느낌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거는 거의 양육을 빙자한 아동학대가 아니고 무엇인가?


"호지야... 그건 그 애 엄마가 잘못한 거야. 내 생각엔 그런 방식은 옳지 않아.”


내 입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단호한 말에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내도 놀라서 내 팔을 잡으며 제지했다. "호지 아빠. 애들 듣는데서 그렇게 심한 말을 하면 어떻게 해?". 하지만, 이상하게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저 그 집 아이가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생각 뿐이었다.




[# 4] 19세기 학교, 20세기 교사, 21세기 학생들...


나와 내 아내의 세대는 표준전과 1권과 동아수련장 1권으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사실 친구들끼리 노느라 바빠서 1년이 지나도록 그 책을 다 풀지도 못하고 버렸던거 같다. 전두환 정권 시절 동안 과외는 금지되어 있었고, 설사 대도시에서는 암암리에 비밀 과외가 이뤄졌다 하더라도 내가 살던 시골 동네에서는 언감생심이었다. 1970년대에 태어나 유치원은 발도 디뎌보지 못하고 초등교육마저 부실하게(?) 마친 우리 세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그릇 크기에 맞는 지혜와 감정을 차곡차곡 모으며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되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초등학교 1학년때 문제집을 한권만 더 풀었으면 내 인생이 더 행복해졌을텐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또한, '초등 2, 3학년 과정을 초등 1학년때 선행하지 않아서 내 인생이 지금 이 모양 이 꼬라지야’라는 생각도 당연히 해본적 없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풀었던 문제집 갯수가 나의 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사실상 제로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의학기술이 점점 발달하면서 21세기 초반에 태어난 호비나 호지 또래의 아이들은 거의 100살을 살게 될게 확실하단다. 21세기의 대부분을 살다가 22세기에 세상을 떠난다는 뜻이다. 21세기 중반쯤에 세상을 떠날 우리 세대들은 상상도 못한 미래를 우리의 아이들은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남들보다 문제집 1권을 더 풀어 1점 높은 점수를 받는것이 수십년 후 그 '멋진 신세계'를 살아갈 우리의 아이들에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초등학교때 풀어본 문제집의 갯수가 아이들의 인생에 과연 영향을 미치기라도 할까? 아마 우리 세대보다 더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아이들을 닦달한다. 문제 하나라도 더 풀라고, 문제집 한 권 더 떼라고... 한번 풀었던 문제도 풀고 또 풀어서 완벽하게 문제풀이 방법을 암기하라고... 그럼 너희들은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것이고, 그러면 너희들의 인생은 행복해질거라고... 22세기를 살아볼 가능성도 없는 우리들은 22세기까지 살아갈 아이들에게 그렇게 매일 매일 훈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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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Caroline Hernandez on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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